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미디어의 진흥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담당할 '미디어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 정부·기업·학계·시민사회를 포함시킨 거버넌스를 모색하고, 미디어산업 경쟁력 제고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겠다" 윤석열 당선자 미디어공약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미디어혁신위원회'를 설치해 소유·광고·편성·허가·심의 등 미디어 시장 전반에 걸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위는 미디어혁신위를 '사회적 거버넌스'로 설명했지만 국가주도형 정책자문 기구가 아니냐는 물음이 따라붙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 박성중 간사 (사진=연합뉴스)

계속되는 질문 "옥상옥 아닌가"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간사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는 지난 26일부터 미디어 분야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디어 산업 진흥을 위한 규제 혁파와 미디어 공공성 제고 방안 등이 발표되었으며 상당 부분이 향후 설치될 미디어혁신위의 논의 과제로 지정됐다. 인수위 설명에 따르면 미디어혁신위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된다.

박성중 간사는 미디어혁신위를 "미디어 전반의 정책을 구상해 각 부처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미디어혁신위를 '국가교육위원회'에 비유하면서도 한시적 기구라고 말해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오는 7월에 출범하게 될 국가교육위는 중장기 국가 교육정책 수립 역할을 맡게되는 기구로 그 기능 때문에 교육부 축소·폐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가교육위는 '설치법'에 근거해 출범하는 정부 기구로 한시적 기구가 아니다.

인수위 브리핑 현장에서 미디어혁신위가 '옥상옥' 기구 아닌지, 미디어 통제 기구로 악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의 기자 질문이 이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된 미디어 거버넌스의 통합개편 없이 미디어혁신위가 정부부처 상위에서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박 간사는 "미디어 정책은 한 개 부처에서 담당하기 어렵다. 옥상옥이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관장은 관계부처에서 한다"고 답했지만 정책 대상자인 사업자들이 찾아가야 할 기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아니냐는 질문이 계속됐다.

정책 컨트롤 타워는 그동안 언론·시민사회와 정치권 안팎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와 차이가 있다. 언론시민사회가 주장하는 미디어혁신기구의 사례로 김대중 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를 들 수 있다. 1998년 당시 케이블, 위성 등이 등장하면서 달라진 방송환경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으며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논의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 설치를 제안했다. 그해 12월 사회 각계 인사들과 정부, 국회가 참여한 방개위가 출범했으며 2000년 방송법이 제정됐다. 2006년 IPTV 등장과 함께 출범한 국무총리 자문기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융추위)도 사회적 논의기구의 사례로 꼽힌다.

언론·시민사회는 미디어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6단체는 인수위와 미디어정책 간담회에서 '미디어혁신위의 사회적 논의기구로의 확대' 등을 요구사항으로 전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달 15일 논평에서 윤 당선자에게 "통합의 정치는 언론미디어 시스템을 국가 중심에서 자율과 협력의 체계로 전환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관건은 숙의와 합의에 이르는 정책 결정 과정이다. (중략) '미디어혁신위'를 출범해 정부-기업-학계-시민사회를 포함하는 거버넌스를 모색하겠다는 대선공약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주최한 새 정부 미디어정책 제안 토론회에서 채영길 민언련 공동대표는 미디어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 설치 등을 주요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등 토론 패널들 역시 사회적 합의 기구 필요성을 설명했다.

지난 19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언론 공공성과 시민 미디어기본권 강화를 위하여> 토론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화면 갈무리)

답 정해진 정책 방향, 사회적 논의의 '틈'이 있을까

인수위가 미디어정책 개편 방안을 이미 정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박 간사가 거론한 방송 규제 혁파안은 ▲지상파·종편 허가·승인기간 5년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과 외국인의 지상파·종편 소유제한 규제 개선 ▲지상파-지상파 및 지상파-유료방송 간 겸영제한 개선 ▲방송광고 유형·형식 규제 개선 ▲오락·외주·영화·애니메이션·대중음악·수입프로그램 등 방송편성 규제 개선 ▲방송심의 기준 완화 등이다.

미디어 공정성 확립 방안은 ▲공영방송 재허가 제도 폐지와 협약제도 도입 ▲공영방송 경영평가 제도 개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수신료위원회 설치 ▲방송 심의체계 개편 등으로 제시됐다.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나온 상황에서 미디어혁신위가 사회적 합의 기구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28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컨트롤 타워와 사회적 합의 기구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디어 통합부처 얘기가 나오는 것도 컨트롤 타워를 생각하면서 나오는 얘기"라면서 "다만 인수위가 시행령 단위의 정책들을 얘기하면서 규제 혁신을 언급하는 것은 논의 층위가 맞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을 미리 정해 디테일하게 얘기해버리면 사회적 논의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수위가 큰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하면 더 많은 합의가 촉진될 수 있다. 전체적인 체계를 바꾸는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이해관계자들 논의를 모아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일례로 인수위가 발표한 '규제 혁파' 방향에 대해 산업 진흥에 필요한 규제도 있다며 인수위가 규제와 진흥정책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예를 들어 디지털 플랫폼의 경우 사회적 부작용을 제거하고 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하는 것, 사업자 간 공정거래 규칙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이뤄져야 사업이 더 잘 진행될 수 있는 것"이라며 "당선자와 인수위가 산업 진흥과 공공성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 같다. 규제를 완화하면 그게 곧 산업진흥으로 연결된다는 단편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미디어혁신위를 사회적 합의를 위한 민관 협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대통령 비서실에 미래 혁신을 담당하는 큰 규모의 정책 자문기구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내놓은 상태에서 혁신위에 참여할 위원들을 지명하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바꿔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 기구라는 건 '레토릭'(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심 위원은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미디어 제도개선을 위해 여야가 특위를 만들어서 논의했는데, 결과적으로 공동의 안을 못 만들고 여당 안, 야당 안을 만들어 흔히 말하는 '날치기 통과'를 시켰다"며 "그런데 미디어혁신위는 그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야당과의 협의 의지가 없는데다 굳이 복잡한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성중 간사는 미디어혁신위 인적구성을 묻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인 건 없다. 공무원뿐 아니라 학자,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해 좋은 아이디어 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차원"이라며 "최고의 전문가가 같이 하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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