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광교산 둘레길을 걷다 형제봉으로 가려면 수원의 상수원인 광교저수지 둑을 지나야 합니다. 둘레길을 삼사십 분 걸어 목이 마를 때쯤 눈앞에 펼쳐지는 시원한 저수지의 물과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한 산 능선을 바라보면 먼 여행이라도 떠나온 느낌입니다.게다가 둑의 왼쪽에는 상수원 보호 시설이 연두색 고깔 지붕을 쓰고 저만치 물 위에 떠 있어 등대를 연상시키니 가벼운 배낭 하나 메고 나선 길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눈을 돌려 둑 아래쪽을 바라보면 경사면으로 펼쳐진 풀밭에 철마다 다른 생명의 빛 깔이 피어오릅니다.
[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지난달에 백두대간을 등반하는 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소백산으로 예비답사를 했다. 7월 첫 주에 일정대로 인솔 교사와 학생 80여 명이 함께 갔으니 올여름에는 소백산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6시간 힘겹게 산을 오르고 내려왔는데도 어느새 그 산의 능선에서 부드럽게 불던 바람과 바리톤 정도의 음높이로 흐르던 물소리가 그리워졌다. 몇 년 전 처음 그 산을 찾았을 때는 겨울이었다. 겨울 끝자락에 살짝 녹은 얼음 사이로 흐르던 은빛 물이 ‘참 곱다’고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었다. 그리고 장맛비가 며칠 내린 뒤의 여름
[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교문 안쪽으로 나란히 줄을 선 측백나무에 민트색 별사탕이 달렸습니다. 납작납작 눌러 놓은 듯한 측백나무의 연녹색 잎을 보면 상쾌한 느낌이 들며 더위를 조금은 식혀주는 듯합니다. 그 싱그런 잎 위에 드문드문 달린 측백나무 열매는 더운 여름날의 선물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먹던 과자 사이에 가끔 들어있는 별사탕 모양에 민트색이라 마카롱이나 마시멜로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나무가 별 모양 머리핀을 꽂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나 따 먹어보고 싶기도 합니다.측백나무 잎은 여러 번 쪄서 말린 가루
[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봄의 정취가 아름답다는 마곡사를 올봄에는 두 번이나 찾았다. 한번은 응진전(應眞殿) 앞에 자목련이 다소곳이 피어있는 4월 말이었고, 한 번은 여름을 맞기 전 5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주차장에서 백범 선생 명상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여 절은 명상길을 돌아본 후에 가기로 하고 눈앞에 보이는 길로 곧게 올라갔다. 4월의 마곡사에는 키도 작고 얼굴도 작은 꽃마리가 포슬포슬한 흙 위에 봄이라는 글자를 꼭꼭 눌러 쓴 것처럼 곳곳에 피어있었다.은적암 백련암 방향으
[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5월의 어느 날 저녁, 오래된 아파트 앞마당의 공기가 숲속처럼 싱그럽다. 입주 초기 심어진 나무들이 우뚝우뚝 솟아난 만큼 가지마다 무성한 잎에서 초록 공기를 내뿜기 때문이다.오래된 정원수 곁에 있으면 굵다란 줄기에서 든든함이 묻어나고 가지마다 드리워진 푸른 잎은 한없는 평화를 준다. 세월을 먹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덕이 깊어지고 혜택이 깊어지는 나무는 언제 보아도 사람의 스승이라 할 만하다.풋풋한 봄 공기에 취해있으면 달짝지근한 아까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어서 달큰함을 살짝 씻어내며 푸릇함을 더
[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오랜만에 남양주로 종주 산행을 떠났다. 전에는 거의 매주 친구들과 10km 이상 산행을 했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는 집 근처에서 혼자 한두 시간 걷곤 하였는데, 작년부터는 그조차 뜸해졌다. 작년 봄 삐끗한 발목이 회복되지 않고 수개월을 가는 동안 햇빛을 받으며 걸었던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몇몇 산우들은 방역수칙 내의 인원을 꾸려 산행을 계속했다. 산우들이 예봉(禮峰), 적갑(赤甲), 운길(雲吉)산행을 떠난다는 공지를 들을 때면 가보고 싶다는 마음 반, 산이 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 교차하여
