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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만 말하는 언론, 김기종 말하지 않으려는 진보 세력

기사승인 2015.03.06  08: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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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인동 샤우팅]80년대 열혈 운동권은 왜 불행한 개인이 되었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피습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졌다. 보수주의자들과 기성 언론은 그가 얼마나 ‘종북세력’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인지 파헤치기에 여념이 없고, 동시에 그의 배후에는 북한이나 진보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다시 한 번 ‘종북몰이’ 폭풍을 몰아갈 기세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김기종 씨는 그저 미쳤을 뿐이다”, “공안탄압으로 몰고 가지 마라”고 대응하고 있다. 물론 그는 정신이상자일 수 있고, 동시에 극우세력이 공안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공산도 크다. 벌써부터 보수언론들은 ‘여의도에서 15년째 낮잠을 자던 테러방지법’을 소환해 조속히 입법할 것을 촉구하는가 하면, 가해자 김기종 씨와 진보진영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가 정신이상자인지 아닌지, 혹은 그가 어찌하여 진보진영과 무관한 사람인가에 대해 열렬히 피력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까? 피상적인 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그가 지난 10여 년간 진보적 사회운동 활동가들로부터 외면 받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정신이 이상해진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할지라도 김기종 씨가 80년대에 만개했던 너른 대중운동이 배태한 ‘한 사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얼룩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다분히 한국의 사회운동의 몰락과 침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멘붕에 빠지기보다 그 여러 갈래의 원인과 모순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침착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씨는 끝까지 "전쟁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몰락한 공동체, 무기력한 사회운동...고장난 나침반

오늘날과 같이 사회(혹은 공동체)가 몰락하고 사회운동이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다보면 억압받는 이들, 지식인들의 머릿속에서 이 어그러진 판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은 점점 망각되기 마련이다. 대중운동의 갈피를 잡고 방향을 선도하는 나침반이 상실되면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여기던 사람들은 점점 더 개별적인 대응 방식을 찾게 된다. 이를테면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반복적으로 유포한다던지, 개인으로서 한 개인에 대해 테러 행위를 한다던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만 들어가도 우리는 이런 음모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글들은 저 무수한 글들 사이에서 이목을 끌기 위해서인지 느낌표가 과도하게 많고, 속보 특종 충격 따위의 단어들을 밥 먹듯 집어넣는다. 그러나 보통은 별 근거 없는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자신이 느끼는 사회의 총체적 모순에 대해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무수한 속보들에 내성이 생긴 인터넷 대중들이 그런 행위로 흔들릴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따금 열리는 정부에 비판적인 대형 집회 현장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우발적이고 돌출적인 행동들은 점점 더 억지력을 잃고 튀어나오며, 제어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어디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운동의 구심과 헤게모니, 상식 따위가 상실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요컨대 우리는 경제위기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몰락해가는 사회, 동시에 침체되고 무기력해지고 있는 운동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토양 위에서 돌출적이고 개별적인 테러 행위는 점점 더 제어되기 어렵다.

테러는 지배세력의 억압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변화시켜나가는 사회운동에서 ‘테러’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테러는 국가권력과 자본의 억압을 강화할 뿐 약화시키지 않는다. 이따금 혼란에 빠져 착각하는 것과 달리 낮잠 자던 대중운동이 폭발하는 계기, 단초가 될 리도 만무하다. 더군다나 인터넷 매스미디어가 대중 이데올로기를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개별적인 정치 행위들로 ‘사회’에 흠집을 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기 마련이고, 사회를 나은 곳으로 만들기보다 그저 파괴시키고 도태시키는 것에 동참하게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런 개별 행위들은 마치 세상의 억압과 착취가 자신의 ‘용감한 행동’으로 바뀌리라 착각한 나머지 대중운동이 아닌 엘리트주의적인 의지주의에 경도되곤 한다. 우리가 아무리 김구가 훌륭한 의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고 기억한다한들, 일제시대 그가 지녔던 운동의 이념, 즉 개별적 테러들로 독립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신념은 결코 ‘대중운동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일련의 역사에서 우리가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은 몇몇 의사들의 의거보다는 3.1운동이나 원산총파업, 전평 총파업과 같은 대중적으로 촉발되었던 이름 없는 우리의 조상, 민초들의 대중적 투쟁이어야 한다.

80년대 열혈 운동권은 어쩌다 불행한 개인이 되었나

한 때 나는 ‘몰락하는 운동’이 사람을 어떻게 병약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잘 알았던 80년대 학번 A는 그 시절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열혈 운동권 청년이었고, 졸업하고 나서도 한 회사에 취직해 노동조합까지 만들었다. 노조 간부로까지 나서 활동했지만 그곳이 부도를 겪고 투쟁도 잘 되지 않자 그는 한 농촌 총각과 결혼했다. 그 총각 역시 농민운동이 촉발되던 시기의 열혈 청년이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파국을 겪었고, A가 꿈꾸고 실천했던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소비에트도 무너졌고, 김일성 김정일이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게 되던 즈음 A 역시 운동을 그만 두었다.

