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봄이 오는 길목에 단비가 내렸다. 여느 때 같으면 꽃샘추위가 찬바람과 늦은 눈을 한바탕 몰고 왔을 텐데 안타깝게도 올해는 긴 겨울 가뭄 끝에 3월이 왔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마른 갈댓잎이 촉촉해지니 자연스레 풍기는 생명의 향기에 물닭과 오리들이 갈대 덤불 사이로 모여들었다. 꽃눈이 제법 굵어진 벚나무와 노란 산수유 꽃망울 위에도 빗방울이 보석처럼 맺혀 있다. 늘 보던 그 빗방울을 바라보니 비가 ‘은택’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산불에 주택과 농경지를 잃은 피해 주민들과 울진 삼척의 소나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가 하루만, 며칠만 일찍 왔어도 산림을 구하고 재산상의 피해가 훨씬 적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아쉬운 대로 화기를 완전히 잠재울 수 있는 비가 내렸으니 다행이었다.

울진 소광리 금강송 대왕소나무 [산림청 제공=연합뉴스]

동네 저수지 둘레길을 돌아 옛 관청 영화정(迎華亭) 앞에 이르니, 3m는 넘어 보이는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금강송이나 미인송 종류일 것 같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란 줄기로 시선을 따라가니 소나무 가지가 서로 맞닿아 하늘에 멋진 솔잎 자수를 놓은 것 같다. 영화정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을 마주하고 나란히 줄지어 있는 반송도 아담한 키로 사람들 눈높이에 맞게 푸른 기운을 내뿜었다. 비에 젖은 솔향이 봄을 안고 올 것 같았다.

몇 년 전 삼척의 준경묘(濬慶墓)에 간 일이 떠오른다. 준경묘는 삼척에 있는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의 묘라고 한다. 금강송의 군락지가 있는 곳으로 2005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의 숲’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곳이 진짜 이양무 묘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가 대한제국에 와서야 이성계 5대 조의 묘로 인정받아 묘호를 받았다. 그 후, 왕릉은 아니지만 정자각과 재실을 갖추고 묘역 일대가 잘 조성되어 왕릉 못지않은 위엄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고종은 왕가 시조의 묘를 추존함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굳건히 하고 단결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양무의 묘는 준경(濬慶), 그의 아내 묘는 영경(永慶)이라 하며 경사 경(慶)을 넣은 것도 나라의 운명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2020년 3월 16일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에 봄눈이 소복이 내려 있다. [삼척시 제공=연합뉴스]

준경묘로 가는 옛길이라고 하는 쪽으로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이 나왔다.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 때문인지 그 길을 걸으며 시공을 가르는 청정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쉬니 시원한 초록 물로 씻은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고, 새소리도 크고 맑게 들렸다.

고운 흙과 모래가 잘 다져진 오솔길을 지나니 우뚝 솟은 소나무가 입구에서부터 묘 주변을 빼곡히 둘러쌌다. 잔디가 깔린 묘역이 오솔길보다 약간 낮게 펼쳐져 더 아늑한 느낌이었다.

입구 한쪽에 용 모양의 석상이 있었다. 그곳에서 약수가 나오는데, 일행들은 너나없이 그 물로 갈증을 달랬다. 목을 축이고서야 그 옆에 있는 준경묘 진응수(眞應水)라는 표지판을 읽었다. 명당의 기운이 응축되어 나오는 약수라니 한 바가지 더 들이켰다. 숲길을 걷고 난 후이니 보통의 샘물도 반가울 마당에 누군들 명당의 약수를 탐내지 않겠는가.

준경묘에서 멀지 않은 곳에 특별한 소나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인송(美人松)으로 속리산의 정이품송과 혼인하였다는 나무이다. 나무라도 남달리 늘씬하고 곧게 자라 미인이라니 부럽기도 했다. 정이품 송의 결혼은 나이가 들어가는 정이품 송의 자손을 건강하게 남기기 위해 시행되었다.

