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이번 주엔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열애설에 올랐었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답게 가십은 금세 타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입장문을 발표해 열애설은 사실무근이며, 사진 유포 및 허위 주장에 법적 대응 할 것이라 밝혔다. 당사자의 입장 표명을 대리하는 회사가 알린 것이니, 저 입장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될 것 같다. 다만 이 소식 자체를 떠나 아이돌 열애설을 통해 곱씹을 수 있는 보편적 논점 몇 가지로 나아가려 한다.

연예인의 연애 소식은 늘 먹음직한 가십거리지만, 아이돌의 열애설은 특별한 성격이 있다. 아이돌은 대중적 인지도와 화제성을 넘어 구체적 팬덤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인이고, 팬덤과의 애착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정국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이돌 열애설은 올해에만 몇 차례 터져 나왔다. 연초에는 디스패치가 블랙핑크 제니와 엑소 카이의 스캔들을 터트렸고, 얼마 전엔 역시 디스패치가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 출신의 강다니엘과 트와이스 지효가 열애 중이라고 소문을 냈다. 이 두 가지 소식은 비교적 전통적인(?) 가십에 속한다. 스포츠 신문 연예 면에서 파생된, 유명인의 사생활을 언론사의 한 콘텐츠로 판매하는 ‘한국형 파파라치’ 매체에서 보도된 소식이었다. 이런 경우는 연예 기획사들이 자주 겪어온 양상의 스캔들이다(물론 익숙하다는 것이 그릇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슈를 유통해 유무형의 수익을 얻겠다는 동기가 있고 연예기획사를 계속 상대해야 하는 매체인 만큼, 열애설을 발행하기 전 기획사와 접촉해 보도 시기와 방식을 조율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강다니엘의 열애설은 강다니엘의 솔로 가수 데뷔가 끝난 이후에 발행됐다.

반면 작년 연말에 논란이 된 프로젝트 그룹 JBJ 출신 김용국과 올해 있었던 더보이즈 멤버 큐, 그룹 마이틴 출신으로 Mnet '프로듀스X101'에 출연한 송유빈과 '프로듀스 101 시즌1' 출신 김소희에 관한 가십은 양상이 더 혼잡했다(가수들의 소속사에선 사실무근 혹은 과거에 교제하던 사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그런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 위 가십들은 연예 매체가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에 사생활 사진이 올라오거나 루머가 유포되었고, 소문을 퍼트린 이들은 해당 아이돌의 팬덤 혹은 안티 팬덤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김용국의 경우 열애설에 이어 여러 논란이 뒤이어 터지며 곤경을 겪었는데, 그 논란들은 팬덤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디테일하고 내밀한 이슈였다. 더보이즈의 큐는 팬 사인회에서 팬들에게 고개 숙였고, 송유빈과 김소희 역시 논란에 관해 사과한다는 입장문을 게시했다. 사생활이 유출된 피해자들이 사실이다, 아니다 입장을 밝히는 걸 넘어 도리어 사과를 하는 것은 확실히 논리적인 상황도 아니고 건강해 보이는 상황도 아니다.

이 살풍경엔 온전한 팬덤 산업으로 재편되어 가는 케이팝의 현주소가 기록돼있다. 아이돌 산업의 터전은 그 기원부터 팬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팬덤에 밀착한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흔히 일 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H.O.T와 젝스키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데뷔한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2PM 등의 아이돌은 팬덤 세일즈를 바탕에 깔고 대중적 수익 활동을 했었다. 각종 공중파 황금방송에 출연했고, 음원 차트에선 아이돌 음악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그를 밑천으로 행사 섭외, 광고 촬영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반면 이제 팬덤 시스템은 아이돌 산업의 알파요 오메가가 되어간다. SNS와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분화 및 번성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사는 제각각 쪼개졌고 그에 따라 매스미디어를 소비하던 혹은 그로 인해 구성되던 ‘대중’이란 집단은 1인 미디어의 소비자이자 발행자로 분해돼 간다. 아이돌 산업 역시 더 이상 대중문화라기보다 ‘덕후’들의 폐쇄적 공동체, 서브컬처가 되었다. 공중파에선 아이돌 출연진을 찾아보기 쉽지 않고,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 음악은 약세로 접어든 지 한참 지났다. 지워져 가는 대중성을 대신해 공연, 팬 사인회, 굿즈 및 음반 판매 등 팬덤이란 특수 계층에 특화된 마케팅이 주를 이룬다. 이상의 변화를 증빙해주는 물증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아이돌 가수들의 음반 판매 수치다.

