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비판기사 삭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들이 기수별 성명을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기자협회는 “서울신문 오너와 경영진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본령은 무엇인가”라고 규탄했다.

서울신문 47기(2012년 입사) 기자 7명은 최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성명에서 “기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있지도 않던 6인 체제를 만들어 기사를 삭제하는 것은 교묘한 방식의 편집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미 출고된 기사를 팩트가 틀리지 않았는데도 삭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언론의 본질을 훼손하며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신문 (사진=미디어스)

47기 기자들은 “서울신문의 역사와 신뢰도에 큰 오점을 남긴 일”이라며 “해당 기사를 곽 사장이 편집국에 알리지 않고 직권으로 삭제하려고 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전해졌다. 편집권은 발행인과 편집국장 등 소수의 구성원에게만 귀속되는 권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으라”면서 “이미 침해된 편집권 독립을 앞으로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책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서울신문 50기(2017년 입사) 기자 9명은 성명에서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는 서울신문의 편집권을 상징해왔다”며 “구성원의 총의를 무시하면서까지 기사를 삭제할 이유는 없다.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도 기사를 삭제해서는 안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편집국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며 “서울신문이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옅어지고 있다. 황 국장은 호반과의 상생에 앞서 이런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불안함을 느낄 주니어 기자들의 고충을 헤아리고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51기(2018년 입사) 기자 5명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가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지부는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언제까지 후배들을, 기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인가”라면서 “'입장이 없다'는 건 경영진과 국장단의 판단에 동의한다는 뜻인가. 전국언론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할 때조차 정작 당사자가 침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51기 기자들은 “언론사 노조가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사안에 아무 입장이 없다면 노조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면서 “더이상 서울신문의 상황을 익명의 누군가가 쓴 '받은글'로 보고 싶지 않다. 책임 있는 사람의 책임감 있는 말을, 행동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서울신문 48기, 52기 기자들이 이번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기자협회는 19일 <서울신문의 저널리즘 본령은 어디에 있나?> 성명에서 서울신문의 기사 삭제 사건을 ‘폭거’로 규정하고 “편집권 침해 사태를 보면 낯이 화끈거린다”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는 “새로 들어온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편집권, 저널리즘의 원칙을 잃어버린 경영진과 편집국장에 대한 실망감, 기자로서 상실된 자존감은 서울신문을 넘어 기자 사회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자협회는 “서울신문은 사주조합이 50% 이상 지분을 갖는 대주주가 되는 독립언론의 모델 일보 직전에서 좌절했고 지난해 말 호반건설이 사주조합의 지분을 인수해서 서울신문의 1대 주주가 됐다”며 “그렇다고 해서 호반건설이 지면을 사유화하며 편집권을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편집권의 주인은 기자들”이라고 했다.

기자협회는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는 해당 언론만의 것이 아닌 전 사회의 것”이라면서 “사회적 성취를 얻은 결과물인 기존의 기사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대주주 오너라고 해도 멋대로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서울신문 오너와 경영진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며 “당신들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본령은 무엇인가. 서울신문을 소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강조했다.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16일 편집국 부장단 회의에서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를 내리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곽태헌 사장, 호반건설 검증보도 TF팀 대표, 편집국장 등 6인이 참여하는 협의체가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는 30여 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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