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예술활동증명’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예술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다. 예술활동증명 진행단계는 이렇다. 신청 완료, 접수 완료, 행정검토, 위원회 검토, 완료 혹은 미완료 과정을 거친다.

일단 신청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문학의 경우 일단 작품 발표한 시기별로 나누어 데뷔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예인지, 아니면 5년 이내 책을 출간한 작가인지, 아니면 최근 1년 동안 예술활동으로 얻은 수입이 120만 원 이상인지에 따라 자신이 해당하는 자격에 맞게 신청하면 된다. 신청 단계에서 내가 작품을 발표했다는 증거를 증빙자료로 만들어 첨부하게 된다.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 홈페이지 갈무리

신청을 하면 바로 접수로 이어지지 않는다. 접수 완료 단계로 넘어가는 데까지 20일이 넘게 걸리며 접수 완료 단계부터 접수된 신청 건을 확인하게 된다. 접수 확인이 끝나면 행정검토 단계로 넘어가는데,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으로 보완이 필요해 추가 요청이 들어가면 검토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자료 검토가 완료되면 심의위원회로 자료가 전달되고 위원회에서 자료 검토가 끝나면 예술활동증명 절차가 완료된다. 심의위원회 검토 단계를 통과하지 못해 미완료 되는 일도 있다.

신청 완료에서 승인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은 15주에서 20주이다. 4개월에서 5개월이 걸린다는 말이다. 5개월을 기다렸는데 미완료가 되면 이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내가 예술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일 년 남짓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신청했다면 잊고 있든가 느긋하게 기다리든가 해야 하지만 당장 활동증명서가 필요한 사람은 방법도 없이 애를 태우며 미리 절차를 밟아둘 걸, 하는 뒤늦은 후회만 할 뿐이다.

예술활동증명서가 있는 줄도 몰랐던 예술인도 많고, 뒤늦게 알게 되어 예술활동증명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예술인은 진행 기간이 4개월에서 5개월이 걸린다는 문구에 다시 놀라게 된다. 설마 정말 15주씩이나 걸리겠어,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완료 문자를 받고 신청 날짜를 계산해보니 진짜 15주에서 20주가 걸리더라며 웃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증명서를 받기까지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 이후 문화예술과 관련된 사업과 공연이 줄어들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증명서를 받기 위해 몰렸기 때문에 행정 처리가 늦어지는 것이다 -신청 완료 단계의 사람만 8천 명에서 1만 명에 가깝고, 접수 완료 단계에 있는 사람도 8천 명에서 1만 명에 가깝다. 신청과 접수 단계에 있는 사람들만 2만 명이다- 행정 처리하는 인원은 정해져 있었고, 신청은 코로나 시대 이전보다 급격히 증가했고, 행정 인원을 증원한다고 해도 인원 충원에 한계가 있었고, 신청은 날마다 증가하니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어요, 기다리세요, 라는 말은 답답하기만 하다. 예술인협회도 문화체육부도 같은 말만 할 뿐이다.

문제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나 기관에서 예술활동증명서를 요구한단 점이다. 내가 어떤 기관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든 상관없이 예술활동증명서만 필요한 것이다. 모든 공신력은 예술활동증명서에만 있는 것처럼, 예술활동증명서가 없으면 예술인이 아닌 것처럼, 지자체나 기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자격 조건에 예술인협회에서 증명하는 예술활동증명서를 제시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술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15주에서 20주에 걸쳐 재수 나쁘면 반려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지난한 과정을 보내며 예술활동증명서를 받기 위해 애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내가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방법이 예술활동증명서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술활동증명서가 꼭 필요하지 않았다. 등단 기관과 등단 연도, 작품이 확인되면 협회를 거치지 않고도 다른 활로가 열렸다. 코로나 시대 지원금을 받아야 작품활동을 할 수 있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예술인에게 신청자가 많아 심사 기간이 오래 걸리니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기다리는 수밖에, 내년이라고 행정 속도가 빨라지고 더 좋아질 리 없으니 우리 서로 대책 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