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봄 햇살이 무표정한 땅에 내려와 속삭인다. 매화, 진달래, 꽃마리가 시작한 봄 잔치에 아직 품고 있는 새 친구를 보내 달라고. 햇살이 이번에는 갯바람에게 청한다. 키 큰 가지에서 산수유가 눈꽃처럼 피었으니, 땅에서는 왕관을 쓴 노란 꽃이 피어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갯바람과 솔바람, 봄 햇살이 만든 풍경이 여미리에 피어난다. 초록색 줄기에 이어진 노란 꽃잎과 그 가운데 왕관이 있는 겹꽃. 다른 꽃에는 없는 꽃술을 담은 부화관(副花冠)은 누군가의 그리움을 담아두는 마음 주머니 같기도 하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소나무가 둘러선 언덕까지 서산 여미리에는 노오란 어울림의 물결이 일렁인다. 꽃대 하나에 한 송이 꽃만 피어나는 수선화는 여린 듯하지만 강인하고, 냉정한 듯 보이지만 바람이 불 때면 서로가 서로에게 잔잔한 미소를 흩날린다.

4월의 어느 날,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에 수선화가 피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디에 피든지 꽃은 당연히 아름답고 자기 주변까지도 환하게 한다. 하지만 사진으로 본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는 뭔가 특별했다. 꽃 구경은 때를 놓치면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하니 노란 그리움을 안고 급히 서산으로 향했다.

오후 두 시쯤 도착했는데도 유기방 가옥 주차장으로 가는 2km 정도의 진입로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일 텐데, 꽃보다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드문드문 핀 수선화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더 멋진 풍경에 대한 기대가 되었다.

기다림 끝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위를 돌아보니 주변이 온통 수선화였다. 작은 연못 주변, 유기방 가옥 쪽으로 가는 길가와 작은 둔덕에 수선화가 가득하였다. 여섯 장의 얇은 꽃잎과 부화관이 또렷한 수선화(水仙花) 세상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 (사진=조현옥)

유기방 가옥으로 올라가는 길이 온통 수선화로 가득하여 수선화라는 이름처럼 선계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있는 특산물 장터 옆 건물도 진노랑색이라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다.

대문 앞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유기방 가옥은 1919년에 지어진 전통 양반 가옥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고, 보존상태가 좋아 충남 문화재 23호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신미양요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였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대문 앞의 동백나무가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각처럼 높이 솟은 대문채에는 여미헌(餘美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 유기방 가옥이 서산 여미리(余美里)에 있어 한자의 음이 같은 여미(餘美)라는 이름을 쓴 것 같다. 아마 그곳을 돌아보고 나면 마음속에 남는 운치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짐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안채 옆 좁은 길을 통과하여 뒤쪽으로 돌아가니 경사진 담장 아래 단을 높인 장독대만 빼고는 온통 수선화밭이다. 비록 담장을 두르기는 했지만, 산의 연결선 상으로 담장 안쪽도 집터를 닦을 때 평평하게 깎지 않은 것 같다. 그 경사면을 따라 수선화가 피었으니 장독대와 조화를 이룬 모습에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지른다. 그러고 나서 뒤뜰 여기저기서 포즈를 취하느라,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없었다. 나도 그 옆에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휴대폰 카메라를 눌렀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 (사진=조현옥)

장독대가 갖고 있는 세월, 정성, 깊은 맛의 이미지와 은은한 빛깔의 수선화가 만나니 내면이 깊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작고 예쁜 뒤뜰은 은은한 수선화 빛깔 때문에 너른 산언덕 같았다. 뒷모습도 아름다운 집은 뒷모습도 아름다운 사람 같고, 작은데도 넓어 보이는 뜰은 작지만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듯 편안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자연과 높이를 맞춘 한옥 담장과 장독대, 수선화가 있는 뒷마당의 모습은 오래도록 여미(餘美)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집 옆쪽으로 난 문을 나왔다.

문을 나서니 눈앞에는 더 넓은 수선화가 세상이 펼쳐졌다. 뚜렷하게 곡선으로 돌아간 한옥 담장과 그 담장을 둘러싼 수선화가 있는 풍경은 세상에 없는 명화였다. 반고흐가 이 풍경을 보았더라면 해바라기를 그리던 붓을 놓고 바로 수선화를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선화가 가득한 노란 세상은 밝지만 눈부시지 않고 다정한 속삭임이 있는 풍경이었다.

한 걸음씩 유기방 가옥으로 다가설 때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그림이 되고, 편안한 수채화로 마음에 다가왔다. 집 뒤의 수선화 언덕에서 유기방 가옥을 바라보며 한옥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새삼 깨달았다.

담장 안에 차분하게 있던 수선화와 달리 언덕에는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서 숲의 수선화는 노래를 했다. 나선형 구조의 줄기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꽃잎 위로 도드라진 부화관이 바람에 떨어질까 조마조마했지만 이것은 자연의 신비를 모르는 나의 기우였다. 활짝 핀 얇은 꽃잎은 조금도 이지러지지 않고 또렷한 모습으로 노란 어울림의 풍경을 만들었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 (사진=조현옥)

자아도취, 자기애뿐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작고 연약한 꽃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연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어느새 자신이 만든 틀 안에 갇혀 자신밖에는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우리 마음 마음에 대한 경계를 수선화 물결이 보여주고 있었다.

수선화는 보통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줄기와 꽃송이가 수직이 된다. 그래서 반듯한 자세로 정면만 바라보는 것 같다. 고개 숙여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전혀 못하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런데 여미리에서 만난 수선화는 달랐다. 유기방 가옥의 주인이 20여 년간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한 포기 한 포기 누군가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심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면 바스스 함께 노래하고 부드러운 춤도 함께 춘다.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기보다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기에 수선화의 춤과 노래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전국에서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노오란 어울림의 물결로 그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았다.

8년 전 4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노란 배지나 리본을 달기도 하였기에 4월에 피는 노란 꽃은 아름답게만 볼 수 없고 아프기도 했다. 아마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겐 노란 꽃이 피는 4월이 생명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의 봄으로 해마다 아픔으로 피어났을 것이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 (사진=조현옥)

조국을 잃었던 일제 강점기에 김동명 시인은 수선화를 보며,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라고 했다. 수선화의 가늘고 연약한 모습을 보고 차가움, 애달픔, 가여움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가사의 끝부분에서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서곡’이라 하며 아름답고 강인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빛나는 불멸의 서곡이라고 했다. 수선화를 우리나라라고 보면 선하고 순해 보이는 흰옷 입은 백성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조국의 주권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의지의 투영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죽음은 생명에 있어서는 소멸이지만, 그들의 정신은 또다시 살아 독립을 위해 싸우고 끝내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육신의 소멸은 그 정신을 이어받는 사람이 있는 한 불멸이다. 떠난 이는 돌아올 수 없지만 떠난 이들이 산 사람에게 남긴 메시지는 죽지 않는다. 해마다 그때가 되면 아픔이 피어나고, 고통을 함께 극복해야 하는 책임도 피어나는 것이다.

올봄, 여미리의 수선화를 보며 아름다운 어울림의 물결을 보았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분들,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이들이 수선화의 어울림을 보고 노란 아픔이 아니라 잔잔한 격려의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수선화가 주는 부드러운 위로에 힘을 얻는다면 우리도 불멸의 서곡 같은 소중한 삶을 함께 그려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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