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쩌면 현실감각을 놓아버렸던 것 같다. 국민의당이 존폐위기에 선 상황에서도 소위 정치력이란 것이 통할 것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지원 전 대표의 너무도 식상한 물타기에 시민들은 화를 낼 의욕조차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심지어 안철수 전 후보는 몰랐을 것이라고 남 걱정까지 해주는 모습은 한가해도 너무 한가한 태도로 뭇매를 자초한 것이다. 이런 느슨하고 나태한 인식이 선거공작을 비롯한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런 비정상의 생각과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비단 박지원 전 대표 혼자인 것도 아닌 것이 현재 국민의당 상황이다. 유체이탈화법으로 자기 당원을 대상화시키고 있으며, 책임을 묻는 기자에게 “누가요?”하고 되묻는 김동철 원내대표의 해맑은 모습에 국민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갈 뿐이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대선 때 제기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의 고용정보원 입사 의혹과 관련, "제보된 카카오톡 화면 및 녹음 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힌 뒤 이용주. 김유정 의원과 함께 질문 받고 있다. Ⓒ연합뉴

허위사실을 조작한 것은 물론 빼도 박도 못할 범죄행위지만 그 조작된 허위사실로 상대 후보를 음해하려고 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유미 씨 혼자서 모두 벌인 단독범행이라고 하더라도 그 허술한 조작에 놀아난 국민의당 지도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고 할 것이다.

음성변조 없이 공개된 문제의 조작 녹취 전문은 차마 속으려고 해도 속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국민의당을 속인 것은 이유미가 아니라 국민의당 그 자체였다. 문준용 의혹이면 이길 수 있다는 비뚤어진 욕망이 대단히 기본적인 판단과 검증의 절차조차 무디게 만든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수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이용주 의원의 말은 참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개 당원인 이유미 씨가 혼자서 이 엄청난 범죄를 구상하고 실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일련의 정황들을 미루어볼 때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판단이 더 합리적이다. 특검 운운이나 유체이탈화법 등 국민의당 인사들이 본질에 물타기를 시도할수록 그런 의심은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군가는 그런다. 안철수 후보와 만난 지하철청년 설정 논란, 박지원 대표 여론조사 발표 논란, 재외국민투표결과 허위발표 논란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국민의당의 문제가 집약된 것이 바로 이유미 조작사건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문준용 의혹 말고는 다른 준비 없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고 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 대통령제를 권력구조로 택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대통령 선거는 다른 경우보다 훨씬 중요하다. 더군다나 탄핵으로 인한 보궐선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그 결과를 뒤집으려는 선거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은 조직적이냐 덜 조직적이냐는 중요치 않다.

이는 촛불에 대한 반역이며, 민주주의 하자고 한겨울을 광장에서 떨며 보낸 1700만 민의에 대한 거역이다. 민주주의는 종교가 아니고 따라서 용서가 아니다. 잘못한 것에는 그만한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헌법을 어겨 탄핵됐다. 정당도,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 처절하고 간절했던 국민의 갈망인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국민의당에게 미래는 그래서 없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은 2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주최로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 2.25 전국집중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통령선거를 왜, 어떻게 하게 됐는지는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아무리 정당이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선거는 그런 본질 위의 존엄한 의미를 향한 좀 더 숭고한 경쟁이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언론들이다. 국민의당의 엉성한 조작에 장단을 맞췄던 언론들이 이제 와서 갑자기 정의로운 표정을 지으며 또 하나의 유체이탈화법을 보이고 있다. 양심이 없기로는 국민의당이나 언론이나 다르지 않다. 그 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다 파고들어도 결국엔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한 의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불과 나흘 남긴 상황에서 근거가 약한 국민의당의 억지스러운 폭로에 확성기를 제공한 것이 공범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점점 언론개혁의 당위만 커질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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