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준상 기자] 고 박환성·김광일 독립PD의 죽음으로 촉발된 외주제작 환경의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외주제작 불공정 거래 관행과 함께 열악한 외주제작 노동환경과 여기에 노출된 외주제작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상파 재허가에 외주제작 시스템을 평가 항목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선영 이화여자대학교 특임교수는 1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방송생태계 독립제작환경 진단을 위한 토론회’에서 방송업계 독립제작 환경의 문제점를 계약 및 거래 관행·저작권 등 수익 배부·제작비 산정 및 지급·근로시간과 근로환경·‘갑을’의 인권문제 등 5가지 분야로 나눠 설명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방송생태계 독립제작환경 진단을 위한 토론회' 모습.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앞서 방송분야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KBS 등 일부 방송사에서 외주제작 계약 시 이 계약서에서 따온 일부 문구를 계약서에 반영했지만 표준계약서의 적용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구속력이 없다. 이 때문에 방송사가 독립PD와의 계약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일방적인 계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

EBS가 고 박환성 PD에게 정부가 지급한 제작지원금의 40%를 방송사 간접비로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등의 사례는 지난 16일 열린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결의대회에서 속속들이 드러났다. 최 교수는 “공적 지원금은 제작 주체인 창작자의 제작비로 100% 책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계약 체결의 시점과 제작비 산정과 지급의 문제, 부당한 협찬비 관행 등이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저작권을 방송사가 전부 소유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촬영원본·콘텐츠의 2차적 활용에 있어서, 창작자에게 사용권리를 우선 부여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방송사는 국제 기준에 맞게, 적정 수준의 방영권료를 지불하거나 방송사 채널에서 생긴 수익금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과도한 근로시간과 열악한 근로환경,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 등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낮은 제작비로 인해 1명의 창작자가 촬영, 운전, 편집 등 제작과정에서 만능인이 돼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고, “독립PD가 방송사 책임PD에게 일방적 수정 요구를 당하거나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불공정 관행과 업무환경 문제점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현장조사·이해 당사자 관찰 중심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포맷, 장르 뿐 아니라 방송사를 구분해 제작 과정을 살펴보는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하도급, 하청의 의미인 ‘외주제작’이라는 용어를 방송업계에서 쓰고 있으나 이는 창작자를 칭하는데 맞지 않는다”며 “‘독립제작’, ‘독립창작자’로 용어를 명칭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열린 ‘故 박환성·김광일 PD 추모와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 현장. (사진=연합뉴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봉남 포춘미디어 대표는 “방송사들이 저작권 전부를 가져가는 낡은 관행과 시스템을 바꾸고, 국제적인 표준에 맞춰 제작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SBS PD출신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회장은 방송사들의 이 같은 불공정 관행을 수정돼야 하지만 현재 지상파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다고 호소했다. 오 회장은 “미디어환경 변화로 방송사들도 갈수록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KBS가 방송적폐를 청산하고 국민들 동의 아래 시청료를 인상, 먼저 제작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MBC·SBS·EBS 등의 방송사들이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미선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방통위가 지상파 재허가에 외주제작 시스템을 평가 항목으로 반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민의 자원인 전파를 활용해 영향력을 키운 반면, 공적인 사람들(독립PD)을 희생시켰다”며 “방통위가 방송사와 독립PD 간 공정한 거래 질서를 형성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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