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한국 힙합에서 <쇼미더머니>는 방송 이상의 존재였다. 이 방송이 수익규모가 팽창한 한국 힙합의 경제구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는 2012년에 시작했고 2014년 시즌3에서 히트를 치며 엠넷의 간판 방송이 됐다. 이전까지 가요계에서 제한적으로 용인되던 장르 음악이었던 힙합은 <쇼미더머니>를 발판으로 메인스트림에 진입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에 흥미를 갖고 힙합 신에 유입한 시청자들이 있었다. 래퍼들은 인지도를 얻었고 행사장에서 비싼 몸값에 앞 다투어 섭외됐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돈을 보여”줬다. 단언하는데, 한국 힙합 장르사를 엮는 책이 있다면, 2010년대는 ‘쇼미더머니의 시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방송 전후로 한국 힙합은 산업적 차원, 문화적 차원, 창작물 텍스트의 차원, 모든 차원에서 격변을 맞았다.

그렇다면 질문이 떠오른다. <쇼미더머니>가 도래하며 한국 힙합이 새로운 창세기를 맞았다면 ‘<쇼미더머니>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영원할 것 같던 ‘쇼미더머니 시대’, <쇼미더머니>란 방송의 흥행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방송된 <쇼미더머니 8> 시청률을 보자. 우승자가 가려지는 마지막 회가 고작 1.3%였다. 재작년 방송된 <쇼미더머니 777>은? 시즌 8보단 높다. 0.1% 높아서 문제지. <쇼미더머니>만 고전한 게 아니다. 이 방송의 성공에 편승해 제작된 MBC <킬빌>은 지상파 방송인데도 최고 시청률이 1.5%였다. 힙합의 화제성과 확장력 자체가 소진되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힙합 예능 방송이 곧 한국 힙합 상업성의 코어였으니까. 엠넷 임원진과 티타임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쇼미더머니>가 올해에도 방영되기는 힘들 것 같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8>

이제 한국 힙합은 망했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다. 이건 힙합 신을 넘어선 시대적 상황의 반영인 한편, 힙합 신에도 호재가 될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이미 펼쳐지고 있다. 몰락한 건 <쇼미더머니>만이 아니다.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의 수명이 가물거린다. <프로듀스> 시리즈 역시 시즌 2 이후 줄곧 시청률이 하락세였고, 작년 방영된 <퀸덤>도 시청률 1%대였다. 최근 한국 대중문화의 동향은 덩어리진 대중문화를 이루던 개별 부문들이 느슨하게 분절되면서 서브컬처화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TV가 있는 안방에서 걸어 나와 스마트폰 매체로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다. TV를 켜면 나오던 각각의 방송 분야가 직접 찾아봐야 하는 개별 유튜브 채널, 네이버 TV 같은 매체로 안치됐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문화적 관심사가 쪼개지고 분리된다. 아이돌이면 아이돌, 힙합이면 힙합, 너나없이 보는 사람들이 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간다. 물론 ‘그들’의 숫자가 결코 작지는 않다.

한국 힙합 신이 상업적으로 흘러갈 길도 저곳에 있다. 미디어의 지도에서 뉴미디어가 영토를 늘려가면서, 거대 방송국의 후원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래퍼 개인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팬들과 만날 수 있고, 래퍼들이 뭉쳐서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거기 밑천이 될 인지도와 지명도를 획득해 놓은 래퍼도 다수 있다. 유튜브 채널 ‘딩고 프리스타일’은 이미 적절하게 마련돼 있는 예시다. 구독자 113만 명의 이 채널은 래퍼들의 뮤직 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을 소개하는 건 물론, 래퍼들을 주인공으로 예능 방송 시리즈를 제작해 게시하고 있다. 힙합에 관한 작은 종합 미디어 플랫폼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래퍼가 있다. 딩고 프리스타일 채널에서 ‘급이 다른 염따의 원데이 FLEX’라는 시리즈물에 출연하며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를 퍼트린 염따가 그렇다. 최근엔 더 콰이엇과 또래 래퍼들이 프로젝트 그룹 ‘다모임’을 결성해 노래와 리얼리티 영상을 선보였다. 이건 ‘쇼미더머니 시대’ 이후를 의식하고, 독자적으로 장르적 이슈를 조성해 보려는 목적의식에 의한 시도 같다. 물론 딩고 프리스타일 외에도 힙합에 관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몇 가지 채널이 더 있다. 모든 래퍼가 염따, 다모임처럼 성공할 순 없겠지만 자립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멍석은 깔려있다.

다만, 향후 한국 힙합 신이 ‘쇼미더머니 시대’만큼, 그 이상으로 팽창하긴 힘들다. 왜 그런가? 동어반복 같지만, 유튜브와 SNS는 작은 미디어이고, 힙합은 ‘그들만의 리그’로 서브컬쳐화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시청자 계층을 아우르며 폭발적 화제성을 부여하는 프라임 타임 방송의 힘이 사라진 이상 힙합 신 팬덤 유입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국내 힙합 시장은 예전에 비해 출입구가 좁아졌는데, 그렇다고 한국 힙합이 케이팝 산업처럼 해외 시장으로 파이를 확장할 수 있는 산업도 아니다. 지금껏 다져진 일정 규모의 고정적 소비자를 상대로 ‘영업’을 하고 소폭의 소비자 유입을 노려야 하는 정세고, 래퍼들의 주 수입원이던 행사 시장에서도 <쇼미더머니> 시절만큼 폭넓게 초대받긴 힘들 것 같다.

지난 십 년은 오디션 방송의 열기를 타고 파이가 크게 확장된 시기였다. 하지만 방송 출연 한 번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올해부터 중요해지는 건 신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뉴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 더해, 다양한 콘셉트의 공연과 행사를 조직하며 팬들과 대면하는 기회를 늘리고, 문화의 내용물과 슬로건을 짜는 무브먼트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래퍼들은 유명세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방송이 끝난다면 신인 래퍼가 단 번에 주목받을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지는 만큼, 기층에 있는 래퍼들과 기득권을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2020년대 한국 힙합의 키워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플레이들이 공생할 수 있는 토대를 닦는 것, 바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튜브 조회수를 넘어 ‘좋은 음악’으로 인정받는 환경이다.

그런 차원에서 간언을 하려 한다. 힙합이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했다가 다시금 하위문화가 되어 가는 건 반드시 미디어 지형의 재편 때문은 아니다. 래퍼들과 리스너들 스스로 초래한 면도 있다. 미국에서 건너온 특수한 문화를 영위한다는 자부심이 지나쳐 사회와 소통을 포기한 면이 있다. 보편적 사회 환경과 괴리된 행각을 고집하고 가사를 뱉으며 ‘힙찔이’란 빈축을 사는 한편, 그런 면모에 감응한 일정 숫자의 마니아들이 결집한 문화적 자치구가 된 것이다. 00년대까지 힙합의 비주류성이 마이너한 음악 취향의 문제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래퍼 및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과 그 밖의 사회 환경, 여론 사이 '문화적 간극'이 깊어진 상태다. 방송 흥행을 위해 온갖 선정적인 장치로 힙합을 퍼 먹은 <쇼미더머니>가 한몫을 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쇼미더머니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플렉스’와 ‘머니 스웨거’로 축제를 이어가고 싶다면 장르 신 구성원들이 저 간극을 메꾸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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