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툴수록 손해 보는 게임. 지난 7일(토) 방영된 <무한도전> ‘끝까지간다’ 편은 꽤나 흥미로운 우화였다. 다섯 멤버들이 몇 겹의 상자를 열어가며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추격전인데 그 이익의 근원은 멤버들의 출연료 통장, 자신들의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에 있다. 문제는 단계를 거듭할 수록 열매를 (일시적으로) 거머쥐는 멤버들 각각의 기대수익은 줄어들지만 거래의 중개인(김태호 PD)은 가만히 앉아서도 곱절의 이득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언뜻 보기엔 제로섬게임 같지만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탈을 피할 수 없다. 게임이 길어질수록 늪은 깊어진다.

그러나 이런 것이 쉽게 인지되지는 않는다. 이미 추격전에 가담한 멤버 각자에겐 오직 상자를 독차지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 뿐이다. 다음주 이 박진감 넘치는 에피소드가 어떻게 마무리 될 지 알 수 없지만 멤버들 스스로 공통의 합의 속에 게임을 중단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코미디의 공식에도 어긋난다. (어느 시점에 모두가 동의하면 이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규칙 중 하나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벌이고 있는 먹고 먹히는 싸움과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는 집을 살 때 내가 거주할 삶의 공간, 주거에 대한 권리가 주어져야할 공간으로 여기기보다 빚을 내서 ‘투자’한 것에 대한 미래의 기대수익을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사서 소수는 투자에 대한 성과를 이루지만 대부분은 잃는 것이 더 크다. 그리고 종국에는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모두가 손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공동의 파국을 조장하는 무수히 많은 사건, 을과 을의 전선이 널려 있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든 싸우게 내버려둠으로써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관리하고 그 사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모든걸 가져가는 것이다.

영세자영업자 뿔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걸스데이 혜리가 등장하는 알바몬 최저임금 CF 논란이 그 중 하나다. PC방 업주 권익단체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이 광고가 실제 자영업자들이 최저시급이나 야간근로수당을 지키지 위반하는 것처럼 묘사한다며 광고를 중단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모든 소상공인들을 악덕 고용주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고, 야근수당 편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야간근로수당(기본시급의 1.5배)가 적용되지 않는데 알바몬이 이 점을 누락했다는 것이다.

▲ 알바몬 광고 갈무리

알바몬 측은 이 광고가 업주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최저임금법을 지키자는 수준의 캠페인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자영업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실제 일부 PC방 업주들은 알바몬에서 탈퇴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업주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일단은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알바몬을 운영하는 잡코리아 측이 야간수당편 광고를 중단하는 것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리된다면 알바몬으로서는 논란의 당사자이긴 했지만 수혜자임이 분명해보인다. 광고가 논란이 되면서 시장에서의 우위를 다시 한번 인증했고, 잠시간 알바 노동자 노동권의 옹호자인 것처럼 이미지를 메이킹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노동권의 옹호자가 될 순 없을 것이다. 유연화된 노동시장은 알바몬과 같은 아르바이트 중개 사이트 성장의 토대이지 않은가.

아르바이트 노동력 거래를 중개하는 알바몬으로서는 갑과 을 고객 모두를 잃지 않아야 업계 1위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플랫폼을 지킬 수 있는데 인터넷 상에서 첨예하게 갈등 양상이 드러나는 양자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이따금 알바몬과 같은 단기 근로 중개 인터넷 사이트에서 최저시급 인상이나 근로기준법에 대한 해설을 유포하면 일부 자영업자들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기도 한다니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일시적인 해프닝인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을과 을의 싸움

