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방송 관련 규제 프레임을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2013년 방송통신기본발전기본법에 수평적 규제에 대한 선언적 조항이 신설됐지만 현실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22일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열린 <디지털미디어 콘텐츠 진흥포럼>에서 수평적 규제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새 기술은 확산되는데 규제는 지체되고 있다”며 “이제는 점진적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독경제가 시작되면서 방송을 둘러싼 프레임이 변하기 때문에 규제도 이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22일 열린 <디지털미디어 콘텐츠 진흥포럼> 황용석 교수 발제문 갈무리

황용석 교수는 “이제는 네거티브 규제로 나아가야 한다”며 “법에는 하면 안 되는 것만 적시하고, 나머지는 허용해줘야 한다. 이분법적 규제가 아니라, 적응적 규제방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황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적 규제제도를 철폐하고 자율규제 중심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 교수는 “이제는 결과가 아니라 프로세스를 봐야 한다”며 “처벌 중심이 아니라 조정 기능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표현에서 의견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수평적 규제가 중요하다는 황용석 교수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면서 “문제는 2000년 초중반부터 수평적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도 수평규제에 대한 선언적 내용이 있지만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동일한 서비스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동준 소장은 “지금의 제도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방송법은 2000년 전면개정된 후 현재까지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시장의 변화를 추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소장은 수평적 규제 도입 방안에 대해 “중장기적 로드맵을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며 “대선이 끝나면 미디어정책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시행령·규칙 변경 등을 통해 신속히 바꿔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 소장은 수평적 규제 도입과 함께 기존 규제를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소장은 “변화하는 방송환경에 따라 적합한 규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낡은 규제는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완화해야 한다. 규제는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수평적 규제는 찬성하지만, 지상파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지상파 중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똑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건 반대”라면서 “공영지상파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재원 확충 방안을 마련해주고, 지속적인 발전방안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그 외 사업자는 자율적 경쟁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규제를 최소화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해외기업 역차별 문제가 불거지는 영역의 경우 한국기업의 규제를 해소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홍식 교수는 “방송 규제는 누군가가 콘텐츠를 만들고 영업할 때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지금은 쌍팔년도식(1955년) 규제가 다 남아있다. 지상파는 규제의 굴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국회나 정치권은 아무것도 못하고, 청와대는 무관심한 상황”이라면서 “범사회적 논의기구가 필요하다. 각 영역의 전문가와 사업자가 미래청사진을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지상파는 상상의 공동체, 효용성 떨어진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지상파’라는 개념의 효용성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전파는 공공재로 취급되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는 높은 공익성을 요구받지만, 최근 IPTV 등 인터넷을 통한 방송수신이 늘어나고, 직접 수신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홍원식 교수는 “이미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지상파만 남아있다"며 "지상파의 효용성이 떨어졌는데, 그 이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홍 교수는 “지상파의 전파를 이용하지 않는 형태로도 공적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며 “지상파라는 이름을 고집해 공영방송에만 공적 영역을 짊어지게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한국 규제체계의 문제점은 규제와 진흥이 분리돼 있다는 점”이라면서 “정책적 목표가 두 개로 분리돼 있다. 현재 미디어 통합 부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규제와 진흥이 함께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특히 공영미디어, 지역방송, PP 등에 대한 적극적인 진흥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MBC, KBS, SBS 사옥

“지상파 개념 껍데기 아닌가, 완전한 수평규제 필요”

지상파 관계자들은 수평적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각론에서 달랐다. KBS는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과 공적 영역 설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원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박사는 “수평적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방향성은 공감한다”면서 “다만 수평적 규제에 대한 다양한 각론이 숨어있다. 현재 공공영역 플랫폼이 축소됐는데 해외에서는 정부와 공영방송이 협약해 공적책무와 서비스 범위, 재원을 설정하고 있다”고 했다. 박 박사는 “한국에서도 공영방송에 대한 별도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있는 만큼, 공적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종원 박사는 규제 완화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박 박사는 “방통심의위를 자율규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급진적”이라면서 “규제 방향이 거버넌스 체제로 가는 것은 맞지만 종합편성채널과 유료방송을 자율규제에만 맡기기에는 우려가 있다. 자율규제로 나아가기 위해선 조직이 고도의 전문성과 공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건식 MBC 공영미디어국장은 지상파라는 개념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박 국장은 “지금 지상파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가”라면서 “지상파 모델로 가는 것이 생존에 바람직한지, CJ ENM과 같은 (유료방송) 모델로 가는 게 맞는지 고민이 있다. BBC도 스튜디오화중인데, 플랫폼으로서 지상파는 껍데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박건식 국장은 “과거의 주파수는 특혜였지만 이제는 부담”이라면서 “직접수신율이 1%가 안 되는데 UHD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가. 송출을 5G와 같은 인터넷으로 운영하고, 주파수는 다르게 운영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또한 박건식 국장은 차기 정부가 ‘공영방송위원회’와 같은 공영방송 관련 기구를 신설하는 것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박 국장은 “공영과 민영에 대한 구분이 지나간 열차가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위가 공영방송을 보호하거나 살리는 제도인지, 아니면 문화재 보호처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공영방송이) 게토화된 섬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박 국장은 “MBC는 기로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위는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없는) 규제가 존속하는 문제다. 완전한 수평규제로 가는 것이 어떤가 한다”고 밝혔다.

엄재용 SBS 국장은 민영방송 소유·겸영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대기업은 방송사 지분 1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엄 국장은 “미디어 다양성 시대에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기업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10조 원 기준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엄재용 국장은 “진입규제 기준을 종합편성채널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2일 열린 <디지털미디어 콘텐츠 진흥포럼>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부장은 수평적 규제가 도입되기 위해선 OTT에 대한 규제가 대폭 축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 부장은 “미디어 법제 개편을 논의할 때 OTT와 규제를 등치하는 출발점이 불편하다”며 “OTT를 방송법의 잣대로 보니 (OTT 사업자들의) 동의를 못 얻는 것이다. OTT 콘텐츠와 방송 콘텐츠를 직접 비교할 수 있는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동환 부장은 수평적 규제가 도입되려면 ‘최소 규제원칙’이 필수적이라면서 “법제의 기준법이 방송법이라면 플랫폼 경직성이 생길 수 있다. OTT 사업자들이 적용받는 법이 7개~8개에 달하는데, 추가적 규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노 부장은 “OTT가 방송법에 들어가려면 기존 법을 정비해야 한다”며 “중복규제가 해소돼야 한다. OTT가 미디어법제를 통해 규제를 받는다면 해외에서 규제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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