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의사를 밝히면서 조계사의 긴장감은 다소 풀려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한상균 위원장 검거를 위해 경찰병력을 배치해 조계사 출입을 통제했다. 결국, 조계사에는 직원들과 ‘기자증’을 가진 사람들만 통행이 가능했다. 이날의 조계사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했어야 할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10일 오전 조계사는 한상균 위원장의 기자회견과 자진출두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박2일’ 등 예능프로그램 촬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지미집 카메라가 조계사 이곳 저것에 배치됐고, 기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바삐 움직였다. 조계사 직원들이 안전을 위해 인간띠를 구축한 9시 50여분부터는 대웅전 앞에 카메라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계사 직원들은 ‘부상을 당할 수 있다’면서 계단에 있던 카메라 기자들에게 조금만 물러나달라고 요청했지만, 한 기자가 “이러면 (우리가 직원들을)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되받아치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상균 위원장,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기사 연일 쏟아져” 쓴소리
한상균 위원장은 <잠시 현장을 떠나지만 노동개악을 막아내는 총파업 투쟁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기자회견문에도 언론에 대한 불만이 반영됐다. 3분의 2 정도가 언론보도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저는 해고 노동자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고 실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정부는 저임금 체계를 만들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죽어야 기업이 사는 정책이 제대로 된 법이고 정책입니까?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_한상균 위원장
한상균 위원장은 ‘여기 계신 언론들’을 언급하며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 내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귀족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한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98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글의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희망 없는 하루를 버티고 살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 악법은 그나마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기회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다. 나이 50이 넘으면 당연히 파견노동을 해야 하는 내용도 포함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노총이 귀족노동자 조직에 불과하다면 왜 비정규직악법을 막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며 총궐기 파업을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대대적인 검거작전에 나선 만큼 한상균 위원장을 구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군사정권 때나 언급됐던 ‘소요죄’를 적용하라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한상균 위원장은 “구속, 피하지 않겠다”며 “그렇지만 법정에서 광기어린 공안탄압의 불법적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쉬운 해고, 노조무력화를 완수하기 위한 노동개악을 경제를 살리는 법이라고 말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면서 “국민 대재앙을 불러올 노동개악을 막기 위해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도 “또 다시 정부여당과 야합하려 한다면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명감 가지고 기자직? ‘기레기’라고 할 정도도 불신…TV조선·채널A 물러가라”
이날 평화법당 앞에서는 기자들과 한상균 위원장 지지자들 간의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면서 “노동개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한상균 위원장이 오늘 출두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개악의 문제이다. 여러분들은 사명을 가지고 기자 생활을 하겠지만 이 땅 수많은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기레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불신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여러분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노동자 쉬운해고 노동개악 반대한다”, “채널A·TV조선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동안 계속 지나쳤지만 민주노총을 매도한 것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웃픈’사건도 벌어졌다. 한 기자가 취재에 방해된다며 기자회견 사회를 보던 민주노총 관계자에 “사회자 앉아달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주체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레기'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황당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한상균 위원장은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수갑을 찬 채로 경찰에 의해 호송됐다. 호송되는 과정에서도 한상균 위원장은 끝까지 “진실을 전해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상균 위원장의 호송과정을 지켜본 권영국 변호사는 “소요죄 적용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회·시위라고 했을 때, 발생한 사건과 차이가 없다. 상식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혐의가 과장되거나 끼워 맞추기식 정치수사가 돼선 안 된다”고 우려를 보탰다.
이날 조계사 직원들의 인간띠를 만든 것을 보고 한 기자는 직원들에게 “(서로) 손을 잡느냐”고 물었다. ‘그럴 계획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그 기자는 “그림이 안 나온다”고 불평을 했다. 결국, 조계사 직원들은 손을 잡는 '그림을 만들어' 한상균 위원장이 나오는 길목을 지켜야 했다. 언론매체들이 ‘손을 잡으라’고 요청해야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노동개혁법안의 연내 처리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왜 노동자들의 손을 잡지 않느냐’고 보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느 때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때와 장소였지만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주변부에만 쏠려있다. 시민들의 알권리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조계사에 모인 기자들을 ‘승냥이 떼’라고 불렀다. 기분 나쁘다며 '갑질'을 궁리할 때가 아니다.
아래 한상균 위원장이 자진출두 하던 날, 조계사의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