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히면서 조계사의 긴장감은 다소 풀려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한상균 위원장 검거를 위해 경찰병력을 배치해 조계사 출입을 통제했다. 결국, 조계사에는 직원들과 ‘기자증’을 가진 사람들만 통행이 가능했다. 이날의 조계사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했어야 할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10일 오전 조계사는 한상균 위원장의 기자회견과 자진출두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박2일’ 등 예능프로그램 촬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미집 카메라가 조계사 이곳 저것에 배치됐고, 기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바삐 움직였다. 조계사 직원들이 안전을 위해 인간띠를 구축한 9시 50여분부터는 대웅전 앞에 카메라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계사 직원들은 ‘부상을 당할 수 있다’면서 계단에 있던 카메라 기자들에게 조금만 물러나달라고 요청했지만, 한 기자가 “이러면 (우리가 직원들을)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되받아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이날 일반 시민들의 조계사 출입은 금지됐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대웅전 앞에 기자들이 모여 한상균 위원장이 걸어오는 길목을 촬영하기 위해 대기 중ⓒ미디어스
시계가 10시 20분을 가리키자 한상균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의 손과 발은 더욱 빨라졌다.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와 함께 한상균 위원장을 중심으로 기자들이 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상균 위원장,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기사 연일 쏟아져” 쓴소리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모습ⓒ미디어스
10시 50분경. 대웅전에서 조계종 자승총무원장과 면담을 마친 한상균 위원장은 출두에 앞서 기자회견을 위해 평화법당 앞에 섰다. 그는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조계종과 조계사, 신도들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함과 동시에 “많은 (기자)분들이 노동개악에 관심을 가지고 오셨는지, 한상균의 거취에 관심을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불평을 터뜨렸다. TV조선과 채널A 등 종편 뿐 아니라, 다수의 언론매체들은 그간 민주노총을 ‘귀족노동자 조직’으로 낙인 찍고 한상균 위원장이 마치 큰 죄를 지은 죄인인 양 취급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한상균 위원장은 “노동개악이 주는 국민적 재앙이 무엇인지 제대로 해부하고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그런 언론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잠시 현장을 떠나지만 노동개악을 막아내는 총파업 투쟁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기자회견문에도 언론에 대한 불만이 반영됐다. 3분의 2 정도가 언론보도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저는 해고 노동자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고 실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정부는 저임금 체계를 만들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죽어야 기업이 사는 정책이 제대로 된 법이고 정책입니까?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_한상균 위원장

한상균 위원장은 ‘여기 계신 언론들’을 언급하며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 내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귀족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한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98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글의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희망 없는 하루를 버티고 살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 악법은 그나마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기회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다. 나이 50이 넘으면 당연히 파견노동을 해야 하는 내용도 포함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노총이 귀족노동자 조직에 불과하다면 왜 비정규직악법을 막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며 총궐기 파업을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개혁법안의 문제점을 짚는 한상균 위원장ⓒ미디어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 ‘폭력시위’만을 부각시킨 언론에 대해서도 한상균 위원장은 “국가 공권력의 폭력진압은 왜 이야기하지 않느냐”면서 “살인 물대포에 69세 백남기 농민이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누워 계신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 이 분이 쇠파이프를 들었나, 아니면 경찰에게 폭력을 휘둘렀느냐”고 따졌다. 그는 “그런데 왜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느냐.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나선 만큼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군사정권 때나 언급됐던 ‘소요죄’를 적용하라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은 “구속, 피하지 않겠다”며 “그렇지만 법정에서 광기어린 공안탄압의 불법적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쉬운 해고, 노조무력화를 완수하기 위한 노동개악을 경제를 살리는 법이라고 말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면서 “국민 대재앙을 불러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도 “또 다시 정부여당과 야합하려 한다면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미디어스
한상균 위원장은 ‘자진출두’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관련해 “불자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컸고 조계종의 성지가 공권력에 의해 침탈당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종단 측에서도 노동개악이 일방적으로 처리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고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혀줬다”면서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이번 사태를 종교계가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새누리당 이인제 노동특위 위원장이 노동개혁안과 관련해 ‘TV생중계’를 제안한 것을 두고 한상균 위원장은 “말로만 하지 말고 꼭 성사시켜 달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사명감 가지고 기자직? ‘기레기’라고 할 정도도 불신…TV조선·채널A 물러가라”

이날 평화법당 앞에서는 기자들과 한상균 위원장 지지자들 간의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면서 “노동개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한상균 위원장이 오늘 출두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개악의 문제이다. 여러분들은 사명을 가지고 기자 생활을 하겠지만 이 땅 수많은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기레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불신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여러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노동자 쉬운해고 노동개악 반대한다”, “채널A·TV조선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동안 계속 지나쳤지만 민주노총을 매도한 것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웃픈’사건도 벌어졌다. 한 기자가 취재에 방해된다며 기자회견 사회를 보던 민주노총 관계자에 “사회자 앉아달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주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레기'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황당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한상균 위원장은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수갑을 찬 채로 경찰에 의해 호송됐다. 호송되는 과정에서도 한상균 위원장은 끝까지 “진실을 전해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상균 위원장의 호송과정을 지켜본 권영국 변호사는 “소요죄 적용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회·시위라고 했을 때, 발생한 사건과 차이가 없다. 상식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혐의가 과장되거나 끼워 맞추기식 정치수사가 돼선 안 된다”고 우려를 보탰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이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몰려든 기자들의 모습이다ⓒ미디어스
이날 조계사에 모인 취재기자들의 행동과 대화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이날 조계사에는 기자들 스스로도 “도대체 취재기자들이 얼마나 온 거야”, “저 건너편 옥상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라며 놀라워 할 정도로 상당한 취재 인파가 몰렸다. 한 기자는 “이건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라며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경멸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등장할 때는 대규모 취재인력이 모여도 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것은 그저 호사스러울 뿐이라는 얘긴지 의문이다. 이러니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TV를 틀면 '민주노총·한상균 죽이기'로 볼 수밖에 없는 보도들이 쏟아진다. 노동개혁안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짚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날 조계사 직원들의 인간띠를 만든 것을 보고 한 기자는 직원들에게 “(서로) 손을 잡느냐”고 물었다. ‘그럴 계획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그 기자는 “그림이 안 나온다”고 불평을 했다. 결국, 조계사 직원들은 손을 잡는 '그림을 만들어' 한상균 위원장이 나오는 길목을 지켜야 했다. 언론매체들이 ‘손을 잡으라’고 요청해야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노동개혁법안의 연내 처리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왜 노동자들의 손을 잡지 않느냐’고 보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느 때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때와 장소였지만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주변부에만 쏠려있다. 시민들의 알권리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조계사에 모인 기자들을 ‘승냥이 떼’라고 불렀다. 기분 나쁘다며 '갑질'을 궁리할 때가 아니다.

아래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하던 날, 조계사의 모습들이다.

▲ 12월 10일 조계사 앞을 점령한 경찰병력 ⓒ미디어스
▲ 12월 10일 조계사 앞을 점령한 경찰병력 ⓒ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을 찍기 위해 지미집 카메라들이 동원됐다. ⓒ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할 장소는 이미 기자들로 가득ⓒ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언론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한상균 위원장ⓒ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 머리띠를 동여맸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노동개악 저지" 구호를 외치는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 관계자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기자들이 조계사밖으로 나가는 한상균 위원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TV조선은 한 위원장에 대한 마녀사냥에 가장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미디어스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힌 12월 10일 조계사의 모습. 한상균 위원장이 경찰 호송된 이후 조계사 앞의 모습ⓒ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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