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한 정부여당을 비판하며 언론 '자율규제'를 공약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최근 '왜곡기사 하나로 언론사를 파산에 이르게 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후보의 발언과 공약이 배치되는 모양새다.

24일 국민의힘 정책본부(본부장 원희룡)는 공약집 '공정과 상식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발간했다. 공약집은 중앙공약, 지역별 공약, 59초 쇼츠(짧은 동영상)공약 등 세 축으로 구성된다. 이 중 '미디어개혁' 공약은 ▲부당한 언론개입 NO! 자유로운 언론 환경 YES! ▲공영방송 공정성 강화 ▲미디어·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한 전담기구 설치 등 총 세 가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사 파산 시스템' 강조한 윤석열의 '자율규제' 공약

윤 후보는 공약집에서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보호·신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가짜뉴스·악의적 왜곡 등의 문제는 자율 규제를 통해 해결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모든 조직화된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의 공약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윤 후보는 "현 정부 들어 가짜뉴스 등을 핑계로 비판 언론 억압·언론의 자유 침해 시도"가 있었다며 "기존 언론사, 시민단체, 언론학계 등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악 시도가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윤 후보의 공약은 최근 그의 발언과 배치된다. 지난 11일 대선후보 초청 2차 TV토론에서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허위조작정보를 가려내고, 신속하게 언론피해를 구제할 수 있도록 하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를 추진하고 있다"며 후보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우리나라는 사법적 재단이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적 절차에 따라 철저하고 혹독하게 책임을 물어왔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윤 후보는 "제일 나쁜 것이 친여매체를 악용해 어떤 가짜뉴스, 여론조작 정치공작, 언론을 하수인 노릇 시키는 나쁜 관행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12일 윤 후보는 정책공약 홍보 열차 '열정열차' 일정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방안에 대한 질문에 돌연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진실한 보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으면 공정성을 얘기할 필요도 없다"며 '언론사 파산 시스템'을 거론했다. 윤 후보는 "개인 인권을 침해하고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시스템이 우리 언론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면 공정성이니 이런 문제는 풀어놔도 전혀 문제 없다"고 말했다.

13일 언론 자율규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윤 후보는 '언론사 파산 시스템'에 대한 질문에 "언론자유 훼손 시도는 강력히 반대한다"면서도 "보도의 진실성 문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든지 자율규제라든지 이러한 행정적, 비사법적 절차를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에 버금가는 '언론사 파산시스템'을 거론하면서 언론에 대한 자율규제도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윤 후보는 권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자신과 관련한 의혹제기 보도에 법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 후보는 최근 배우자 김건희 씨 관련 '7시간 녹취록' 보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보도 등에 법적 대응했다. 기사화 되지 않은 삼부토건 유착 의혹 관련 한겨레 기사 초안에 대해서도 법적조치를 예고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해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는 규탄대회를 진행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구체적 안은 없어

윤 후보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공영방송 거버넌스 구조 개선'을 공약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공약집에 밝히지 않았다.

윤 후보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의 세부안은 정치권 추천 명문화로 추정된다. 윤 후보는 지난해 11월 KBS '질문하는기자들Q'의 질문에 '시민단체 참여가 아닌 여야가 직접 공영방송 이사를 7:6으로 추천하고 그중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이른바 특별다수제'를 제안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21대 국회 들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내용과 일치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주요 쟁점은 관행으로 이뤄진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배제할지 여부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사장을 선출하는 권한을 갖지만 정치권 여야가 7대4(KBS 이사회), 6대3(방송문화진흥회) 등의 비율로 구성됐다. 이런 구조는 보수정권 시절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 '방송 장악' 논란을 불러일으킨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밖에 윤 후보는 ▲KBS를 중심으로 공영방송 경영평가 강화 ▲공영방송 사회적 책무에 ESG 포함 등을 공영방송 공약으로 제시했다.

윤 후보는 공영방송 독립성에 부정적이다. 지난해 12월 관훈토론회에서 윤 후보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하지 않다며 방송사 내 '특정 세력'이 문제라고 했다. 관훈토론 전에는 "민영화가 답"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한 발 물러섰다.

윤 후보는 "독립시켜줬는데 그 안에서 특정 세력이 잡아서 방송의 진실성이나 객관성이 떨어진다면, 독립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현 정부 들어 여권을 향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통한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주장을 이어왔다. 윤 후보는 "중요한 건 진실과 공정인데 이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정권마다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공영방송을 과연 세금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많다"고 했다.

지난달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59초 쇼츠' 공약을 공개했다.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영상 갈무리)

윤 후보 공약집 '59초 쇼츠공약'에는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가 포함돼 있다. '공영방송 정상화' 공약으로 ▲사극 의무 제작 ▲메인뉴스 중 국제뉴스 30% 이상 편성 ▲영상 아카이브 오픈소스 공개 등이 주요 골자다. 지난 달 발표 당시 방송법상 편성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대로 공약집에 반영됐다.

한편, 윤 후보는 미디어정책 거버넌스를 모색하기 위한 '미디어혁신위원회' 출범을 약속했다. 윤 후보는 "정부·기업·학계·시민사회를 포함시킨 거버넌스를 모색"하겠다며 "미디어산업 경쟁력 제고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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