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4년이었다. 한국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량>이 한국 영화 최다 관객을 갱신하고, 독립영화 중에서는 연초에 개봉한 <한공주>와 연말에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많은 관객들의 호응과 흥행을 이뤄냈지만 그 흥행의 전말에 대한 논란이 가득했다. 앞서 언급한 세 개의 영화는 모두 CJ 계열에서 배급하는 영화였고, 그 흥행들은 CJ CGV를 비롯한 한국 멀티플렉스의 문제를 확인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좋은 의미에서 주목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상업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좀 더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들을 자주 확인할 수 있는 해도 2014년이었기 때문이다. 스릴러로 홍보했지만 정작 개봉을 하고 보니 블랙 코미디와 컬트가 잔뜩 섞여 매니아들의 관심을 모았던 <몬스터>, 포스터에서 풍기는 아우라와 달리 잘 뽑아낸 장르 영화였던 <끝까지 간다>, 오랜만에 상업영화에서 노동의 문제를 주목했던 <카트> 등의 영화가 2014년에 개봉하였다. 단, 평단과 관객의 호응이 흥행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끝까지 간다> 정도만 거의 유일하게 독특한 상업영화로써 많은 관객을 모았을 따름이다.

작년 12월 31일에 개봉한 김성호 감독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제작 삼거리픽쳐스, 배급 리틀빅픽쳐스 · 대명문화공장) 역시 이러한 경향에 속하는 작품이다.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아동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원작의 줄거리를 제법 충실하게 따르는 영화이다. 그리하여 표면적으로는 제목 그대로 소녀들이 제법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웃집의 개를 '완벽하게' 훔치고 돈을 받아내려는 여정에 대한 작품을 표방하고 있고, 홍보 또한 그러하였다. 하지만 마치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나 앞 문단에서 언급한 <끝까지 간다> 등이 작품의 품질을 받쳐주지 못하는 홍보로 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비슷하다. 영화는 단순한 아동-가족 대상의 활극을 넘어 아동-가족 영화의 시선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세계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원작에서도 조금씩 드러났던 것이지만 영화는 이러한 지점을 더욱 확장시키고, 동시에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성에 맞게 잘 변용시켰다.

원작과 영화에서 소녀들이 개를 훔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주인공의 가정 환경과 연관이 있다.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결국 가족 모두가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나 차 안에서 사는 생활을 전전해야만 한다.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당차게 살려고 노력한 동시에 친구들에게는 이러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하지만, 결국 초등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명이 주인공의 뒤를 몰래 쫓아가 주인공의 처지를 알게 되고 친구는 주인공을 돕기 위해 주인공이 우연히 생각하게 된 '부잣집의 개를 훔쳐 그 보상금으로 집을 산다'는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시행착오와 어린 아이들이 무서워 했던 부랑자와의 만남과 유대, 그리고 깨달음이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틀로써 기능한다. 원작과 영화는 이러한 틀을 공유하고 있다. 원작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녀는 원래 미국에서 계속 만연하고 있는 홈리스의 문제를 아동의 시선으로 짚었으나 그 문제가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원작과 비슷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불어 넣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가장 눈에 보이는 부분은 주인공 지소(이레)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상징되는 교육의 문제이다. 사업 실패로 남편이 도망가고 집에서 쫓겨나 봉고차를 전전하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온갖 고된 알바에 시달리는 어머니(강혜정)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지소에게만은 한 눈에 보아도 비싸 보이는 사립 초등학교에 계속 보내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한국의 지난 시절에 존재했던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일종의 전설과도 비슷해보이지만 실상은 같지 않다. 더 싼 초등학교로 옮기자는 지소의 제안에 어머니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남들처럼' 내 자식들도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지만 겨우 비슷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어머니가 다소 철이 없어 보이는 탓에 딸의 제안을 거부하는 장면도 캐릭터의 특성과 비슷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원작과 판이하게 다른 이 장면은 영화가 원작과 달리 한국이라는 공간을 살리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집안이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했어도 어떻게든 교육만은 고급으로 시키겠다는 정서는 한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보편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머니가 모든 돈을 아껴 가면서 사립 초등학교에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 절대 밝은 미래는 물론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조차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소의 친구 채랑(이지원)은 지소와 달리 나름대로 번듯한 고층 아파트의 1층에 살고 있고 초등학교가 끝난 뒤에 각종 학원에 다니고 있다. 분명히 지소의 집안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작중에서는 그러한 채랑의 가정마저도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지점을 계속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채랑의 부모 역시 채랑을 나중에 커서 남들에게 치이지 않을 정도로 살기 위하여 각종 교육을 아끼지 않지만, 지소의 집안처럼 많은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이 조금씩 버거워지고 그로 인해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만다. 튼튼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경제적 환경은 튼튼하지 않다. 조금만 발을 삐끗하는 순간 채랑도 지소와 같은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소와 채량이 다니는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가정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 주인공 지소(이레)의 어머니(강혜정)은 집안이 나락에 빠진 상황에서 계속 자식을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고, ‘홈 스위트 홈’을 꿈꾼다. 하지만 문제는 그 꿈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쉽게 이룰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중 등장인물들의 희노애락을 상징하는 것 또한 결국 '집'이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벌써부터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집'에 대해서 자랑을 한다. 으리으리한 아파트에 사느냐, 아니면 번듯한 2층 짜리 단독주택에 사느냐. 마치 모 대기업 계열의 아파트 광고에서나 나올 것 같았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극중 아이들의 대화로 편입된다. 그리고 그 모습이 결코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예전부터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서로를 비교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습득해도 아직 모두 아는 것은 아니기에 그러한 지점을 활용해 소소한 웃음과 씁쓸함을 낳기도 한다. 지소는 어떻게든 빨리 가족이 살 집을 구하고 싶어하지만 지소를 비롯해 친구들 모두 한국의 가공할 만한 집값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무작정 부동산에 붙은 각종 매매 알림을 보지만 아직 어린 지소에게 '평당'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낯선 말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본 '평당 500만원'이라는 매매 광고는 그녀로 하여금 '500만원'만 있으면 '평당'에 있는 집에 살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하게 만들고 이는 곳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 개를 훔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지소나 채랑과 달리 돈을 제법 많이 벌고 가지고 있는 부잣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원작의 노부인이 부자처럼 보였던 이미지가 결국 후에 오해였던 것으로 밝혀지는 것과 달리 영화 속의 노부인(김혜자)은 분명 부자가 맞다. 고급 레스토랑과 그 부지를 소유하고 있고, 억대에 달하는 미술품도 선뜻 구입할 정도의 재력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에 대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은 노부인의 조카(이천희)는 친하게 지내는 개발업자에게 노부인이 소유한 레스토랑 부지가 재개발 구역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그는 레스토랑을 철거하고 남은 부지에 고층 건물을 세우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애초부터 노부인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조카는 노부인이 완강하게 소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게 된다.

