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야권의 대권레이스는 황당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건강 등 ‘일신 상의 이유’로 그만뒀다는 것이다. 언론인이 ‘캠프’로 직행하는 행태부터가 큰 문제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정치 참여 선언도 하지 않은 인사의 대변인을 맡았다가 열흘 만에 사퇴하는 것이라니, 두 배로 황당하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언론은 윤석열 전 총장과의 ‘엇박자’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동훈 전 논설위원이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입당을 기정사실화 하자 윤석열 전 총장이 직접 언론과 접촉해 이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행위는 ‘대변인’ 입장에선 사실상 불신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기자들 입장에선 굳이 ‘대변인’을 취재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윤석열 전 총장과 이동훈 전 논설위원이 생각하는 ‘대변인’의 상이 달랐던 것 역시 사태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자신의 판단을 가감없이 언론에 전해줄 것을 기대한 것에 반해, 이동훈 전 논설위원이 자신의 정무적 판단을 더해 발언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거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표면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다. 국민의힘 입당을 둘러싼 혼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동안 권성동 정진석 의원 등과 접촉하면서 시작됐다. 두 의원은 ‘중진’들과 접점이 있는 인사들로 지금의 이준석 대표를 지지한다고 볼 수 없는 인사였다. 따라서 이러한 행보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해석을 낳게 한다. 첫째는 국민의힘 조기입당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둘째는 이준석 대표와의 ‘줄다리기’ 정국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이후 여론은 이대로 흘러갔다.

이런 상황에 ‘대변인’은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첫째,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 윤석열 전 총장의 이전 행보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은 인정하면서 시점과 전체 그림을 얘기해야 한다. 둘째, 이준석 대표와 ‘줄다리기’를 해봐야 이미지와 실리 양쪽에서 손해가 날 뿐이니 이건 진화해야 한다.

국민의힘 입당을 굳이 부정하진 않겠으나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고 일각의 ‘택시론’은 지지자 개인의 발언에 불과하다는 국민의힘 이동훈 전 논설위원의 발언은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다. ‘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될만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정도 언론대응도 못하는 역할이라면 굳이 ‘대변인’이란 직함을 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태의 전후맥락을 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걸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판이 아닌 대검찰청의 논리로 본다면 ‘대변인’의 활동은 문제일 수 있다. 이동훈 전 논설위원이 ‘검찰총장의 대변인’이었다면 절차적으로 완전한, 정해진 입장만을 말하고 다른 맥락의 질문에 대해선 답하지 않거나 ‘정해진 입장’을 반복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도 그 외의 맥락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 ‘비공식적 수단’을 취하는 게 대검찰청의 방식이다. 그렇다는 것은 뭘까? 이번 소동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할 준비가 됐다기보다는 여전히 스스로 ‘검찰총장’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 게 아닌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총장이 자신과 마음이 맞는 ‘변호사들’ 외에는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모습은 보수진영 내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신한국당 공채 출신의 한 시사평론가가 페이스북에 ‘윤석열 X파일’을 봤다면서 지금 상태로는 네거티브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보수진영 내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윤석열 전 총장을 못미더워하는 내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등은 ‘윤석열 X파일’이 애초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언급됐다는 걸 예로 들면서 ‘여당발’ 프레임을 걸고 있는데, 비본질적인 시간벌기일 뿐이다. 보수진영이 취할 수 있는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윤석열 전 총장의 조기 입당을 성사시켜 ‘검증 공세’를 방어해야 한다. 둘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윤석열 전 총장을 대신할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

최재형 감사원장을 이 ‘플랜B’의 한 요소로 거론하는 주장은 하루가 다르게 구체적인 형태가 되고 있다. 7월에 사퇴하고 바로 정치 참여를 선언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 입당은 시간을 두고 판단할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실제로 최재형 감사원장이 윤석열 전 총장의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부 지지율을 쪼개서 가질 수는 있으나 쉽지 않다고 본다.

일부 언론은 최재형 감사원장을 대권주자로 고려하는 흐름의 배경에는 윤석열 전 총장의 ‘적폐수사’에 거부감을 가진 친박계 인사들의 의향이 실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전 총장 카드보다 확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권력기관의 수장이 ‘정치 직행’을 택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전 총장과 같은 명분상의 흠을 안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은 이 ‘흠’을 여론조사상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이라는 다른 명분으로 희석해왔다. 그러나 최재형 감사원장에게는 이런 명분도 없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정치 참여는 윤석열 전 총장보다 훨씬 적극적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나 감사원에 대한 태도는 충분히 문제를 삼을 수 있다. 어떤 결정의 정당한 명분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흠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이 이런 태도에 항의해서 직을 던지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플레이어’로서 참여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특별한 명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것도 없이 ‘죽마고우’나 ‘측근’의 ‘전언’을 통해 정치 참여를 공식화하려는 행태는 현실 정치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전장이 바뀌면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질 거라면서 ‘경제’를 언급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여당 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확정되면 공정과 정의를 강제적 수단을 불사해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 지금의 여론 지형이 일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나 윤희숙 의원이 이재명 지사 경제 비전의 헛점을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연습경기’이다. 이준석 대표의 구상대로라면 윤석열 최재형이라는 신기루가 걷히고 나면 당내의 대권주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국면이 올 것이다.

물론 이준석 대표의 생각대로 정국이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전직 검찰총장과 현직 감사원장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정권교체’로 이어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여당의 ‘야당 복’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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