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계와 보수언론의 ‘사이비언론’ 척결 요구에 총대를 멨다. 정부가 내놓은 복안은 ‘인터넷언론 등록조건 강화’다. ‘사이비언론이 언론 생태계를 망친다’는 프레임이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직접 나서 수천개의 언론사를 정리하려는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지난 21일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2조에 있는 인터넷신문 등록요건을 현행 ‘취재 인력 2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에서 ‘취재 인력 3명 이상을 포함한 취재 및 편집 인력 5명 이상’으로 바꾸고, 인터넷신문 사업자에게 취재 및 편집 담당자의 상시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중 한 가지 이상의 가입내역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바로가기: 문체부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문체부는 “콘텐츠 확산력이 큰 인터넷신문의 특성상 사실확인 기능 및 저널리즘 품질 제고를 위한 제작여건(취재, 편집 등)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고 시행령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를 밝혔다. 시행령은 의견 청취를 거친 뒤 시행된다. 다만 문체부는 1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보수언론은 시행령을 반긴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인터넷 신문들이 선정적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쏟아내 언론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며 “왜곡·과장 보도는 물론 광고와 협찬비 명목으로 기업을 갈취하고, 청소년에게 해를 끼치는 선정적 광고를 버젓이 싣는 곳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보수, 주류언론의 닷컴이 어뷰징을 선도(?)하고 있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점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다.
조선일보는 등록요건 강화를 환영하며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국이 인터넷신문·방송의 운영 실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법규 위반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등록을 취소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떠 기업을 협박하는 언론은 즉각 등록을 취소해야 하고, 한 번 등록 취소된 사업자가 일정 기간 다시 인터넷언론에 종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1인미디어 등 소수로 움직이는 대안언론은 졸지에 등록이 취소될 처지가 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인터넷신문 1776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1~4인을 고용한 인터넷신문사는 687개사로 38.68%에 이른다. 문체부에 등록된 인터넷신문사(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 200여개 포함)가 2014년 기준 5950개인데,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언론사 간판을 내려야 하거나 유예기간 1년 안에 인력을 충원해야 할 언론사는 2300여개로 추정할 수 있다.
언론의 수는 저널리즘의 질과는 관련이 없다. 언론의 난립, 특히 유령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은 인터넷 공간의 특성 상 당연한 결과다. 문체부의 등록요건 강화 추진은 인터넷의 특성을 무시하고, 주류언론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통제 전략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체부는 올해 들어 주요언론사의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을 직접 만나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구시대적 제도를 부활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조치가 포털사이트의 뉴스서비스 정책 변화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혐의는 짙어진다. 앞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포털 제휴 언론을 평가하는 데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고, 다음카카오는 포털뉴스 최상위 댓글을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광고주와 정부에 내주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포털을 평정한 뒤, 정부가 후속조치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규제 강화 정책은 기성언론의 기득권 강화로 이어진다. 사이비언론 문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 광고주가 기성언론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사이비언론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등 광고주는 광고와 기사를 바꾸고 음성적으로 광고와 협찬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공생해왔다. 일례로 미디어스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이 특정언론, 그것도 주류언론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바로가기: 미디어스 <지자체와 언론, ‘음지’의 거래> 시리즈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재계가 공동기획한 사이비언론 척결 작전은 사전에 포섭한 일부 인터넷신문의 동의를 얻어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포털의 진입장벽을 지금보다 높이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이 지역의 중소언론, 그리고 대안언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드는 반면 정부-언론-광고주의 여론지배력은 확대되고 유착관계를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유행한 구시대적 언론통제, 여론조작 전략이 21세기에 반복되고 있다.
관련기사
- 무너진 밑단, 정론지인 척 하는 언론이 진짜 ‘사이비’
- 조중동매·종편은 물론 메이저 신문·방송도 다 사이비언론?
-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로 어뷰징 기사 사라질까?
- 대신 두들겨맞는 포털, 언제까지 ‘평정’ 당할건가
- 이제부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포털에 댓글을 쓰시라
- 언론의 ‘가장 만만한 물주’된 지자체, 영업 사원 된 기자들
- 모로 가도 올림픽이면 OK? 강원도는 지금 '협찬' 전쟁 중
- 언론이 관광 가이드 자처하며 경상북도를 달리는 이유
- 언론이 대구시 후원금 받고싶을 때 외치는 주문 ‘창조경제’
- 웰빙, 효도, 한일교류, 비치발리볼까지 ‘울산은 MBC 땅’
- 서울보다 손 더 큰 경남, 언론사 뮤지컬에 ‘억대 후원’
- 지역 방송사에는 지자체 협찬을 따내는 팀이 별도로 있다
- 여수 밤바다에 ‘풍악’이 울리면 MBC가 웃는다
- ‘한국의 맛’ 보여주고 5억 ‘꿀꺽’한 MBC의 짭짤한 ‘협찬’ 장사
- 동아일보가 ‘공주’에서 달리고, MBC가 ‘고려인삼’ 권하는 까닭
- 전시회 투자 돈 안된다? ‘대전’서 견우직녀 만나면 MBC 웃는다
- 충청도 핫바지 아니에유, 서울보다 언론관리 더 해유
- 동아일보의 ‘특급’ 사랑? 동아가 ‘제주세계자연유산’ 알리는 이유
- 인천시의 꼼꼼한 언론사 챙기기, 12월31일만 기다리는 신문 있다
- 남경필의 경인일보, 5년 간 36억 ‘눈먼돈’ 쓸어담았다
- 서울시, 지난 4년간 중앙일보에 38억 5천250만원 몰아 줬다
-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다? 포털은 ‘뉴스’할 자격 없다
- 피키캐스트 문제, ‘착한 공룡 만들기’가 필요하다
- ‘대체’는 ‘대안’ 아닌데, 허핑턴포스트는 무엇을 넘어섰는가?
- “진짜 뉴스 원하면, 직접 차려라. 당신이 바로 뉴스의 영향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