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미디어스는 고발사주 의혹을 [단독] 보도한 전혁수 뉴스버스 기자의 기고문을 두 차례에 나눠 게재합니다. 전혁수 기자는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윗선 수사가 무산된 이유를 언론을 중심으로 풀어냈습니다. 알다시피 고발사주 의혹은 검언유착 의혹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고발사주 의혹이 제기되고 공수처가 수사를 종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언론의 태도는 기억될 필요가 있습니다.

[미디어스=전혁수 뉴스버스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의 총선개입 사건, 이른바 ‘고발사주’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공모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2일 뉴스버스가 보도한 고발사주 사건의 혐의 대부분을 사실로 판단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4월 3일과 8일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범여권 정치인들과 기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에게 전달한 점, 김 의원이 이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조성은 씨에게 전달한 점 등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하면서 김진욱 공수처장이 고발사주 사건의 ‘본령’으로 지목했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입증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당시 검찰총장), 윤 당선자의 최측근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수사결과 발표 후 복수의 언론은 공수처가 ‘수사력 부재’를 드러냈다며 질타하고 있다. 공수처는 뉴스버스가 고발사주 사건을 최초 보도한 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고 일주일 가량 고발장이 접수될 때까지 시간을 허비했다. 이는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한 결정적 원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공수처의 수사력를 탓하기 전에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언론 보도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묻자, “정말 해도 너무 한다”고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이 관계자의 반응을 보면, 공수처는 수사 대상이었던 ‘수사 프로’ 검사들보다 언론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게 고비마다 언론은 피의자들의 입장에서 공수처 수사의 예봉을 꺾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언론의 행태는 ‘수사방해’에 가까웠다.

조선일보 기사와 기자들 사이 ‘지라시’

고발사주 사건의 핵심인 직권남용 혐의에서 필수적으로 밝혀져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발장 작성자’다. 작성자가 특정돼야 지시 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윗선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수사 시작 약 8개월간 작성자를 특정할만한 증거를 잡아내지 못했다. 특히 사건 초기 압수수색에서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고발장 작성자 특정에 난항을 겪었다. 공수처가 압수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PC의 하드디스크는 모두 비어있었다.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는 보안성이 높은 ‘아이폰’ 비밀번호 잠금해제를 거부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언유착 사건에서 아이폰 비밀번호 20자리를 설정해 포렌식 수사를 무력화시킨 것과 같은 방식이다. 손 검사는 지난해 12월 2차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고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건강상 이유를 근거로 공수처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공모한 혐의를 받은 김웅 의원의 휴대전화도 확보하지 못했다. 김 의원은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 기록, 윤석열 당선자의 검찰총장 시절 징계기록 등을 확인하는 등 고발장 작성자의 범위를 좁히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먼저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기록에 담긴 채널A 전 법조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역에서 기자들 사이에 2020년 4월 2일부터 검언유착 의혹의 제보자 지모 씨의 전과 내용이 담긴 속칭 ‘지라시’가 돌고, 지 씨의 페이스북을 캡처한 이미지파일 수십장이 기자들 사이에 공유된 것으로 확인된다. 참고로 4월 3일자 고발장에 첨부된 증거자료 중에는 지 씨의 페이스북 캡처파일이 다수 담겨있는데 이 가운데 4월 2일 캡처된 파일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20년 4월 10일자 조선일보 칼럼(위쪽)과 4월 3일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고발장 일부.

2020년 4월 3일 새벽 조선일보가 검언유착 의혹의 제보자가 지 씨라는 사실을 최초로 특정해 보도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3일 오후 손준성 검사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고발장은 조선일보 보도를 언급하며 제보자 지 씨를 ‘전속 제보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고발장이 전달된 일주일 후인 2020년 4월 10일 조선일보의 <[동서남북] “이번에 지면 우린 다 죽어”> 칼럼에서 조선일보 사회부장은 제보자 지 씨를 ‘여권 전속 제보꾼’이라고 표현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기록에 따르면, 조선일보 보도 전날인 2020년 4월 2일 채널A 전 법조팀장은 동료기자와 대화에서 “조선이 시작해준다니 너무 감사해요ㅠㅠ”라고 말했다. 채널A 법조팀 기자는 2020년 4월 3일 중앙일보 기자가 지 씨의 신원에 대해 묻자 “검찰에서 살짝 알려준 건데 조선 위에다 알려준 거에요”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3일 채널A 백모 기자와 중앙일보(현 JTBC) 박모 기자가 나눈 전화통화 녹취록. (자료=뉴스버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결국 기자들 사이에 공유된 ‘지라시’와 조선일보 기사의 원 정보 제공자가 고발장 작성자이거나, 적어도 고발장 작성에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동일한 내용이 세 군데서 발견됐다면, 그 정보의 최초 제공자가 고발장 작성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자료를 공유받은 기자들을 참고인 조사하면 정보 제공자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즉, 공수처가 기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언론사찰’ 주장으로 고발장 작성자 수사 저지

