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최고의 취재열기 였다. 제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출범식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몰려들었다. ‘박효종’ 한 사람의 대단한 힘이었다.

청와대는 ‘친일사관’ 논란을 빚고 있는 문창극 총리후보자 논란이 한창이던 13일, 뉴라이트 출신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를 모든 방송 프로그램과 통신을 심의하는 방통심의위에 꽂았다. 하마평 때부터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전력 등으로 논란이 뜨거웠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다. 박근혜 캠프 출신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높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그를 임명했고, 박효종 전 교수는 ‘위원장’으로 방통심의위에 입성했다.

17일 방통심의위가 위치한 목동 방송회관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친일사관’ 박효종 전 교수가 위원장으로 내정됐으며, 입성식(출범식)을 한다는 소식에 역사학자를 포함한 방송현업인들과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은 ‘차라리 아베를 데려오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 3기 방통심의위 출범식이 열린 방송회관 3층 회견장의 모습ⓒ미디어스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차라리 아베를 임명해라”

이들은 오후 5시로 예정된 3기 방통심의위 출범식을 앞두고, 방송회관에서 <문창극에 이어 박효종이라니? 대국민 언론장악 선언인가!>라는 제목으로 '친일독재 찬양·대선 캠프 출신 방통심의위원장 반대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역사적실천정의연대 이준식 정책위원장은 “박효종 전 교수가 방통심의위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심의위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공정하고 중립적인 기관이라고 법에 명시돼 있는데, 박효종 씨는 전혀 중립·공정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식 정책위원장은 “요즘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로 논란이 많은데, 박효종 씨는 그에 못지 않게 친일 독재 미화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박효종 신임위원장은 ‘독립운동을 했어도 민족을 잘 살 게 하는 게 없었다면 반민족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친일파가 우리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처럼 쓴 사람으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 현업인 단체의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효종 신임 위원장을 수장으로 하는 방통심의위가 직접적인 방송내용을 심의하고 나선다면 제작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은 완전히 위축될 것이라는 염려였다.

▲ 6월 16일 언론노조 및 시민단체들이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방심위의 문창극, 박효종은 물러나라"고 촉구했다ⓒ미디어스
방송기자연합회 조승호 정책위원장은 박효종 신임 위원장에 대해 ‘방통심의위의 문창극’이라면서 “문창극 후보자처럼 ‘과거발언은 미안한데 총리되면 잘하겠다’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방통심의위가 정치편향으로 매몰됐을 때 얼마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지 쉽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언론포럼 현상윤 회장은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에게 방송에 대한 심의를 맡기는 것은 부정선거를 저지른 사람에게 공정한 선거를 하도록 심판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면서 “그런 일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포가 놀랍다”고 꼬집었다. 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 또한 “박효종 씨의 방통심의위원장 임명은 ‘불량인사’”라면서 “정권의 양심에 기대할 건 더 이상 없다. 무조건 막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고개 숙이고’ 출범식장에 들어온 박효종 신임 방심위원장

청와대가 뒤늦게 박효종 신임위원장을 비롯해 함귀용·윤석민 심의위원의 위촉을 강행하면서 3기 방통심의위는 한 달 간의 공백 끝에 출범하게 됐다. 그러나 3기 방통심의위는 출발부터 험로를 예고했다. 당초 5시로 예정돼 있던 출범식은 20분이나 지연됐다.

▲ 출범식장으로 20여분 지연된 채 들어오는 박효종 신임 방통심의위원장의 모습ⓒ미디어스
▲ 출범식장으로 20여분 지연된 채 들어오는 박효종 신임 방통심의위원장의 모습ⓒ미디어스
출범식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역사학자·방송현업인·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가로막았다. 이들은 “뉴라이트 친박인사 거부한다”, “박효종은 물러나라”를 끊임없이 외쳐댔다. 이에 박효종 신임 위원장은 물론 정부여당 추천 그리고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출범식장으로 입장해야 했다.

그렇게 단상에 오른 박효종 신임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피해갔다. 수사 이상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절대 지켜지지 않았던 표현들만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은 철저히 보호하되, 방종과 무절제는 경계해야 한다.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심의위원들은 비록 여야의 추천을 받아 선임됐지만 심의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공동의 목표의식과 정체성을 공유하며, 신의와 선의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심의 공동체로 운영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
“심의가 공익정신에 입각해 엄정하고 공정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심의결과에 대해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합의제 정신으로 위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 3기 방통심의위 출범식장에 항의 피케팅을 뚫고 들어온 박효종 신임 방통심의위원장의 모습ⓒ미디어스
▲ 6월 16일 3기 방통심의위 출범은 이렇게 끝이 났다ⓒ미디어스
이날 3기 방통심의위 출범식은 9명이 모두 단상아래 서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기 박만 위원장은 출범하던 날 기자들과의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그런 박효종 신임 위원장이 엘리베이터를 타러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가며 ‘친일사관 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계속 질문했지만 박효종 신임위원장은 “나중에 할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3기 방통심의위의 출범은 역대급의 기자들과 현업인들이 모여 그렇게 화끈(!)하고 일방적으로 시작됐다.

▲ 3기 방통심의위 출범식이 예정된 회견장 앞에서 시민사회에서 박효종 신임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 피케팅을 벌였다ⓒ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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