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

영화 <인턴>에서 노익장 인턴 벤이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줄스에게 전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원작자'는 따로 있다. 바로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명언을 투철하게(?) 실천한 이가 있다. 그림만큼이나 끊임없는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이다. 예술의 전당 ‘피카소 특별전’ 벽면에는 “나는 평생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는 피카소의 말이 써 있다. 그 말처럼 피카소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여러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사랑만 한 게 아니었다. “내게 미술관을 달라 그 안을 채울 것이다”란 장담처럼 그는 생을 다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말년에는 도자기 작업에 충실했던 피카소. 그가 죽은 후 작업실에 남은 도자기만 3000여 점이었다니, 일에 대한 성실함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 ‘사랑하고 일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라는 말을 평생 솔선수범 실천한 것이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어디 피카소처럼 되겠는가 말이다. 일하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일도 쉽지 않고 사랑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삼포’니, ‘오포’니 하는 접두사가 붙었다.

시즌 2로 돌아온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상적인 ‘어른이'들의 삶을 잔잔하고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화제작이 되었다. 하고 싶은 걸 더는 미루며 살고 싶지 않다는 친구 석형(김대명 분)의 제안에 따라 다시 악기를 잡고 친한 친구들끼리 밴드를 하는 모습은 '로망'의 실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한 병원에 모여 일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함께하는 로망의 삶도 만만치만은 않다. 회차 별로 그들은 저마다 '사랑하고 일하는' 삶의 여정에서 흔들린다.

어른답게 산다는 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7월 8일 방영된 4화에서는 츤데레 흉부외과 김준완의 이야기가 '어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시즌 1에서 익준의 동생 익순과 사랑에 빠져 친구들 몰래 열애를 하던 김준완. 그 어떤 상황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가 익순에게 고백하고 답을 기다리다, '우리 사귀어요'라는 익순의 답을 받고 병원 복도에서 팔짝거리던 모습은 준완의 사랑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익순의 부대가 있는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원거리 연애도 부족하여, 시즌 1의 마지막에 학업에 대한 열의로 익순은 영국행을 택했고 준완은 익순을 응원하며 보낸다.

그리고 시즌 2, 익순과 준완의 사랑은 휴대폰을 타고 흐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안다. 두 사람의 통화는 언제나 준완의 걱정과 우려, 그리고 익순의 일방적인 자기 이야기로 채워졌다는 것을. 준완이 보낸 커플링이 반송된 것이 마치 복선이기라도 한 것처럼, 준완은 익순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공감을 일방적으로 보내기만 한다.

게다가 흉부외과 과장이 된 준완의 일상은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당직, 수술 그리고 비상 상황이 이어진 4화 차에서 안 그래도 마른 그는 점점 더 말라간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익순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그녀의 가장 친한 벗이 남자였음을 알게 된 준완은 홀로 고민한다. 그런 준완을 우려하던 익준. 익순이 준완의 애인인 줄도 모르고 익순과의 통화에서 준완의 여자친구가 '이기적'이라고 전하고, 그 얘기를 들은 익순은 고민 끝에 준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준완에게 익순의 이별 통보는 안 그래도 힘든 그의 다리를 꺾는 것 같은 고통을 안긴다. 익순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닭다리를 양보하지 않은 준완이었지만, 밥 한 술 뜨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이른다.

평범한 실연 이야기? 아니 멋진 의사의 이야기

여기까지는 평범한 한 남자의 실연사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 평범한 연애사에 반전을 꾀한다. 준완보다 딱 한 살 어린 레지던트 도재학은 SNS도 못하는 준완을 놀린다. 그리곤 멀리 있는 여친을 위해 준완의 사진을 올려주기까지 한다. 그리곤 언제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 말한다.

얼마 후 도재학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한 준완. 재학은 물론 시청자들도 당연히 익순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하지만 4화 엔딩, 준완이 재학에게 도움을 청했던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보호자 한 명 없이 홀로 중환자실에서,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는 전신마비 환자를 위한 도움을 청하기 위한 것.

4화 내내 준완의 노심초사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가 사랑을 위해 SNS를 활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준완은 자신의 SNS를 사적 용도가 아닌, 의사 김준완으로서 활용한다. 그리고 그의 그런 선택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 감동의 요체는 무얼까? 그건 실연의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중심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어른다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일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일도 사랑도 늘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렇듯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휘청이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인생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말한다. 그래도 어른이라면 삶이 늘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삶의 현장에 발을 딛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삶의 ‘성실성’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준완이었기에,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의사로서 본연의 의무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시즌 2의 4화 차에 이르도록 다섯 친구들은 치열하게 일한다. 그들은 수술을 하고 환자들을 보고 응급 상황에 달려간다. 그리고 그 틈새의 시간에 사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밴드도 하고, 좋은 일도 한다. 사는 게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치열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시인 오사다 히로시가 말하는, 성실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가 바로 그런 것일 테다. 적어도 오늘, 여기서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준완은 사랑의 아픔 속에서도 의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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