A는 뭐든 미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고, 사회변혁운동의 혁신과 새로운 대안이 아닌 종교화된 다단계 마케팅에 빠졌다. 그러나 이내 파산했고 재혼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상대가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영민하고 부지런했던 A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A처럼 시대의 무게와 삶 앞에 좌절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변절하거나 미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었던 그 시절 무수한 A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세대 이후의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A가 느꼈을 좌절을.

모르긴 몰라도 몇몇 보도들을 통해 들은 김기종 씨의 삶의 궤적을 보노라면 이런 파국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활동했던 단체 사무실이 4명의 괴한들에 의해 피격 당하고 느꼈을 정신적 공황, 운동의 몰락과 떠나가는 친구들, 민주주의의 후퇴와 극심해지는 피해감.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기에 누구든 좌절을 겪을 수 있고 미칠 수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가 미치지 않고 다시 정신 차리고 용기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친목모임이든 동아리든, 동호회나 정당, 단체, 노동조합이든 ‘조직’, 곁에서 나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동료, 조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지키려면 더 조직적으로 모이고, 주위의 사람들을 챙겨주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넘어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운동의 구심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진보정당운동의 붕괴와 지리멸렬함 속에서 사람들을 묶어내고 헤게모니가 되는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다. 무언가 무너지면 다른 무언가가 대체해야 하지만 그런 대체물이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시급하게 ‘구심’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모이는 것이 마냥 능사는 아닐 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온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세계화할 수 있는 이념을 복원해야 한다. 오늘날 진보, 좌파는 도덕주의 강박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박근혜 정권 비판의 논리에 음모론이, 진보의 방향타에 얄팍한 정책들이 채워지는 것은 그 자체로 좌파가 얼마나 빈 깡통에 지나지 않는지 스스로 고백할 따름이다. 이런 진보가 세계의 모순을 제대로 분석하거나 대안을 설계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 전략

테러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키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군사연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정부는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와 양국의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징후를 포착해 선제 타격하기 위한 공격형 방위시스템 킬 체인(Kill-Chain)과 고도 20Km 이하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아체계(KAMD) 구축할 것을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는 곧바로 1조5천억 원을 들여 신형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포함한 PAC-3 구입절차에 들어갔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이나 해외 파병 등에 동참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이는 북핵 위협에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선 MD체계에 편입과 THAAD 미사일 배치를 꾀하고 있고, 일본에 대해선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서 중국에 대한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키리졸브 독수리 연습이 진행된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의 동태에 큰 관심이 없고, 중동 전략 역시 궁지에 빠진지 오래다. (실은 남겨먹을게 없다는 사실 역시 확인된 바 있다) 결국 세계의 경찰국가인 미국의 최고 관심사는 동북아시아 뿐이다. 지속적으로 위안화 절상 압박을 가해 자신이 겪고 있는 극심한 재정 적자나 경제적 위기를 돌파해야 하고, 군사적 압박을 통해 헤게모니 역시 유지해야 한다. 더이상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중, 미-북 간의 중단 없는 치킨게임으로 인해 전쟁 위협 자체가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기 이전에도 우리의 삶의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는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헌데 이런 전반적 상황, 급변하는 군사 정세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고 보도하는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에 대한 설명 역시 지극히 피상적이고, 그저 북핵 얘기만 늘어놓을 뿐 이 위험한 치킨게임이 결국 어떤 상황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기종 씨의 피습 사건 이후 테러방지법 입법 등 경찰국가로의 길을 주창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핵보유 전략이 매우 위험천만하고 반평화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 전략, 신자유주의 군사세계화 역시 우리의 평화를 위협한다. 실은 보다 구조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 2000년대 초중반, 이라크 파병 반대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로 정점을 이뤘던 '반전 평화 운동'은 이후 대중적 흐름을 만들지 못해왔다. 여전한 분단의 현실과 강화되는 공안 논리 속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진=참세상)

반전평화운동의 대중적인 복원만이 ‘대안’

만약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 때와 같이 활발하고 광범위한 반전평화운동이 존재했었다면 김기종 씨의 피습과 같은 개별적이고 부적절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대중운동의 우위가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해온 개인들을 제어하고 정정하게끔 이끌어왔었기 때문이다. 하기에 반전평화운동이란 것이 명멸하다시피 한 한국사회에서 김기종 씨의 피습 사건과 같은 일은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대해 따져보아도 마찬가지 문제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 전략과 북한의 핵, 중국의 핵실험 등 우리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 맞선 사회운동과 저항을 확장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지 가능한 이 끔찍한 치킨게임을 멈추고 서로 충돌하기 전 브레이크를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말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면, 김기종 씨가 얼마나 미친 사람인지, 혹은 그가 얼마나 진보진영과 무관한 사람인지에 대해 증명하는 것에 매몰될 게 아니라, 반전평화운동의 절박함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고 복원해나가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괴물에 맞서다 괴물이 되지 말자는 흔한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식상하니 접어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 아니겠는가. 상황을 있는 제대로 인식하고 정세를 분석하며, 우리 자신과 주위의 흩어진 사람들의 좌절과 고독을 돌아보며 어느 때보다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인 태도로 대중 이데올로기가 망각하고 있는 보편적인 꿈, 평화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모아나가는 것이 그 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시기, 냉정하게 자신과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이들만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정글을 헤쳐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명교 /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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