벼슬을 받은 정이품 소나무를 남자로 보고 후궁 간택을 하듯 건강한 후보 소나무 다섯 그루를 골랐다. 준경묘의 미인송을 정부인으로 하여 보은 군수와 속리산 군수가 혼주가 되어 혼인식을 했다. 꽃술이 맺히기 전부터 다른 가루가 섞이지 않게 소나무꽃에 흰 막을 씌었다. 혼인날에 정이품 송의 수꽃 가루와 미인송의 암꽃 가루를 수정한 것이다. -KBS WORLD KOREAN-

소나무는 순우리말로는 곰솔이라 하는 해송과 토송, 금강송, 미인송 등 그 종류가 100여 종이라 한다. 금강송은 태백산맥 일대에서 자라는 곧고 단단한 소나무로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름은 황장목(黃腸木)이라 한다. 가운데에 노란 심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나무의 나이테 간격이 매우 좁고 뒤틀림이 없는 곧고 단단한 나무이다. 궁궐건축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경복궁, 낙산사, 남대문의 복원에도 이 황장목이 쓰였다. 일제 강점기 금강송의 집산지가 봉화의 춘양면이어서 춘양목이라고도 했다 한다.

나이테가 조밀한 춘양목(가운데)의 단면 [사진=연합뉴스]

이 나무들은 조선 시대에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몇백 년간 숲을 이루었다. 금강송은 일제시대에 붙여진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어 강원도 지역에서는 황장목 이름 찾기 행사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동해, 울진 일대의 화재에서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기 위해 산림청 화재진압 대원들은 사투를 벌였다. 화마에 휩쓸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소방대원들의 구조 활동과 같이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며칠째 밤샘으로 이어졌다. 차 안에서 도시락을 급하게 삼키는 날들이 계속됐다.

이번 산불의 기세가 오래 간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소나무의 송진에 있는 식물성 기름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송진을 잘 복용하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으나, 잘 분해되지 않는 성분이라 곤충 등의 화석이 송진 안에서 발견되기도 한단다. 이렇게 강한 조직의 송진이 소나무 숲에서 휘발유의 역할을 했으니 불을 끄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지난 10일 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원들이 금강송 군락지 주변 불을 끄고 있다. [산림항공본부 제공=연합뉴스]

동해안, 울진 지역의 산불 소식을 들으며 문득 금강송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 눈물은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나무 가족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응축된 슬픔이 송진처럼 끈끈하게 흐를 것만 같았다.

기후 변화가 심각한 요즈음, 숲이 파괴되는 것은 숲 생태계에 사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삶도 죽음에 가까워질 수 있는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품고 있는 송진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현실도 소나무를 아프게 했을지 모른다.

소나무와 마을, 소나무와 한옥, 소나무와 학교가 있는 모습은 우리 세대가 익숙하게 누려온 풍경이다. 우리 기억 어느 곳이든 소나무 가지가 손 내밀지 않은 곳은 없을 것이다. 정조 대왕의 능행차가 있던 길에 심어진 너그러운 팔을 뻗고 있던 노송로를 친구와 걷던 기억이 행복한 그림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누가 뭐래도 자연은 우리 곁에서 친구도 되고 보호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무심함이나 이기심, 맹목적 충동이나 욕심이 그들을 침범하면 자연은 거대한 재난의 메아리로 돌아온다. 잘 자란 소나무 한그루 옆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지만, 그 한 그루를 잃는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누려왔고 후손들이 누릴 수 있는 그 행복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울진 금강송 군락지 [경북도 제공=연합뉴스]

피해가 복구될 때까지 모두가 상처와 상흔을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화재 현장으로 레미콘에 물을 싣고 달려온 운전자들의 사람다움이 흐르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아버지와 형제의 추억이 담긴 집을 지키기 위해 산불과 싸운 사형제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닥친 재난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용기를 준다.

이제 축구장 몇만 개 넓이의 산은 검은 상처만 남기고 사라졌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원인을 분석하고 함께 서 있는 나무처럼 서로 돕는 일이다. 나도 작은 손길을 보태고자 약간의 성금을 보냈다. 우리가 마음을 합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본다면 소나무 숲도 눈물을 그치고 곧 솔바람 노래를 들려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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