대검 감찰부는 작년 10월 29일부터 대검찰청 대변인 공용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아 포렌식했다. 공수처도 작년 11월 5일 대검을 압수수색해 해당 자료를 확보했다. 고발장 작성자 특정을 위한 수사의 일환이었다.

그러자 고발사주 사건 당시 대검 대변인이었던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은 작년 11월 7일 대변인 공용 휴대전화 포렌식이 ‘언론자유 침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어 “대검 감찰부가 단순히 진상조사를 넘어 전직 검찰총장 시절 언론과의 관계 전반을 사찰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한 권 지청장의 발언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검언유착 사건 기록에 따르면, 권 지청장은 검언유착 의혹 보도에 대한 대검 대응 방안을 채널A 측에 미리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연합뉴스TV에서 공수처가 오랜 기간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밀착 취재해온 종합일간지 기자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목된 기자는 조선일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당시 후보)의 취재를 전담하고 있었던 기자로, 전 직장에서부터 윤 당선자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실제 해당 기자에 대한 참고인 조사나 휴대전화 임의제출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같은날 권순정 지청장의 ‘언론자유 침해’ 주장이 언론을 타면서 공수처가 언론인을 조사할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자는 관련 보도가 나온 지 3일 후인 지난해 11월 11일 휴대전화 카카오톡 메신저와 텔레그램 메신저를 탈퇴한 후 재가입했다.

작년 11월 9일 법조기자단의 기자 15명 가량이 대변인 휴대전화 포렌식을 시도한 것을 두고 ‘언론탄압’을 주장하며 검찰총장실을 항의방문해 김오수 검찰총장과 몸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동수 감찰부장이 기자들에게 대변인 휴대전화 포렌식 경위를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법조기자들이 이를 보이콧하는 일도 벌어졌다. 법조기자 단체카카오톡방에서 한동수 감찰부장이 기자들 개개인에게 보낸 메시지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며 의견을 나누는 대화내용도 확인됐다.

2021년 11월 9일 대검기자단 카카오톡 단체방 일부

이후 작년 12월 9일 언론 보도를 통해 ‘통신사찰’ 논란이 불붙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자를 지지했던 김경율 회계사가 통신조회를 ‘당했다’고 주장한 이후부터 언론인들과 야권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통신조회 기록을 떼어보는 것이 유행하듯 퍼져나갔고, 기자나 정치인의 통신조회 사실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사찰’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는 공수처의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 수사와 고발사주 사건 피의자들의 통신사실확인 기록에 등장하는 통화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였을 뿐이었다.

물론 저인망식 통신조회를 통한 수사는 기존 검찰 특수부의 과거 수사 관행으로 지양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를 사찰로까지 몰아가는 것은 부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요 언론이 나서 한 목소리로 ‘사찰’로 규정했다. 언론에 등장하는 ‘검찰 출신 변호사’ ‘법조계 관계자’들은 ‘언론사찰’을 주장했다.

작년 12월 말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통신조회된 것을 언급하며 “미친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공수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나 윤석열 박근혜 특검 수사팀장 시절에 특검은 통신사실조회 요청만 220만건, 메신저 송수신 내역 약 3600만건을 조회했다.

전현직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당시 언론보도를 보며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저인망식 통신조회는 오래된 악습이라 개선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이번 사건에서 진행된 통신조회를 사찰로 몰아가는 건 수사를 막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기사를 보면서 저건 아예 수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였다”며 “언론이 저렇게 대놓고 수사하지 말라고 하는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통신조회가 무슨 사찰이냐”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사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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