[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측 의원들이 발의한 일명 'TBS 조례폐지안'이 법률과 조례에 위배되는 수준미달의 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에서 정한 절차와 내용을 무시한 채 출자·출연기관을 해산시키려는 이번 조례폐지안은 내용도 명분도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과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제도화 작업을 미루지 않았다면 작금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쓴소리도 이어졌다. 지역공영방송으로서 TBS의 법적지위를 담보했다면 몇 줄 짜리 조례로 TBS의 존폐가 갈리는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TBS의 공적 책무와 정치적 독립성' 토론회에서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TBS의 공적 책무와 정치적 독립성' 토론회에서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이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TBS 조례폐지안, 내용도 절차도 허술" 

15일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TBS의 공적 책무와 정치적 독립성' 토론회에서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TBS 조례폐지안'이 기본적인 법률과 절차적 요건, 근거 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우선 김 실장은 '교통방송 기능이 수명을 다했다'는 사유로 TBS 조례를 폐지하겠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조례의 목적이 달성되었는지 여부를 놓고 폐지를 논의하는 게 기본이라는 얘기다.  

TBS 조례의 목적을 규정한 제1조는 '미디어를 통한 시민의 동등한 정보 접근의 보장, 시민의 시정참여 확대, 문화예술 진흥'이다. 김 실장은 "디지털 플랫폼 미디어 환경, 교통방송 기능 불필요 등의 사유는 방송사항 변경에 해당하기 때문에 출연기관 폐지의 사유는 아니다"라며 "조례를 좀 보고 폐지안을 쓰라"고 질타했다. 

TBS 조례폐지안은 ▲TBS 직원들이 희망하는 경우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에 우선 채용하고 불이익한 처우를 하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조례폐지 시행 전이라도 TBS 자산 정리에 있어 재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야 한다 등의 부칙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TBS 재단이 해산하게 되면 500명 직원들을 관련 기관에 우선 채용하겠다는 것인데 카메라, 부조종실 등 방송업무 인력들이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라며 "TBS 자산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자산이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현재 건물도 임대"라고 지적했다. 

또 김 실장은 TBS 조례폐지안이 법률에서 정한 출자·출연기관 해산 관련 조처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24조는 지자체장이 출자·출연기관 해산을 요청할 수 있는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설립 목적의 달성, 존립기간의 만료, 그 밖의 정관으로 정한 해산 사유가 발생한 경우 ▲합병하거나 파산한 경우 ▲법원의 명령·판결에 따라 해산 사유가 발생한 경우 등이다. '서울시 자치법규 입법에 관한 조례'는 입법안은 '새로운 입법조치가 필요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명확히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시행의 효과와 시행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검토를 기초'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김현기 서울시의장(왼쪽)이 지난 4일 TBS 설립·운영 조례 폐지조례안을 의안과에 접수하는 모습 (KBS뉴스 유튜브 속보화면 갈무리)
국민의힘 소속 김현기 서울시의장(왼쪽)이 지난 4일 TBS 설립·운영 조례 폐지조례안을 의안과에 접수하는 모습 (KBS뉴스 유튜브 속보화면 갈무리)

김 실장은 "아무리 초선의원이고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의원들이라고는 하지만 지방의원으로서 자격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선출된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의원 75명이 몇 시간 만에 만든 몇 줄 짜리 조례로 폐지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제발 부탁이다. 서울시의회는 법령과 제도에 따라 조례폐지안을 처리하라"며 "몇 줄 안과 부칙으로 조례를 없애는 건 제대로 된 절차가 아니다. 서울시민 10명 중 3명(선거인 수 대비 국민의힘 득표율 27.65%) 밖에 대표하지 못하는 시의원들이 이 정도의 조례폐지안을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기본조례에 따라 상임위뿐 아니라 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을 포함해 공영방송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당부드린다"며 "조례에 따라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할 수 있고, 공청회·토론회를 지원할 수 있다. 조례폐지안에 대한 서울시민 의견 접수를 공지하고 시민들에게 어떤 의견이 들어왔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방통위, 공영방송 제도화 미뤄온 책임 크다"

