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심석태 교수 칼럼] 어떤 권력이든 우호적인 언론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언론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것은 정치인의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모든 권력은 언론을 적절히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언론도 적절히 권력의 입맛에 맞춰주며 공생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권력과 언론의 후견주의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언론은 권력 감시라는 사명을 잊고 권력의 대변자나 변호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언론의 달콤함에 빠진 권력은 비판적 보도를 ‘나쁜 보도’라고 적대시하며 점점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다.

권력·언론의 후견적 관계, 양쪽 모두에 위험

사회 전체적으로는 물론 권력으로서도 건전한 감시자로서의 언론이 사라지는 것은 스스로의 건강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어떤 권력도 어딘가 곪는 곳이 있기 마련인데,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면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바로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신뢰 받는 소통 채널이 있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과 항상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기 편만 들어주는 왜곡된 미디어에 취해서 정작 국민의 마음을 잃는다면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특정 세력과 야합하거나 동맹을 맺고 감시를 포기하는 것은 뉴스 소비자를 배신하는 행위다. 대놓고 특정 정파의 나팔수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공정한 감시자를 자처하면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보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래서 권력과 언론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언론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 자격증도 없으면서 언론윤리니 독립성이니 하는 것은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곡되지 않은 공적 정보가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언론은 이런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항상 지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집무실에서 열린 인수위 티타임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대선 과정에서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사회를 갈갈이 찢으면서 오로지 승리를 위해 내달린 것은 각 후보 진영들만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언론과 언론인이 선거전에 선수로 뛰었다. 개별적으로 의미 있는 기획 보도도 있었고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결정적인 보도들이 상당수 언론을 아예 선거운동원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SNS에 떠도는 의혹이나 일방적인 녹취록 폭로를 검증도 없이 보도로 공식화하면서 도대체 언론의 보도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적잖은 언론인이 SNS에서 격정적인 주장을 쏟아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 언론 소비자에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보다 의견을 함께 하는 집단과의 유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는 보이기 힘든 행동이다.

언론과 권력 ‘적정 거리 유지’ 위해 양쪽 노력 필요

1, 2위 후보들의 언론관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에 대한 거친 언사에서는 낙선한 이재명 후보 진영과 윤석열 당선인 진영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특히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전 막판 느닷없이 언론노조를 마구 비난하는 주장을 했다가 반발을 샀다. 언론노조에는 다양한 언론사 구성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는 윤 당선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전직 언론노조 위원장의 녹취록 폭로가 언론노조 비난의 계기로 보이지만 이렇게 언론인 집단을 통째로 매도하는 접근법은 어떤 면에서도 지혜롭지 않다.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것이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인데 지금의 언론노조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적대적 분위기를 만들게 한 캠프 인사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공영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다가도 막상 집권하고 나면 공영언론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정치권력의 입김을 차단하는 일을 외면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언론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권력도 언론의 본질과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출발은 언론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됐든, 정부 광고나 언론에 대한 각종 공적 지원 제도가 됐든, 온갖 수단으로 언론을 길들이고 줄 세우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야 한다.

언론에 문제가 있다도 공권력을 동원해 혼내겠다고 달려들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론이 스스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낫다. 언론 자율규제 체제가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공론장을 정상화하는 길이다. 정도를 벗어난 언론과 언론인이 있다고 권력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서면 또다시 여론 시장에서 극단적인 대결이 일어나고 합리적 목소리가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야 만신창이가 된 공론장이 그나마 정리의 가닥을 찾을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누구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소신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권력과의 관계에서 언론의 독립성도 이런 맥락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윤 당선인도 언론의 본질적 기능이나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선거 유세 기간에 내놓은 발언들을 보면 언론에 대한 거친 발언과 언론의 자율적 규제를 존중하는 발언이 뒤섞여 있다. 여기에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언론 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앞장섰던 일부 인사들이 당선인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점은 당선인의 언론관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측면이 있다.

윤 당선인 강조한 ‘협치와 소통’, 언론 정책에서도 발휘되어야

대선은 끝났다. 언론인은 물론 언론과 관련된 일을 하는 단체 등도 모두 언론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가 볼 때다. 무엇보다 언론과 정치 권력과의 적절한 거리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정치권, 특히 윤석열 당선인과 참모들도 언론과의 관계 정립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언론과 정치가 서로 존중하며 각자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 새 정부의 언론 관계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결국 현 정부에서도 불발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포함해서 언론 전반의 여러 문제를 폭넓은 논의를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공영방송이 사극을 의무적으로 만들게 하고, 국제뉴스를 메인뉴스에 30% 이상 편성하도록 하겠다는 주장처럼 공영방송이라도 권력이 방송 내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언론 제도는 권력이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이 아니다. 진지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과 숙의가 필요하다. 기왕에 진행 중인 국회 차원의 논의 기구를 좀 더 확대하는 것도 좋은 접근이 될 수 있다. 당선 직후부터 윤석열 당선인이 강조하고 있는 ‘협치와 소통’ 정신은 언론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서부터 발휘되어야 한다. 곧 야당이 되는 민주당이 징벌적 손배제로 대표되는 기존의 언론 정책을 고수할지 궁금하지만, 지금이라도 여야가 언론계 안팎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론도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미래 전망을 찾아서는 안 된다. 선거판에서 극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는 미디어나 언론도 있을 수 있다. 언제나 정상적인 언론 주변에는 유사 언론, 사이비 언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론을 표방하는 언론이 그런 전략을 추구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극단적 유튜브 채널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징벌적 손배제로 압박하지 않더라도 강력한 자율규제 체제를 만들고 스스로의 저널리즘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에서 언론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기술 변화로 언론 산업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거기에 언론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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