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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땅 라싸에서 "오늘 장은 망쳤다"

기사승인 2019.10.21  12: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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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해, 바다와 같아라] 라싸, 하늘아래 첫 동네 2

[미디어스] 포탈라궁에서 멀지않은 약왕산 절벽, 불화(佛畫) 가득한 천불애(千佛崖)를 지나 ‘옴마니밧메훔’ 육자진언이 새겨진 마니석이 켜켜이 포개진 더미에 다다라, 절로 침묵에 잠겨 가만히 머리를 조아렸다.

부처님을 그려놓은 얇은 판석 가득 찬, 탑 모양의 높다란 붉은 철골 구조물을 돌아 나지막한 계단으로 내려오다 기념품점 앞에 멈췄다. 진열대에 놓인 여러 공예품 가운데 유독 한 물건에 시선이 멎었다.

유기향로다. 단단한 몸체에 적당한 무게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모양새를 갖췄다. 놋쇠가 머금은 금속광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세련된 자태에 매료된 마음을 채 숨기지 못하고 가게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370위안이라 한다. 한국 돈으로 6만원이 넘는다. 드디어 흥정이 시작되나 싶었는데 점장은 내 애착을 눈치챘는지 좀처럼 금액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 저렴한 향로를 가리키며 그거나 사가라고 뻣뻣하게 군다. 나도 질세라 과감하게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옴마니밧메훔’ 육자진언이 새겨진 마니석이 켜켜이 포개진 마니탑

그제야 쥔장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멀어져가는 나를 불렀다. 이제 되돌아가서 줄다리기를 멈추고 적당 선에서 타협할 차례다. 그러나 아뿔싸! 일행들이 다음 일정을 좇아 썰물처럼 천불암을 빠져나간다.    

왼손, 오른손에 각각 줄을 쥔 나를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형세다. 후다닥 달라는 대로 향로 값을 치르고 가이드를 따라 갈 수도 있었으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행 맨 뒤꽁무니를 쫓아 급히 발걸음을 놓았다.  

몸은 떠나지만 미련은 남아 자꾸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가지 쓸 뻔 했다’에서 ‘공산품이 아니라서 여기 아니면 다시 못 볼 거야’에 이르기까지. 짧디짧은 시간 동안 안도, 집착, 아쉬움, 후회 등 갖은 번뇌가 쉴 새 없이 들락거린다. 

향을 사르는 것은 몸과 입과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자(戒)는 의미를 가지건마는, 향을 꽂는 그릇을 마련하려는 속내가 이토록 어지럽다. 잡념에 끌려 우왕좌왕하던 중 천불절벽 건너 편 깜깜한 방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보았다. 

야크버터를 연료삼아 헤아릴 수 없는 불꽃이 등잔마다 빛나고 있다. 마치 수 만 마리 반딧불이가 날아오르는 듯하다. 부처님께 경배 올리는 참배객들의 환희에 찬 눈빛과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등잔불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조선시대의 이름난 선승 진묵스님은 전라도 완주 서방산 봉서사에서 정진하시다가 때때로 전주 장날에 내려가 장바닥을 누비며 스스로를 시험했다. 마음이 욕심에 동하지 않으면 “오늘은 장을 잘 봤다”하시고, 온갖 유혹에 눈과 귀가 요란했다면 “오늘 장은 망쳤다"고 말씀하셨다. 

머나먼 땅 라싸에서 어리석은 나를 짚어본다. 오늘 장은 망쳤다. 

백종훈 원불교 교무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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