[미디어스=조현옥] 봄 햇살이 무표정한 땅에 내려와 속삭인다. 매화, 진달래, 꽃마리가 시작한 봄 잔치에 아직 품고 있는 새 친구를 보내 달라고. 햇살이 이번에는 갯바람에게 청한다. 키 큰 가지에서 산수유가 눈꽃처럼 피었으니, 땅에서는 왕관을 쓴 노란 꽃이 피어나게 해달라고.그렇게 갯바람과 솔바람, 봄 햇살이 만든 풍경이 여미리에 피어난다. 초록색 줄기에 이어진 노란 꽃잎과 그 가운데 왕관이 있는 겹꽃. 다른 꽃에는 없는 꽃술을 담은 부화관(副花冠)은 누군가의 그리움을 담아두는 마음 주머니 같기도 하다.논두렁 밭두렁에서 소나무가 둘
[미디어스=조현옥] 그리움으로 아련하게 피어난 매화로 시작한 꽃 소식이 어느새 산수유, 목련, 벚꽃으로 물들고 있다. 화단의 잔디 곁에는 민들레의 노란 웃음이 피고, 햇살 좋은 곳에는 연보라색 제비꽃의 재잘거림도 들린다. 겨우내 누워있던 맥문동도 허리를 곧추세우며 진초록 치맛자락을 늘어뜨리고 봄 잔치에 나선다. 곧 황매산 철쭉, 고려산 진달래가 진분홍색 초대장을 보낼 것이다.개화 기간이 짧은 꽃일수록 때를 놓칠세라 사람들의 발걸음은 먼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삐 달려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하
[미디어스=조현옥] 봄이 오는 길목에 단비가 내렸다. 여느 때 같으면 꽃샘추위가 찬바람과 늦은 눈을 한바탕 몰고 왔을 텐데 안타깝게도 올해는 긴 겨울 가뭄 끝에 3월이 왔다.지난 주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마른 갈댓잎이 촉촉해지니 자연스레 풍기는 생명의 향기에 물닭과 오리들이 갈대 덤불 사이로 모여들었다. 꽃눈이 제법 굵어진 벚나무와 노란 산수유 꽃망울 위에도 빗방울이 보석처럼 맺혀 있다. 늘 보던 그 빗방울을 바라보니 비가 ‘은택’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열흘 가까이 이어진 산불에 주택과 농경지를 잃은 피해 주민들과 울진 삼척의
[미디어스=조현옥] 우수(雨水)가 지나니 겨울이 남긴 흔적과 기억들이 봄눈처럼 녹고 있다. 한 번만 더 비가 내린다면 자연에 남겨진 지난 계절의 흔적들은 빗물을 따라 땅속 깊이 스며들 것이다. 자연이 만든 생명이 새로운 생명을 위한 밑거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겸허한 시간이다. 물론 이 겸허한 움직임은 가을부터 부단히 계속되었을 것이다.하지만 봄을 맞기 위해 지금은 지금대로 해야 할 자연의 숙제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무한한 생명 탄생의 계절이 올 수 있으리라. 봄의 전주곡처럼 앞서오는 꽃샘바람도 그런 의미에서 이유가 있는 것이다.공원
[미디어스=조현옥] 어느 날 오후 눈이 하얗게 쌓인 창경궁을 걸었다. 약속도 없이 한겨울 해 질 무렵에 고궁을 찾은 것은 그리움 때문이었다. 친구로부터 들은 그녀 소식은 즉시 내 발걸음을 창경궁으로 향하게 했다. 궁궐 주인의 영욕을 지켜보던 오래된 나뭇가지들도 화려한 계절 옷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눈 자락을 덮고 있는 춘당지를 지나 하얀 테두리의 유리 벽 안에서 그녀는 아련한 향기를 담고 피어있었다. 충직한 신하인 듯 벗인 듯, 백매화와 홍매화, 붉은 명자꽃도 그 곁에 있었다.외세에 의해 강제로 궁의 모양이 바뀌
[미디어스=조현옥] 누구나 상황은 마찬가지겠지만 2년이 넘게 동창 모임을 하지 못했다. 모두 아쉬움을 갖고 두서너 명 친구들이 소모임으로 등산이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나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다가 재작년 안산에 근무하며 그곳에 사는 친구와 최용신 문학관에 갔던 것이 간신히 참여했던 모임이었다. 그때 문학관 안내를 해주던 친구가 다음에 친구들과 안산 지역 문화답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그 말을 들었을 때, 모임이 언제쯤 가능할까, 점점 거세지는 코로나19의 전파 상황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송년회도 못하
[미디어스=조현옥] 동지가 지났는데도 맥문동 열매가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긴 여름 무성한 초록 잎 사이에 연보라색 촛대처럼 피어있던 작은 꽃들은 이 열매를 남기고 시간 속으로 떠났다. 흑진주같이 알알이 맺힌 열매는 지나간 꽃의 이야기를 담고 익어왔기에 더 반짝이는 듯하다.대학에 원서를 내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서울에 있는 대형 백화점을 구경하며 마냥 신기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다. 입학하고 나서 알게 된 현실은 우리가 또 하나의 거대한 장막으로 덮인 세상만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여름