김 실장은 "방통위·국회가 진작부터 공영방송 제도화를 처리해왔다면 여기까지 올 사안이 아니다"라며 "현 TBS 사태는 한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오세훈 시장이나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5년동안 한국 공영방송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수많은 기회를 흘려보냈던 방통위와 민주당에 큰 책임이 있다"고 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과 방통위는 2000년 방송법 체계를 개정하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낡은 방송법 체계는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따른 급격한 미디어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공·민영 방송을 분류·정의하지 못해 방송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실장은 이제라도 윤석열 대통령 공약이자 방통위가 추진해 온 공영방송 협약제도에 TBS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방통위가 TBS를 종합편성채널사업자로 변경허가하고, 지역중소방송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상업광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TBS의 지역공영방송 지위를 담보하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번 사태를 보고 방통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TBS가 독립법인화 할 때 방통위가 추천하는 2명의 이사가 TBS에 들어왔다"며 "이 이사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가. 특히나 조례폐지안이 통과될 경우 3년 전 경기방송 사례처럼, 방통위는 스스로 2명의 이사를 파견한 방송사가 서울시의회의 일방적인 조례폐지안으로 또 한 번 주파수가 비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명약관화한 타깃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 실장은 TBS이사회와 경영진에 대한 제언이라며 "정치적 독립을 위한 혁신적인 내부안이 나와야 한다. '뉴스공장' 등 시사교양프로그램이 TBS가 추구해야 할 지역저널리즘에 적합한지 전면 검토하고, 그 결과에서 '뉴스공장' 폐지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역 공영방송인 TBS가 시사·보도 영역에서 지역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이유로 킬러콘텐츠인 '뉴스공장'을 꼽았다. '뉴스공장'은 중앙정치 이슈를 청중 민주주의와 팬덤에 기반해 다루면서 킬러콘텐츠로 성장했고, TBS는 킬러콘텐츠인 '뉴스공장' 유지·성장을 위해 인력과 자원을 집중 투입하면서 지역정치와 이슈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은 "TBS는 '뉴스공장'에서 정치평론과 워딩분석을 하는 게 아니라 서울시의 변화가 중앙정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 지역저널리즘을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하지만 정치 권력의 요구·압박에 따라 특정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은 의문이 뒤따른다. 방송법은 제1조를 통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제4조는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정치·경제적 독립을 강조해 온 언론계가 부당한 권력의 개입에 맞서 오랜기간 핵심 근거로 삼아온 법률 조항이기도 하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국민의힘은 TBS 조례폐지안을 발의했다. TBS는 조례가 폐지되면 서울시와의 출자·출연 관계가 사라져 300억 원 규모(TBS 예산의 약 70%)의 지원금이 끊기는 상황을 맞는다. 국민의힘은 이번 조례폐지안 발의의 배경에 대해 표면상으로는 '교통방송이라는 기능이 수명을 다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의 기능 변경은 방통위 허가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조례를 폐지하는 것과 무관하다. 

결국 '뉴스공장'을 불편하게 여겨온 국민의힘이 지원금을 쥐고 TBS를 흔들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재단법인화로 독립을 이룬 TBS에 대해 선거에서 이겼지만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게 된 국민의힘이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원금 삭감에 이어 조례폐지안으로 공영방송 민영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례폐지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의원들 역시 '뉴스공장'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 김현기 서울시의장은 14일 YTN과 인터뷰에서 "특정 프로그램에서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며 "지난 민주당이 운영해 온 서울시의회가 여기에 대해 제대로 대처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즉 공정성에 나름대로 시민들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최호정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비판 언론 재갈물리기가 아니다"라면서도 "김어준 씨가 세금의 무거움을 알고나 있을까. 꽤 오래 진행을 했는데, 이분도 이만큼 하셨으면 다른 분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진행자 교체를 압박했다. 'TBS가 시사 프로그램만 한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여러 공익적 가치를 다루는 방송이 많다'는 질문에 "많은 서울시민들이 TBS하면 무엇을 가장 많이 떠올리나. 그 프로그램을 떠올리지 않나"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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