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래퍼 블랙넛이 2주 전 출연한 딩고 프리스타일 ‘킬링벌스’ 영상 재생 수가 370만을 넘었다. ‘킬링벌스’는 여러 가수가 출연해 자신의 노래를 라이브 메들리로 부르는 유튜브 콘텐츠다. 블랙넛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힙합 커뮤니티에 재치 있고 반사회적인 가사의 작업물을 올려 이름을 알린 후 데뷔한 래퍼다. 2015년 엠넷 <쇼미더머니4>에 출연하며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세를 얻었다. 한동안 인기를 이어 가던 중 여성 래퍼 키디비를 가사와 공연을 통해 수차례 성적으로 모욕했고 2017년 키디비에게 고소당했다. 2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이 확정됐다. 블랙넛은 몇년 간 세상의 뒤안길로 흘러가 찾아 볼 수 없다가 ‘킬링벌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블랙넛(Black Nut)의 킬링벌스 영상 갈무리
블랙넛(Black Nut)의 킬링벌스 영상 갈무리

370만은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 블랙넛의 선정적 캐릭터, 노래 가사와 맞물려 나온 파급력 같다. 딩고 측은 비속어 가사들을 여과 없이 내보냈고, 댓글 창을 보면 이 점에 통쾌해하는 반응이 많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져 가는 대한민국에서 딩고한테 너무 고마움” “블랙넛은 말과 행동 앞뒤가 다르거나 태도가 바뀌는 다른 래퍼와는 다르게 한결같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들이다. 정말로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사회라면 저런 영상이 올라오지도 못했다. 미국 힙합 트랙들도 심의 기준에 맞춰 가사가 묵음 처리되는 규제를 받는다. 사실에 부합하는 상황이 있다면, 저런 댓글이 많은 추천을 받을 만큼 표현의 자유에 관해 오해가 퍼져 있다는 사실일 테고, 블랙넛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점이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블랙넛은 ‘일베 하는 래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가사를 아주 잘 쓰는 래퍼였다. 보통 높이 평가받는 깊은 가사와는 다르지만, 표현이 뒤통수를 치고 주제를 포착하는 각도가 참신했다. ‘배치기’란 노래에선 인기 없는 ‘아싸’의 러브스토리를 손에 잡힐 듯 풀었고, ‘가가 라이브’에선 디씨와 라이브 채팅이라는 인터넷 문화를 무대로 한 편의 토막극을 스토리텔링했다. 두 노래는 블랙넛이 일이십 대 남성 팬들에게 가닿았던 호소력을 집약한다. 백수 신세에 인터넷 쓰레기장에서 뒹굴며 ‘패드립’이나 치는 ‘루저’의 감수성이다. 블랙넛은 젊은 남성들의 분노와 열패감을 일베와 디씨의 하위문화 코드를 통해 음악적 캐릭터로 형상화한 케이스다.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리얼하고 현실의 보편성과 밀착된 래퍼였다.

성희롱성 가사로 여성 가수를 모욕한 혐의를 받는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3.15. (서울=연합뉴스)
성희롱성 가사로 여성 가수를 모욕한 혐의를 받는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3.15. (서울=연합뉴스)

하지만 블랙넛의 노래를 이렇게만 정리할 순 없다. 그는 동년배들의 정서를 그리거나 인터넷 하위문화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회적 기준을 월장했다. 그 안엔 역시 사회의 자화상과도 같은 알몸의 혐오가 활개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단순히 수위 높은 가사를 쓰는 게 아니라 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함부로 다루어선 곤란한 대상들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숱한 약자혐오, 여성혐오 가사 속에 키디비를 모욕한 사건이 튀어나왔다. 블랙넛의 캐릭터 속에서 ‘루저’와 혐오는 한 몸으로 붙어 있어 시대의 깊숙한 현실을 반영했고, 루저 캐릭터가 자신이 빚은 사회적 물의에 책임지는 것을 모면하는 알리바이로 쓰였다. “블랙넛은 우리 사회의 거울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가 그가 두둔 받는 논리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블랙넛은 10년 전에는 재미가 있었다. 가사 구절마다 등장하는 기발한 표현은 그의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감탄할 만했다. 요즘 내는 작업물을 보면 10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변한 게 없단 건 태도나 신념이 한결같다는 뜻이 아니다. 남들이 안 쓰는 혹은 못 쓰는 반사회적 표현을 저지르면서 용기를 뽐내고 관심을 갈구하며, 세상을 향해 인정투쟁을 벌이는 데 고착된 작위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가사는 오히려 퇴보했다. 예전처럼 참신한 표현도 없고 자조적 정서가 빚던 페이소스도 없다. 소송 패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함없다고 과시하고 싶은 것처럼, 그저 수위를 높이기 위해 수위를 높인 표현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10년 전에나 유행하던 ‘이기야’ 같은 일베어를 뱉는다.

블랙넛(Black Nut)의 킬링벌스 영상 갈무리
블랙넛(Black Nut)의 킬링벌스 영상 갈무리

블랙넛의 가사가 매력이 없어진 건 더 이상 그가 ‘루저’를 향한 연민을 호소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그의 가사에선 맥락과 내러티브, 정서적 두께가 사라지고 위악밖에 남지 않았다.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음악 세계의 전환이나 발전도 없이 동년배들이 어릴 때 빠져 있던 의식과 말투에 냉동인간처럼 머물러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자각하며 사회화되지 못한 채 신체적 나이만 먹은 어떤 ‘아재’의 모습이다. 플레이어들은 삼사십 대가 되며 어른이 되었는데도 한국 힙합 신은 문화적 성숙과 팬층 확대 없이 정체돼 있다. 나아가서 거기엔 청년 세대를 자기 몫의 책임을 갖춘 주체로 호명하지 못하고 사회적 연민을 퍼붓는 데만 머무른 이 사회 청년 담론 십 년의 실패가 비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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