한국의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업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우리 사회의 참혹한 노동권, 실업률과도 맞닿아 있다. 그 때문에 당장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보기에 알바생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길게 보면 ‘을과 을의 싸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윤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이런 잘못된 전선에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대기업 자본 주도의 왜곡된 시장구조에서 이루어지는 갖은 횡포와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툭하면 상가를 부수고 거리로 내쫓아버리는 건물주와 건설자본의 세입자에 대한 끔찍한 탄압도 이에 한 몫 한다. 이래저래 불안정한 조건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개인사업자의 절반 이상이 월 수익 100만 원도 얻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알바 노동자들에 비해 겨우 조금 나은 처지에 불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수십 년 뼈가 빠지게 일하다 해고되거나 일을 그만둬야 했던 해고 노동자,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해 자영업자의 길에 나선 극심한 일자리난을 떠올리더라도 그저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던 죄 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영세 자영업자들의 처지는 오늘날 알바 노동자들이 처한 폐기처분된 노동권과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재벌 자본이 지금처럼 제멋대로 이윤을 독식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에 서지 않았다면, 해고와 비정규직화가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는 노동권의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면 이토록 영세 자영업자들이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또 승자독식의 원하청 구조를 탈피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면 시장에서 항상 이렇게 간, 쓸개까지 내어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알바노조는 지난 7일(토)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예고한대로 맥도날드 신촌직영점에 대한 규탄 투쟁에 나섰다. 맥도날드 원청 등 대형 패스트푸드 업계가 이른바 ‘꺾기’와 ‘30분 배달제’를 관행처럼 자행하고 부당해고 등 알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맥도날드 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고 있지만 우리 주위 알바생들의 널리고 널린 증언들 중 일부만 듣더라도 얼마나 궁색한 변명인지 알 수 있다. 알바노조는 특히나 이 싸움의 전선을 ‘원청’으로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 알바노조의 신촌 맥도날드 점거 소식을 다룬 MBC 뉴스 갈무리.

더 현명하게 싸우려면

영세 자영업자들 역시 자신보다 더 약자인 알바 노동자들과 전선을 긋기보단 진정한 슈퍼갑에 맞선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어떤 사회적 지지도 얻기 어려운 늪에 빠지기보다 알바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편이 훨씬 낫다. 잘못된 시스템을 고착시키고 있는 대기업 자본과 법제도에 맞서 싸우면서도 공동의 행동을 도모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등 프랜차이즈 영세 자영업자들과 알바 노동자들의 전국적 연대를 통해 부당한 로열티나 불공정 거래에 대해 항의하고 교정하는 시도들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법에 따라 최저임금도 지키고 나아가 생활임금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업주나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세 자영업자들 자신을 일터에서 거리로 내몰게 했던 추락한 노동권을 되살리는 길이고,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원하청 구조 꼭대기의 거대 자본들이 실제로는 누구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독식할 수 있는 지금의 구조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알바몬 광고 갈무리

누구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스물다섯 때 도미노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 있다. 당시 최저임금이었던 3480원보다 100원 높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사실은 시간당 2건을 처리하지 못하면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괴이한 불법 고용이었다. 싫으면 일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이보다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도 이에 개인이 항의하고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알바 개개인들이 더 많이 모이고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이고 스스로를 조직한다면 지역별, 상권별 모임과 행동도 가능할 것이다. 바로 그렇게 실천할 때 우리의 ‘노동’은 존중받고 변화한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법제도나 국회의원보다 그게 훨씬 빠르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리라 기대하기보다 알바 노동자 자신의 단결을 통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또한 우리가 몰랐던 권리에 대해 알기 위해 조금만 더 부지런해질 필요도 있다. 모르면 당할 뿐이다.

노동운동은 어디에 있나

알바몬의 공익적인 노동권 CF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3자가 있다. 바로 노동운동이다. 이 뼈아픈 사실은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드러낸다. 내셔널센터로서 전국 규모의 선전선동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할 일을 알바몬이 대신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을 알바 중개사이트 알바몬이 대신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노동자들이 2015년도 법정최저임금이나 야근은 1.5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고 이를 폭로하고 싸울 창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운동 책임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선전선동하고,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그 자체로 실패임을 반영한다. 흩어진 분노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선전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주 최소한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조직된 노동운동의 역할은 급진적이고 거대한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생활의 언어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알바몬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알바 노동자 위한 목소리도 내고 알바 노동자들의 단결 호소했어야 했다. 물론 레토릭, 형식에 대한 디테일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혜리 같은 아이돌을 섭외하긴 어려울지라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걸 맞는 선전물들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조직되어있지 않은 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불만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더 디테일하게 간파해야 한다. 수년간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중심으로 각고의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은 일천한 상황이고, 이마저도 지속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진짜 총파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젊은 세대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의 목소리를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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