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강진구 기자는 최근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으로부터 <공인노무사법> 제14조(비밀 엄수) 위반 혐의로 출석하라는 요구서를 받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1월 13일 그가 쓴 <노동위 “JTBC 부당해고자 구제해야”> 기사(▷링크)를 이유로 진정을 넣었기 때문이다. 강 기자는 2012년 공인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노무사 자격증을 소지한 기자로 활동 하고 있다. 지난해 JTBC 프리랜서 허 아무개 씨가 회사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사건 변론을 맡게 됐다. 강 기자는 허 씨의 대리인으로서 노동위원회에서 그를 변론했고, 그 결과를 기사화했다. 이것을 두고 경총은 ‘변론을 담당한 사건을 기사화하는 것은 노무사로서 비밀준수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경총은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소지한 기자는 자신이 변론을 하고 있는 사건을 기사화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는 20일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처음 이 기사를 썼을 때, JTBC 측에서 ‘대리인이 기사를 쓰는 건 문제가 안 되느냐’고 똑같은 문제를 제기했었다”며 “결국, 방송사 프리랜서 문제가 민감하다보니 (경총 그리고 JTBC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사업자들이)심리적 위축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닌가 싶다”고 상황을 분석했다.

▲ 2014년 9월 1일자 '경향신문' 8면 기사
강진구 기자는 “JTBC 허 씨에 대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은 방송사 프리랜서에 대해 첫 근로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방송사 CG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된 포털카페에 공지사항으로 뜨고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등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강 기자는 “나는 허 씨의 대리인으로서 변론 활동을 했고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JTBC는 허 씨와 같은 팀에서 일하던 프리랜서 A씨가 노동청에 퇴직금 지급을 신청하자, 팀 전원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JTBC는 허 씨와 관련해 ‘계약체결 당시 프리랜서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서울지노위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관련기사 : '갑을 관계' 부조리 고발하는 손석희 뉴스, 비정규직 해고하는 JTBC)

강진구 기자는 “(경총이 문제로 삼은)해당 기사는 비대칭성에서 사용자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경총이 ‘비밀준수의무’ 위반으로 진정을 넣었다는 것은 한 기자에게 징계를 주고 망신을 주는 것을 넘어서 전반적인 방송사 내 프리랜서 부당해고 보도에 대한 심리적 위축을 기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건 자체는 황당하지만, 결과에 따른 파장은 클 전망이다. 강진구 기자는 “공개된 심문 내용을 노무사들에게 ‘비밀준수’위반으로 몰고 가면, 원천적으로 기자들이 노무사를 상대로 한 취재는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며 “노무사는 비밀준수위반이 되고 언론매체 또한 공동정범이 된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강 기자는 “노동위원회가 부당하고 억울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위한 곳이라는 특수성을 놓고 봤을 때, 노동자들의 소통 창구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언로를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강진구 기자는 “노무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동자 상담 단계에서도 기사를 통해 여론을 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자신의 부당한 상황을 노출시킬 언론과의 접촉이 차단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변호사법> 또한 ‘비밀준수의무’ 조항이 있기 때문에 노동부의 결정에 따라 같은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결론에 따라, 노무·변호사의 활동 범위와 언론의 자유 또한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유상철 회장은 강진구 기자 ‘비밀준수의무’ 위반 진정 사건과 관련해 “노동위원회의 심문을 공개주의”라고 지적했다. 유 회장은 “노동위원회에 참석했던 대리인이 사실을 보도한 것을 비밀준수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의 공판을 방청한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것도 비밀준수의무 위반이냐?”고 반문했다. 유 회장은 “이번 사건은 강진구 기자가 ‘기자’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여진다”며 “사건 자체가 경총의 직권남용으로 의견서 제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강진구 기자는 28일로 예정된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강 기자는 “조사 자체를 거부할 경우, 경총의 진정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고용노동부가 이번 결정으로 인해 파생될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신중하게 결정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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