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의 주요 성과로 소개된 보건·의료 분야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실적은 구체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박 대통령 중동 방문에 맞춰 국내 제약사가 사우디 쪽과 500억 원 규모의 의약품 수출 계약 및 1500억 원 규모의 제약공장 진출 양해각서(MOU) 체결 등 모두 2000억 원 규모의 성과를 올렸다고 발표했으나, 의약품 수출 예상액 500억 원은 정부가 구체적 근거도 없이 막연히 꾸며낸 수치로 드러났다.…(중략)…정부 발표가 ‘뻥튀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_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언론매체들은 순방 성과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보도를 하곤 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순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중동 해외취업 추진’, ‘중남미 원격의료시장 진출’ 등을 성과로 주요하게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는 중동순방에 대한 정부 발표의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했다. 보건복지부는 한겨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정정보도는 물론 반론보도 대상도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 보건복지부가 한겨레 상대로 제기한 소송 ‘기각’

서울서부지방법원(판사 이우철)은 11일 보건복지부가 한겨레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 청구 사건에 대해 ‘기각’을 결정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3월 4일 <한국 보건의료, 제약 및 의료기관 사우디 진출 합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 중동순방 계기로 사우디를 방문 중인 한국의 민·관 합동 대표단(보건복지부, 의료기관 및 제약기업 등)은 사우디 보건부, 민간 기업 등과 잇따른 정부 간(G2G) 및 민간 간(B2B) 회담을 통해, 보건의료·제약 플랜트·의료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우디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하는 성과를 올렸다”, “70년대 중동 붐에 이어, 21세기에는 한국 보건의료가 제2의 중동 붐을 견인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겨레는 이를 토대로 추가 취재해 9일 <‘500억 수출 성과’ 구체적 근거 없어>(▷링크) 등의 기사를 작성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가 부풀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이끌어 낸 셈이다.

▲ 2015년 3월 9일자 한겨레 기사
보건복지부는 한겨레 기사 중 △“사우디 쪽과의 의약품 수출 예상액 500억 원은 정부가 구체적 근거도 없이 막연히 꾸며낸 수치로 드러났다”, △“정부가 국내 제약업체한테 소개한 사우디 제약사인 SPC사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내용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또한 △“정부가 제약 분야의 사우디 진출 소식을 대통령 순방 일정에 끼워 맞추기 위해 현지 업체에 대한 기초적인 검증도 하지 않고 국내 제약업체의 의약품 수출계약 상대로 주선했다”는 부분 등에 대해 반론보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보건복지부의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보건복지부의 정정보도 청구 부분에 대해 “한겨레 기사는 (보건복지부가)500억 원이라는 큰 규모의 수치를 계약서와 같은 서면에 의한 근거 없이 BC월드제약 관계자의 말만 듣고 섣불리 보도자료에 반영해 홍보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한 취지”라며 “이는 ‘의견표명’에 해당돼 정정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적 주장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에 기재한 순방성과 2000억 원 수치와 관련해 “(정부는)BC월드제약의 관계자로부터 의약품 수출 규모가 500억 원 정도가 될 것이라는 내용을 구두로만 전달받아 보도자료에 반영하였을 뿐 구체적인 근거 서류를 제시받지는 아니했다”며 “한겨레는 취재 과정에서 위와 같은 경위(구체적 근거 없이 구두로만 전달받아)로 보도자료가 작성되었음을 충분히 확인해 보도했다”고 밝혔다.

‘SPC사의 실체’에 대해서도 법원은 “한겨레는 취재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소속 관계자들은 물론 제약회사 관계자들로부터도 각기 다른 내용의 설명을 들었다”며 “SPC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해외 고객사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 기업정보망인 콤파스나 후버스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회사인 점 등을 비춰보면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물론 제약회사 관계자들도 (SPC사의)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영업 규모, 자본금 등 계약 이행의 신뢰성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도 부족함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되자 이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는 등의 사실을 인정했다.

법원, 반론보도도 인정하지 않아…최성진 기자, “언론의 검증 책무 인정해준 판결”

법원은 보건복지부의 반론보도 요청 건에 대해서도 “한겨레 기사는 1500억 원이라는 큰 규모의 MOU 체결 상대방인 회사에 관해 정부 부처 관계자 등이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계약 이행의 신뢰성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마저 부족함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되자 의혹(대통령 중동 순방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기초조사를 소홀히 한 것)을 제기한 것”이라며 “이 부분 표현도 반론보도의 대상이 되는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했다가 소송에 휘말린 당사자인 한겨레 최성진 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언론의 검증 책무를 인정해준 것으로 다행히 ‘기각’ 결정을 해줬다”고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최성진 기자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수출에 대해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다”라며 “정부에서 성과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면밀히 검증해야하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당연한 검증보도를 했을 뿐인데, 말도 안 되는 취재방해도 모자라 소송까지 당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복지부 소송은 전형적인 ‘괴롭히기’ 목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보건복지부의 행태(소송)가 얼마나 말이 안 되고 근거가 없기에 법원이 반론보도조차도 받아주지 않았겠나”라고 설명했다.

최성진 기자는 또한 “법원은 한겨레 보도는 ‘의견표명’이니 정정·반론보도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했다”며 “하지만 구체적인 근거와 다양한 취재를 근거로 작성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것으로 한 발 더 나아가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타파 또한 지난 5월 “청와대와 정부는 중남미 원격의료시장 진출 등을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다”며 “그런데 정부의 보도자료를 검토한 결과,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사업을 성과라고 포장하거나 부풀려 홍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링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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