[미디어스=조현옥] 하루하루 낮아지는 기온이 저수지 풍경을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여름 내내 연잎과 초록을 견주던 갈잎이 희뿌옇게 변하여도 갈대는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그곳을 찾는 사람과 새들에게 눈인사를 한다. 나이 들며 흰머리, 눈가 주름이 같이 늘어가는 친구를 보면 정겹듯이, 한 해의 끝에선 누르스름한 갈잎이 푸른 잎보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 같다.초록색 줄기와 잎이 변하며 하얀 깃털이 나부끼는 갈대를 보니 퇴색이 아닌 성숙과 너그러움으로 여겨진다. 싱그럽고 푸른 젊음이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디어스=조현옥] 여름꽃, 가을꽃도 떠난 늦가을 교정에 반송(盤松)의 연녹색 푸르름이 줄지어 서 있다. 코로나19로 원격 수업을 하여 비었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그들도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하다.반송은 위로 높이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가지가 옆으로 퍼지며 우산 모양으로 자라는데, 그 모양이 우아하고 정겨워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여섯 그루의 반송이 천연기념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중 무주 설천면의 반송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또한 나무 연구가 박경진 씨에 따르면 서울에서 개성으로 가
[미디어스=조현옥] 어느 날 아파트 후문에 키가 작은 백일홍이 곱게 심겼다. 빨강, 주황, 분홍…. 누가 더 크고 작고를 비할 것 없이 20여센치 정도 크기로 심어진 꽃들이 백일이 지났어도 키는 많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한여름 폭염과 초가을 비바람에도 변함없이 밝게 피어있으니 기특하다. 누구 하나 도드라지려 고개를 쑥 내밀지 않고 나란히 서서 햇빛을 고루 나누어 받고 사이좋게 피어있는 것이다.아파트 두레에서 이곳저곳 예쁜 꽃들을 심기 시작한 지 몇 년 되니 이제는 보기 귀한 꽃향유도 피고, 노오란 산국이 목련 나무 옆에서 출근길의
[미디어스=조현옥] 덕수궁의 함녕전(咸寧殿)을 지나 즉조당(卽阼堂)과 준명당(浚眀堂) 뒤쪽을 지나는데 살며시 가을바람이 느껴졌다. 그 순간 소나무를 스쳐온 바람이 궁이 지나온 시간을 거스르게 했다.덕수궁 안을 걷는 시간은 다른 궁 안을 걷는 것보다 마음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좁은 터 안에 자리잡은 여러 전각들의 간격이 좁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와 함께한 비운의 역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지나는 사계절 마디 마디의 고난과 어려움이 한 해 동안에 수없이 지난 것 같은 근대사의 영욕을 덕수궁은 궁의 주
[미디어스=조현옥]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하략)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시절 교지 『문우(文友)』에 발표한 ‘자화상’이라는 작품이다. 독립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청년 윤동주의 내적 고뇌와 자기 성찰이 담겨 있다.나는 중학교 시절 이 작품을 접했다. 용돈을 받아 시집이나 시낭송집
[미디어스=조현옥] 여름 하늘을 지나는 구름이 해바라기 곁에 잠시 머문다. 어쩌면 구름은 해바라기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지 모르겠다.‘이제 당신의 사랑을 잠시 내려놓아도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하늘에 닿았고, 하늘은 당신에게 사랑의 씨앗을 선물로 주었지요.’구름 이야기를 들은 해바라기는 자기 가슴에 품은 씨앗을 소중하게 품으며 몸을 앞으로 숙인 것 같다. 북한강변에서 누구보다 많은 씨앗을 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해바라기를 보니 이런 장면이 연상 되었다.지난밤의 거센 비바람도 해바라기의 뿌리까지 흔들지는 못하고 대부분 허
[미디어스=조현옥] 꽃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한 번 글로 썼던 꽃을 우연히 만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는 이미 마음에 들어왔던 꽃에 관해 쓰는 것이고, 글을 쓰려면 자꾸만 그 꽃의 모습을 떠올리며 꽃잎의 모양과 꽃술의 개수까지 그 모습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또 자료를 찾다 보면 그 꽃의 출생과 고향,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날씨와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피는 대부분의 들꽃은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이며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습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