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어느 날 아파트 후문에 키가 작은 백일홍이 곱게 심겼다. 빨강, 주황, 분홍…. 누가 더 크고 작고를 비할 것 없이 20여센치 정도 크기로 심어진 꽃들이 백일이 지났어도 키는 많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한여름 폭염과 초가을 비바람에도 변함없이 밝게 피어있으니 기특하다. 누구 하나 도드라지려 고개를 쑥 내밀지 않고 나란히 서서 햇빛을 고루 나누어 받고 사이좋게 피어있는 것이다.

아파트 두레에서 이곳저곳 예쁜 꽃들을 심기 시작한 지 몇 년 되니 이제는 보기 귀한 꽃향유도 피고, 노오란 산국이 목련 나무 옆에서 출근길의 나를 전송한다. 꽃을 가꾸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거나 맛있는 음식을 전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오래된 아파트지만 단지 안 곳곳에서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은 젊은이들의 행진을 보는 것 같은 활기를 준다.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가지를 뻗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은 이웃 사람 못지않게 정겹다. 친구 집 앞에 핀 접시꽃은 친구의 얼굴처럼 환하고 친근하다.

백일홍 (사진=조현옥)

이렇게 꽃을 보며 한가롭게 걷던 어느 날,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후문 쪽을 지나며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그분의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것이다. 욕심 없이 순수하게 사시던 목사님인데 아직 젊은 나이에 혈액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어떤 소식보다 충격이자 아픔이었다. 그렇게 올곧게 살아오신 분이 왜? 라는 물음과 함께 덧없는 삶에 대해 안타까움이 구름처럼 밀려왔다. 목사님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르니 마음 밑바닥이 저며왔다.

한때는 우리 아이들도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 예배드렸고, 목사님의 사모님이자 문우(文友)인 나의 지인은 내가 결혼한 뒤 수원에서 알게 된 첫 친구나 다름없었다. 아직 대학에서 공부 중인 자녀들은 한때 나의 훌륭한 제자들이기도 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나 그들 가족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이따금씩 듣게 된다. 누구도 억지로 할 수 없는 삶과 죽음. 한 사람 한 사람 정겹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명복을 빌며, 그 가족들이 슬픔을 딛고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때때로 늦가을 찬바람이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몰아올 때면 비바람 치는 천변의 갈대처럼 휘청거리기도 했다. 가족이 아닌 일에도 나의 마음이 이러하니 당사자는 어떠할 것인가. 통화를 마치고 아파트 담장 옆에 피어있는 백일홍을 바라보니 갑자기 뜨거운 마음이 올라왔다.

평소 저희끼리 재미있게 속삭이듯 보였던 백일홍이 그날은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아 가만히 불러보았다. 백일홍아, 목사님 회복되실 수 있지?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백일기도를 해왔다. 그날은 백일홍이 간절한 소망을 담은 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 꽃을 보고 나도 열심히 목사님의 회복을 위해 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즉시 목사님과 가족들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도드렸다.

백일홍 (사진=조현옥)

백일홍은 백일초라고도 하며 백일 동안 피어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배롱나무꽃도 오랫동안 피어 백일홍 또는 목백일홍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인 백일홍은 풀꽃 줄기에서 자란 백일홍을 말한다.

원래 멕시코가 원산지인 이 꽃은 품종 개량을 통해서 다양한 종류의 백일홍이 되었으며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구 같은 꽃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갔던 여행지의 한옥 마당 앞에도 백일홍이 피어있었다. 어머니는 다른 꽃보다 무척 반가워하셨다.

백일홍의 꽃말은 색깔만큼이나 여러 가지이다. 빨강 백일홍은 인연과 그리움이라 하며, 주황색은 헌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흰색은 장미처럼 순결이라는 꽃말이 있다고 한다.

꽃잎의 수도 모양도 조금씩 다른 백일홍 중에는 여러 장의 꽃잎이 가지런히 쌓여 꽃잎이 백 장이 되어 보이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백일홍은 원 모양으로 길쭉한 잎으로 둘러싸인 위에 왕관 같은 노란 별꽃이 꽃술처럼 올라와 있다. 분홍 꽃잎 위에 피어있는 노란 별꽃은 분홍 원피스를 입고 노란색 화관을 쓴 여인처럼 화사해 보인다.

백일홍 (사진=조현옥)

지난 주말 가야산에 다녀왔다. 원래 있는 모습대로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바위를 보며 단풍은 짧은 계절 옷일 뿐이고 산의 본질은 바람과 서리에도 변함없는 바위와 소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당당한 산 입구에서 다소곳이 늦가을을 지키는, 한줄기 분홍색 백일홍을 보았다.

목사님 가족이 떠올랐다. 백일홍이 긴 여름의 폭염을 견디고 가을까지 곱게 피어있는 것처럼 목사님도 병을 극복하고 잘 회복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 전화를 해 보니 체질이 맞는 골수이식 공여자를 찾았고, 조건이 잘 맞아 이식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빨리 수술 가능한 조건의 공여자를 만난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수많은 더위와 비바람이 지나갔어도 아름다운 백일홍이 변함없이 피어있는 것처럼, 지인의 가정에 닥친 어려움이 미풍처럼 지나가고 백일홍처럼 아름다운 행복이 오롯이 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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