작중의 대사를 볼 때 노부인이 소유한 레스토랑은 꽤 옛날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가게로 보인다. 조카가 오래된 가게가 지닌 역사 대신 어떻게든 고층 건물을 지어 돈을 왕창 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이기도 하다. 한국의 오래된 극장 중 하나였던 스카라극장은 근대건축물로 지정되자 마자 건축주가 건물을 철거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결국 막지 못했다.) 한국의 오래된 스포츠 경기장이었던 동대문운동장도 결국 일부 흔적만 남긴채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광주의 경우도 구 전남도청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문제로 계속 진통을 겪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강박적으로 과거의 것에서 탈출해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 건물을 짓고자 하는 이유는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간이 지니고 있던 역사성은 물론 사회성 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일을 초래한다는 공통점을 낳고 만다.

이렇게 주인공의 주변 인물, 그리고 노부인의 설정마저 한국적인 특성을 갖게 된 상황에서 원작에서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부랑자'도 달라지게 된다. 원작에서 그는 아이들이 개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스스로 알게 하는 역할이었지만, 영화의 부랑자(최민수)는 이러한 역할에서 조금 더 나아가 아이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상으로써 역할을 선보인다. 그는 딱히 특정한 직업도, 거처도 없어 보인다. 그저 되는 대로 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다. 작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들 역시 엉화가 끝날 때까지 그가 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집이 없지만 대신 온갖 공터를 떠돌아 다니면서 자유료운 삶을 살고 있고, 그 점이 크게 강조된다. 특히 지소의 엄마가 빈 집으로 보였던 집에 잠시 가족들과 머물다가 쫓겨난 곳에서 그가 머무는 모습은 영화 속의 부랑자가 작중의 현실과 한국 사회를 감싸고 있는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이상적으로 자유로운 자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삶은 결코 누구나 따라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사회 규정과 극단적으로 반대의 삶을 사는 모습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품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계속 드러내고, 그로 인해 작품은 가족영화는 물론 근래 나왔던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현실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동 대상 영화에 가족 영화라는 한계에서 영화는 자유롭지 않다. 작품은 아이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에서 집, 그리고 교육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만 작중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도 딱 그러한 지점에 머물기 때문이다. 계속 극단으로 치달을 것 같았던 문제들은 결국 막판에서 매우 이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고 만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의 폐부를 단순하게 봉합하고 해결했다는 인상을 들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나마 영화의 경우 원작보다 좀 더 사회의 다양한 부분을 잘 주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마치 작중 대사처럼 사실상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처럼 영화를 볼 일련의 가족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안정되리라는 희망을 심으려 안간힘을 쓰고 만다.

▲ 아이들은 결국 개를 훔침으로써 주인공 가족이 살 집을 찾으려고 하지만, 작중에서도 그렇듯 실제 현실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이 영화의 장점을 모두 가리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 나온 한국 영화들 중에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아동 영화라는 장르로써, 그리고 한국 사회의 다양한 단면들을 실감나게 재현한다는 지점을 모두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또한 전작 <소원>으로 주목을 받았던 이레의 연기와 강혜정, 최민수, 이천희, 김혜자를 비롯한 성인 연기자들의 연기는 영화의 리얼리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가 맨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일련의 영화들처럼 흥행에서 크게 소외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개봉된지 일 주일 만에 대부분의 극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물론 극장주로써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보다는 <국제시장>이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테이큰 3> 같은 대형 흥행작이 더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행을 이유로 주목받을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 제대로 극장에 걸릴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이 과연 계속 방치되어야 하는 일인가. 영화의 자체적인 완성도와 별개로 영화가 실제 극장가에 놓인 현실은 2015년에도 영화 속에서 강조되었던 '집'의 문제만큼 '극장'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