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오랜만에 ‘라스’다운 방송 <라디오스타> (7월 5일 방송)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결혼 결심 후 내가 바람 필까봐 걱정이 됐다”, “예전엔 남친과 헤어지고 새 남친을 만날 때 공백기 없이 만났다”, “요즘 요가를 하는데 꿈에 ‘구남친’이 순차적으로 나타나서 내가 속죄를 하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 5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효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미 정점을 찍었던 걸그룹 출신 가수이자 이미 결혼 4년차 유부녀. 그래서 더 편하게 이런 얘기들을 스스럼없이 꺼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센 언니’들의 에피소드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이렇게 센 언니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헤쳤다는 점이다. 물론 심각하거나 진중하진 않았다. <라디오스타>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효리, 채리나, 가희, 나르샤. ‘센 언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은 나르샤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였다. 나르샤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방송 캐릭터가 생겼다. 몇 년을 그리 보내니 집에 와서 너무 헛헛했다. 그래서 방송에서 실제 내 모습을 보여주자 했는데, 집에 와서는 또 내가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

나르샤의 말에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이효리는 “우리 같은 성격의 여자들이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내가 망가지더라도 방송을 살려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김구라는 “이효리가 SBS <매직아이> 때 방송이 잘 안 풀리면 알아서 춤도 췃다”면서 증언을 보탰다. <라디오스타>는 네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아”를 연신 외치는 순간을, 크게 편집 없이 오롯이 살려냈다. 네 여자가 서로 공감을 한 순간. 시청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라디오스타> 섭외의 이유를 납득한 순간.

만약 여기서 끝났다면 예능이 아닌,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류의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스타>는 이효리의 ‘셀프디스’를 이어 붙였다. 이효리는 “방송이 안 풀리면 춤이라도 춰서 살렸다”는 김구라의 미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리고 나서 집에 오면 우울해서 남친을 바꿨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센 언니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재밌게 풀어냈다. <라디오스타>이기에, 이효리이기에 가능했던 방송이었다.

이 주의 Worst: 아버지가 진짜 이상하긴 해 <아버지가 이상해>

KBS <아버지가 이상해>의 차규택(강석우)은 합리적인 어른이자 이성적인 남편이었다. 아내 오복녀(송옥숙)가 며느리를 골탕 먹이기 위해 가짜 깁스를 하고, 아들 결혼식장에 한복 대신 화려한 명품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동안, 차규택은 며느리의 합가 합의서가 꽤나 합리적이라고 칭찬하면서 상식의 수준을 배반하지 않았다.

막돼먹은 시어머니 옆에서 꽤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그래서 며느리 변혜영(이유리)이 알게 모르게 의지했고 시청자들도 오복녀의 몰상식함에 대한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게 만들었던 균형점. 그것이 그동안 쌓아 온 시아버지 차규택의 캐릭터였다. 아내에게 졸혼 선언을 할 때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KBS2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2일 방송을 기점으로, 차규택은 ‘이상한 남편’이 되었다. 아내의 자궁적출수술 소식에 위로는 못해줄망정 엄살 피우고 유난 떠는 어린아이 취급을 했다. 물론 아내의 전적이 있긴 했다. 가짜 깁스 사건을 비롯해, 몇 번이고 엄살을 피웠기에 진심 어린 위로가 곧장 튀어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자궁적출수술이다. 여성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수술이라는 뜻이다.

시어머니를 그렇게 싫어하던 며느리조차 놀라고 어떤 말로 위로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3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망언을 했다. 병원에 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괜찮냐, 많이 아프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지리산에서 달려오는 거야. 뭐 이 정도면 빨리 온 거 아니냐”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그리고 나서 아내에게 건네는 첫 마디는 “뭘 서럽게 울고 짜고 그래. 들어보니 별 것도 아니라 그러더만”이었다. 감기 환자도 아니고 자궁적출 환자에게 말이다.

“암 아닌 게 어디야.” 꼭 암이어야만 울고 슬퍼합니까?
“자궁암 예방한다고 일부러 떼어내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래서 지금 아내가 자궁암 예방 목적으로 수술을 합니까?
“몸무게는 좀 줄겠구만 뭐.” 아내가 지금 다이어트 중입니까?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네 엄마 금식인데 우리가 여기서 밥 먹을 순 없잖아. 우리가 앉아 있는다고 있는 혹이 사라지냐?” 네, 옆에 앉아 있는다고 혹이 사라지진 않죠. 그래도 슬픈 감정은 좀 사라지겠죠.
“내가 하산하자마자 전화 받고 밥도 안 먹고 달려왔어” 네네, 아~주 잘하셨어요.
“배고파서 쓰러지겠네” 고작 배고픈 걸로 투정 부릴 때입니까? 아내는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마당에?

KBS2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내가 세상이 다 끝난 것 같다고, 여자로서 인생은 다 끝난 것 같다고 오열해도 소용없다. “유난 좀 떨지 말라. 나도 맹장 떼어냈어.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 아니야?”라는 ‘단호박’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애 또 낳을 것도 아닌데 뭐. 쓸데없는 것 자궁 좀 떼었다고 뭐 어떻게 되나”는 막말로 화룡정점을 찍었다.

며느리의 심정까지 이해하던 어른이 어느 순간 여성의 상실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꽉 막힌 남성으로 돌변했다. 물론 그간 송옥숙의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성으로서 느끼는 상실감을 전혀 이해도, 존중도 하지 못하는 태도는 여태껏 쌓아온 캐릭터를 한순간에 뒤집는 꼴이었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주말극 치고 막장 요소가 많지 않아서 젊은 시청자 층에게도 환영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막장이었던 인물이 오복녀였는데, 이제부터는 오복녀-차규택 부부가 막장 왕좌에 앉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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