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고발사주' 의혹 피의자 손준성 검사(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의혹 지우기에 나섰다. 제보자 조성은씨와 의혹을 보도한 언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까지 거론하며 '정치공작' 공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7일 윤석열 전 총장은 <공수처인가? 공작처인가? 정치공작으로 '정권교체 열망'을 덮을 수 없다>는 제목의 입장을 내어 "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상처를 입혀 이재명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치졸한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국정원장과 조성은이 '윤석열을 칠 시점'을 정해 제보하고, MBC는 공수처의 내부자료를 몰래 건네받아 왜곡보도 하고, 공수처는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오로지 야당 경선 일정에 맞춰 수사하고, 이런 눈에 훤히 보이는 수작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총장은 "이 정권이 온갖 권력기관을 동원해 '윤석열 죽이기 프로젝트'를 밀어 붙이는 이유는 저를 죽여야만 정권교체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저들 또한 잘 알기 때문"이라며 "정치공작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고발사주' 의혹 초기 "출처없는 괴문서, 질질 끌지말고 빨리 결론 내라"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9월 뉴스버스 보도로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지자 "자기들(여권)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통해 정보를 독점하고, 필요한 것만 던지고 있다"며 "질질 끌면서 냄새나 계속 풍기지 말고 빨리 확인해서 결론을 내라"고 말했다. 또 "손준성 검사가 이런 걸 했다는 자료라도 있나", "출처없는 괴문서로 국민을 혼돈에 빠드리고 있다", "국민 모욕이자 사기" 등의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드러난 고발사주 의혹의 근거와 손준성 검사의 석연치 않은 수사기관 소환 불응은 윤석열 전 총장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이 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 조성은씨에게 '손준성 보냄'이 적인 텔레그램 메시지로 문제의 고발장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고발장엔 범여권 정치인들과 검찰 비판 기사를 작성한 언론인들이 피고발인으로 적시돼 있었다. 대검찰청은 조성은씨 휴대폰 포렌식 결과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가 조작된 정황은 없다고 결론냈다.

'출처없는 괴문서'라는 주장은 김웅 의원과 조성은씨 사이 통화 녹취파일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갈 곳을 잃었다. 지난 6~7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김웅 의원과 조성은씨 사이 오간 녹취파일을 복구했다. 김웅 의원은 당시 "우리가 고발장을 써서 보내줄거니까, 남부지검에 접수시키는 게 좋겠다", "대검에 접수하라", "검찰색을 빼야 한다", "접수되면 (잘 처리해 달라고)얘기해 놓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윤석열 전 총장과 국민의힘은 MBC·KBS 등이 김웅 의원 발언 중 "제가 대검에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온 게 되니까 저는 쏙 빠져야 한다"라고 보도한 내용을 문제삼아 다시 '친여매체 정치공작'을 주장했다. 여타 언론에서 '윤석열' 언급이 없었는데 친여매체에서 '윤석열'을 집어넣어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왼쪽부터)김웅 국민의힘 의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사진=연합뉴스)

이 주장은 곧바로 언론보도를 통해 깨졌다. 14일 뉴스버스는 김웅 의원이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19일 MBC 'PD수첩'이 공개한 녹취파일에서 김웅 의원이 "요 고발장, 요 건 관련해 저는 쏙 빠져야 된다.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재차 확인됐다. '윤석열' 언급은 두 차례 나온다.

공수처가 손준성 검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에 손준성 검사의 석연치 않은 출석일정 연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공수처는 지난 4일부터 손준성 검사와 조사일정을 조율해왔다. 손준성 검사는 변호사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거나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일을 10월 22일, 11월 2일 또는 4일 이후 등으로 미뤄왔다. 11월 5일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날이다. 김웅 의원 역시 국정감사를 이유로 소환일정을 미뤄왔다.

MBC 'PD수첩' 10월 19일 방송화면 갈무리

또 제보자·언론 공격 나선 윤석열

"국정원장과 조성은이 '윤석열을 칠 시점'을 정해 제보하고, MBC는 공수처의 내부자료를 몰래 건네받아 왜곡보도 하고…"

윤석열 전 총장은 메신저·언론 공격에 다시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캠프를 비롯한 국민의힘은 조성은 씨가 지난 8월 박지원 국정원장과 식사자리를 했다는 점, 지난 2월 박지원 원장 공관에 방문했다는 점 등을 들어 '제보사주', '박지원 게이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뉴스버스가 밝힌 취재 경위에 따르면 취재는 7월부터 시작됐고, 텔레그램 캡처 파일 등 관련 자료를 뉴스버스가 입수한 시점은 7월 21일이다. 뉴스버스가 일부 캡처 파일이 아닌 자료 일체를 조성은 씨로부터 받은 시점은 최초 보도 4일 후인 9월 6일이다.

조성은씨는 박지원 원장 공관 방문 당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전직 국회의원 등과 동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함께 자리한 전직 의원은 미디어스에 윤석열 캠프 등이 주장하는 제보 사주와 관련된 대화 내용은 없었을 뿐더러 보수언론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을 앞에 두고 박지원 원장이 정치적 논의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MBC 'PD수첩'의 녹취파일 보도는 조성은씨가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복원된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조성은씨는 19일 KBS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법무부가 인증한 업체를 통해 녹취록을 완성했다. 녹취록 형태와 원본(음성파일) 둘 다 가지고 있다"며 17분 37초 분량의 음성파일을 'PD수첩'을 통해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진 직후부터 조성은씨와 언론에 대한 공세를 펴왔다. 조성은씨가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기 전 윤석열 전 총장, 김웅 의원 등은 제보자를 특정하는 발언을 해 '색출' 논란을 빚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뉴스버스를 겨냥해 인터넷매체를 '공작통로'로 규정, 비하 논란을 빚었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7일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수처 '무리수' 중론… 수사 타격 불가피

다만 공수처의 손준성 검사 구속영장 청구는 결국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6일 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세창 판사는 피의자 방어권 보장, 증거인멸·도주의 우려, 향후 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손준성 검사의 진술 등을 검토했을 때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27일 언론들은 일제히 '공수처 무리수'를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출범 전부터 제기된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말도 나온다. '인권친화적 수사기구'를 자임한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는 비판도 있다"면서 "손준성 검사의 신병을 확보해 고발 사주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공수처의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공수처 수사력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윤석열 전 총장과 국민의힘의 역공도 거세질 전망"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구속영장 카드를 꺼낸 공수처의 승수부가 제동이 걸린 것"이라며 "야당의 대선 경선 일정을 고려해 수사를 서둘렀던 공수처는 체면을 구기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조선일보 <조사도 않고 무리한 영장 청구…망신 자초한 공수처>, 중앙일보 <법원 '고발사주' 손준성 영장 기각… "공수처 무리수로 망신">, 서울신문 <'고발사주 의혹' 손준성 구속 피했다… 공수처 무리한 영장청구 비판일 듯>, 세계일보 <'고발 사주' 이혹 손준성 구속영장 기각… 공수처, 수사 상당한 타격 예상> 등의 보도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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