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현주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위원장 류희림) 사무총장이 KBS 시사제작국장 시절에 '친일과 훈장' 불방 사태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무총장이 박정희 정권의 친일인사 훈장 수여 등의 내용을 문제삼아 제작진에게 수정·삭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제작자율성 침해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 방송 공정성을 심의하는 기구의 사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된 셈이다.

이현주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2015년 KBS '친일과 훈장' 불방 사태 당시 시사제작국장으로 재임했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통심의위는 24일 이현주 전 KBS 시사제작국장을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1990년 K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장,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 시사제작국장, 대구총국장 등을 역임했다. 

방통심의위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 참언론인 대상을 수상하고, 최근 방송 분야 저서를 출간하는 등 방송·언론 분야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이 사무총장을 소개했다. 방통위설치법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사무총장은 방통심의위원장이 임명한다.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방송·통신 심의안건을 선정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사무총장이 KBS 시사제작국장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15년, KBS 시사제작국 탐사보도팀이 2년 넘게 기획·취재해 온 <훈장> 2부작(1부 '간첩과 훈장, 2부 '친일과 훈장') 불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KBS 탐사보도팀은 정부를 상대로한 정보공개 소송과 취재 끝에 대한민국에서 수여된 훈장 70여만 건의 내역을 확보했다. 2015년 3월 <훈장> 2부작은 방송일이 6월로 확정됐으나 이후 돌연 방송예정 프로그램 목록에서 삭제됐다. 2015년 9월 <훈장> 2부작 담당 팀장과 기자 2명이 각각 네트워크부, 라디오뉴스제작부, 디지털뉴스부 등으로 인사조치됐다. KBS는 2016년 2월 '간첩과 훈장'만 방영했다.

이 과정에서 부당한 수정·삭제 지시가 이뤄졌다는 게 당시 제작진들의 진술이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제작진들은 데스킹 과정에서 이현주 국장 등이 박정희 시대 훈장수여 등 특정 내용을 문제삼아 수정·삭제 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했다. 의혹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수정·삭제 지시가 박정희 시대에 국한됐고, 결과적으로 수정·삭제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이 같은 데스킹 과정과 <훈장> 2부작 편성 보류를 제작자율성 침해로 판단했다. 

사건 당시 제작진들이 밝힌 내용을 보면, 시사제작국 간부들이 <훈장> 2부작에서 삭제를 요구한 부분은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게 보낸 친서, 일본인 훈장 등이다. 2부 '친일과 훈장'은 박정희 정권 시기 일본인 70여명에게 수여된 훈장이 주요 내용이다. 훈장을 받은 이들 중에는 일제 강점에 책임이 있거나 일제 강점을 미화한 인물들이 있었다. 

KBS 사측은 양대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KBS본부·KBS노동조합)의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요구도 거부했다.공정방송위원회는 노사 단체협약에 규정된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공식기구다. KBS 사측은 시사제작국이 <훈장>을 '데스킹'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 사측은 기자협회의 보도위원회 개최 요구도 거부했다. KBS 사측이 편성규약과 단체협약을 위반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친일과 훈장' 불방 사태로 KBS를 떠난 취재기자는 뉴스타파로 이직했고, 뉴스타파에서 <훈장과 권력> 4부작 보도가 이뤄졌다. 보도 프롤로그는 'KBS가 지른 빗장, 뉴스타파가 열다'이다. 친일인사들에 대한 서훈은 이승만·박정희 집권 기간에 집중됐다. 

뉴스타파 '훈장과 권력' 4부작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타파 보도 이후 KBS 내부게시판에는 '이현주 선배께 문의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KBS 보도국 한 구성원은 "탐사제작부에서 <훈장> 내역을 가지고 하려던 아이템들에 지금 뉴스타파에서 하고 있는 것도 포함이 됐었던 것이 맞나"라며 "KBS 내에서 <훈장> 관련 논란이 기자들의 성명과 데스크들의 해명으로 전개될 때는 몰랐는데 저렇게 다큐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니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여쭙는다"고 했다. 

그는 "KBS에서 내보낸 다큐의 완성도가 뉴스타파 다큐의 완성도보다 떨어지는 것은 물론, 소위 '야마'라고 할 수 있는 주제의식에서도 KBS의 그것이 소구력이 떨어져 보인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우리 기자들이 발굴한 <훈장> 내역으로 겨우 그 정도 다큐 1편밖에 낼 수 없는 것이었나. 데스크의 시각이나 능력이 우리의 기대와 매우 다른 것인가"라며 "21년을 KBS에서 한솥밥 먹은 후배 기자가 저런 아이템을 방송하지 못해 정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면, 당시 데스크들은 너무 미안하지는 않은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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