아이돌 산업은 팬덤에게 유사 인격적 소통을 판매하고, 아이돌과 팬덤의 정서적 유착 관계는 제도적으로 강화되었다. 대중적 미디어 활동 대신, 기획사들의 SNS 계정은 오직 팬덤을 위한 콘텐츠를 송출하는 미디어 플랫폼이 되었고, 팬덤이 즐길 거리 ‘떡밥’을 투척하며 팬덤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팬 사인회와 팬 미팅은 음반 판매와 연동되어 몇 차례씩 기획되고, 아이돌이 면 대 면으로 팬덤 개개인에 응대하는 접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대급부로 팬덤 문화 또한 고도화되었으며 대다수 아이돌 그룹은 코어 팬덤의 ‘현생’을 갈아 넣은 열성적 서포트를 통해 유지된다. 아이돌 혹은 기획사에 대한 팬덤의 권력은 강력해졌으며 아이돌의 더 많은 부분이 소비대상이 됐다. 이런 강렬한 애착관계의 뒷면을 뒤집으면 ‘유사 연애 심리’로 통하는 면이 있다. 그건 아이돌과 팬덤의 행복한 동거를 지속케 하는 암묵적 계약 조항이며 팬덤의 소유욕을 반영한다. 이제 어떤 팬덤들은 열애설을 방어해주거나 열애설의 상대방을 공격하는 걸 넘어, 다홍빛 환상이 산산조각 났을 때 도리어 자기 아이돌의 열애설을 직접 폭로하고 덮어주던 논란거리를 터트리며 보복한다. 아이돌은 관계를 수습하려 팬덤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이런 경향은 코어 팬덤에 대한 기획사의 의존도가 강하고 더 폐쇄적인 팬덤 환경에 놓여있는 중소 기획사로 갈수록 심하다.

현아와 이던(오른쪽) 커플 [데이즈드 제공=현아 인스타그램 캡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원래 이슈를 관리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일즈 환경과 함께 아이돌의 열애설은 기획사 경영활동의 본질을 한층 더 건드리는 변수가 되었다. 기획사들은 위험관리와 수익관리 차원에서 법적 조치를 꺼내며 변수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큐브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 현아와 이던의 열애 인정에 대해 ‘신뢰 회복 불가능’을 사유로 둘과의 계약을 해지했었고, JYP 엔터테인먼트 역시 소속 가수의 스캔들에 관해 법적 대응을 천명한 적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또한 정국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적 일상을 포착한 사진 유출은 물리적 사생활 침해에 가까우니 법적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유명인의 열애설은 원론적으로 가십의 영역에 걸쳐있다. 무분별한 열애설 유포는 물론 옳지 않지만, 명예훼손 고소는 표현의 자유와 반비례 관계에 있어 그 해법으로 법적 대응이 꼭 바람직한진 의문이 든다. 개별적 스캔들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낳는 현실에 대한 시야가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케이팝 산업이 어떤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좌표에 놓여있는지, 팬덤과 기획사를 아우르는 당사자들이 거울을 직시하는 것이다.

지금의 케이팝 산업을 만든 한 주체는 분명 팬덤이며 그들의 열정을 유사 연애 감정 한 가지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문화를 덮은 광채와 더불어 그림자도 바라보자는 것이다. 케이팝은 세계화된 장르가 되었고 이에 대해 국가적 자부심을 가진 여론이 강하다. 가령 글로벌 문화의 합리적 시각에 비출 때, 케이팝 팬덤 내부에서 아이돌의 연애가 터부시되고 열애설 유포를 고소하는 관행이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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