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압도적인 두 남자 <피고인> (1월 23일 방송)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

한 마디로 강렬한 첫 회였다. 지성은 1시간 동안 남 부러울 것 없는 유쾌한 검사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날카로운 사형수로 변신했다. 그 사이, 엄기준은 극과 극을 오가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만약 지성과 엄기준이 시소의 양 쪽 끝에 탔다면,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그것이 SBS <피고인>의 거대한 서막을 완성했다.

이미 KBS <킬미, 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해서일까. 극적인 캐릭터 변신도 지성에겐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출발은 능글맞은 강력부 검사 박정우였다. 피의자에게 냉정하게 증거를 제시하고 수사관들을 대동해 일사분란하게 체포하는 검사가 아니었다. 조폭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 수십 명의 조폭 앞에서 육개장 한 그릇을 원샷하는 여유로움, 조폭들에게 끌려 나가며 항복하는 척 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증거를 제시하는 치밀함, 피의자가 도망가기는커녕 검사 옆에 딱 붙어서 쫓아오게 만드는 능구렁이 면모. “검사 연봉을 월급으로 주는” 로펌 스카웃도 굉장히 유쾌한 방식으로 거절했다.

방송 시작 20분 뒤, 박정우 검사는 딸과 아내를 죽인 사형수가 되었다. 얼굴엔 핏기 하나 없고, 가족과 기억 모두를 잃었기에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임에도 지성은 전혀 이물감 없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

여기에 악마 차민호까지 가세하면서 <피고인>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정점을 찍었다. 자신이 형 차선호가 아니라 실망했다는 여자에게 분노한 나머지 무참히 폭행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자백을 제안하는 형까지 살해했다. 목숨이 붙어있는 형을 살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닮은꼴 외모를 이용해 형 행세를 하겠다는 결심만 섰을 뿐이었다. 형의 손목에서 시계를 풀고 손가락에서 반지를 뺐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형을 밖으로 던지고 유서까지 써놓았다. 그리고는 선호의 아내를 찾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민호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악의 끝이었다.

지성과 엄기준. 진실을 밝히려는 박정우와 진실을 덮으려는 차민호, 두 남자의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앞으로의 <피고인>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과연 최후의 피고인은 박정우일까, 차민호일까.

이 주의 Worst: PPL보다 더 심각한 이영애의 연기 <사임당 빛의 일기> (1월 26일 방송)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

사극 <대장금>의 여파일까.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12년이라는 긴 공백기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연기를 뛰어넘는 미모 때문일까. 지난 26일 첫 방송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에서 이영애의 연기에 전혀 몰입할 수 없는 이유를, 드라마 보는 내내 찾았다.

우리가 이영애의 사극 연기에 적응이 돼서 현대극 생활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제아무리 대배우라도 10년 넘은 공백기를 극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것도 아니면 외모가 너무 뛰어나서 연기가 묻히는 거겠지. 온갖 합리화 구실을 찾다 보니, 드라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사임당>이 방송되기 한참 전부터 홍보 공식은 ‘사임당=이영애’였고, 10년 넘게 공백을 가진 이영애가 고르고 고른 작품이 <사임당>이었다. 즉, <사임당>은 이영애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거 마치 뭐랄까. 조금 과장을 보태면, 가수 출신 연기자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다. 넘치는 의욕을 조절하지 못한 과잉 감정 연기 말이다.

이영애가 맡은 서지윤은 교수 임용을 앞둔 시간 강사다. 미술사 학계의 실세인 민정학(최종학) 교수의 학회만 잘 끝내면 교수 임용은 따 놓은 당상이다. 게다가 학회 직전 남편 정민석(이해영)이 사채 빚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윤은 더더욱 교수 임용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닥쳤다. 그러나 지윤은 민정학 교수가 발표한 금강산도의 진품 여부를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면서, 민정학 교수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탈리아 학회 도중 쫓겨났고, 낯선 타지에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교수가 되어야만 한다는 절박감, 교수 임용이 불투명해진 분노. 지윤의 감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두 감정 모두 격한 감정이긴 했지만, 무조건 소리 지른다고 표현되는 감정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영애는 너무나 1차원적인 분노 연기를 보여줬다. 이탈리아 길거리를 헤매던 중 지윤의 캐리어가 열렸고, 그 안에서 민정학 교수의 저서가 몇 권 쏟아져 나왔다.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

혼잣말로 민정학 교수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팩소주를 마시는, 그간 쌓여 온 시간 강사의 서러움이 모두 폭발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 그러나 이영애는 어색한 욕설 대사처리 능력과 마치 꾀꼬리 같은 높은 톤으로 일관했다. 드라마에 몰입이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윤은 교수 임용은커녕 강사직 박탈에 징계까지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의 비망록을 토대로 민정학 교수에 대한 복수전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그러나 지윤의 복수전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두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이영애가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방송 초반부터 주스와 휴롬, 자연별곡까지 PPL이 넘쳐났다. 그러나 PPL보다 더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 게 이영애의 연기라면, 너무 과한 혹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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