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시작되는 언플이겠거니 했다. 씨스타의 정규앨범이 모든 음원차트를 휩쓸었다며 요란을 떠는 기사들 말이다. ‘발매 2시간 만에 음원차트 올킬!’ ‘순식간에 차트점령’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은 그저 홍보의 일환일 뿐으로만 여겨졌다. 대세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제는 한물간 걸그룹 컴백에 누가 그렇게 신경을 쓴다고 이 야단일까 싶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씨스타는 그들의 두 번째 정규앨범 ‘Give it to me’를 음원차트 1위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어제 하루 동안 멜론, 벅스를 비롯한 각종 음원차트는 시스타의 노래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이틀째인 오늘도 그들의 기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아마도 한동안은 씨스타의 음원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걸그룹 열풍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아이돌이다.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알려지고 과거 한두 곡의 히트곡을 양산해낸 아이돌 그룹이라면, 적어도 당일 하루만큼은 음원 차트 1위를 휩쓰는 것이 컴백의 수순이다. 대중의 호기심과 홍보에 떠밀린 순간적 관심, 거기에 팬덤의 위력이 더해져 이러한 반짝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씨스타와 경쟁할 만한 다른 아이돌 그룹이 현재로서는 전무한 상태다. 음원차트 상위권 유지는 물론이거니와 방송활동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다. 이름도 생경한 아이돌 그룹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는 마당에, 씨스타의 음악방송 1위야 두말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고만고만한 아이돌 그룹 경쟁에서는 씨스타가 유리한 고지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에도 씨스타는 섹시함을 무기로 내세웠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아찔한 의상, 남자를 유혹하는 도발적인 안무와 제스처들을 타이틀곡 ‘Give it to me’ 뮤직비디오에서 화끈하게 드러냈다. 보다 농도 짙고 보다 강렬하며 보다 섹시한 눈빛으로 그들은 돌아왔다. 걸그룹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의 대표 이미지인 섹시와 큐트에서, 씨스타는 예전과 동일한 컨셉인 섹시 카드를 집어 든 것이다.

씨스타의 컴백에 각종 언론이 떠들어대고 있는 화두는 그녀들의 섹시한 의상과 안무다. 뭐니뭐니 해도 걸그룹은 섹시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며 노출 논란이 있을지언정 과감한 표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부추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말할 만했다. 씨스타는 자신들의 섹시함을 가리거나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욱 농염한 포즈로 돌아왔다. ‘Give it to me’에서 유행할 춤 역시 섹시한 컨셉에서 기인한 동작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씨스타의 진짜 무기는 따로 있다. 여느 걸그룹처럼 섹시함을 전면으로 내세워 휘발성 화제를 몰고 가는 것을 전부로 삼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보다 똑똑하고 알찼다. 씨스타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귀에 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떠졌다. 그렇다. 그녀들은 내실을 기하는 데 집중했다. 귀에 착착 감기는 친숙하고 편안한 노래. 바로 이것이 씨스타의 진짜 무기였다.

씨스타의 앨범 전체를 들어봐야 더욱 소상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이 부를 노래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는지를 말이다. 타이틀곡 ‘Give it to me’은 음악에 대한 그들의 치열했던 노력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섹시한 몸놀림을 배제하고 음악에만 귀를 기울여 보면, 이들이 다른 걸그룹 음악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Give it to me’는 어찌 들으면 무척이나 단순하게 느껴진다. 멜로디 라인은 흔한 마이너 댄스곡과 다를 바가 없고, 리듬감도 그렇게 세련되지 못하다. 현란한 기계음으로 모던한 분위기를 입히지도 않았다. 세련된 멋도 없고 자칫 진부하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도 있는 곡이었다. 한마디로 옛날 스타일의 오래된 노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씨스타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스타일이 돼버렸다. 가급적 기계음을 쓰지 않고 기본 보컬에 충실하며, 중독성을 염두에 둔 후크송이 아닌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를 강조하는 스타일. 다른 아이돌 그룹, 특히나 걸그룹이 내놓는 음악들과는 상이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그녀들의 독특한 음악세계다.

‘나 홀로’ ‘있다 없으니까’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한 씨스타식 아나로그 댄스곡이다. 걸그룹이기는 하지만 그녀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사운드로 무장한 반주가 아닌 기본적인 악기로만 구성이 된 심플한 반주는 2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사이버 세대를 대변하는 변조된 목소리가 아닌 허스키한 보이스 그대로인 효린의 보컬은 단순히 10대들만을 공략하지 않는다.

씨스타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나서야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Give it to me’의 음원올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홍보가 전부가 아니었고, 팬덤의 영향으로 밀어 올려진 것도 아니었으며, 아이돌 그룹이라서 순식간에 1위를 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녀들의 음악은 1위를 차지할 만큼 훌륭했다. 걸그룹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고 나와서 연이어 1위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씨스타가 컴백하기 전 꽤 굵직한 그룹들인 2PM과 포미닛이 앞서 컴백했다. 하지만 음원차트는 물론이거니와 방송활동에서도 별 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 실패 원인은 하나로 귀결됐다. 그들의 음악이 대중을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제 섹시한 비주얼만으로는 대중을 유혹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씨스타는 다르다. 섹시 컨셉이 주가 아니라 그녀들의 음악을 무기로 삼아 컴백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씨스타는 자신들의 음악이 야릇한 노출보다 훨씬 더 화끈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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