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통합미디어법) 논의와 관련해 공영방송에 대한 별도의 법을 제정해 미디어 시장에서의 공적 영역을 담보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18일 전남 여수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봄철정기학술대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에 참여했던 황준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미디어 융합에 부합하는 새로운 규제체계'를 주제로 발제하면서 "공영방송도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으로 규율한다. 다만, 별도 설치법이 부재한 KBS 설치법 제정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미디어융합 환경에 부합하는 규제체계의 기본방향 중 하나로 공적영역-민간영역의 명확한 구분을 통한 공공성 제고를 강조했다. 그는 "공·민영 영역을 명확히 분리하는 것은 미디어 통합만큼 중요하고 쉽지 않다. 공적영역에 특화된 책무를 정립하고, 민간서비스는 자율성 보장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본을 준수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올해 방송과 OTT 등을 아우르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을 운용하는 등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부합하는 규제체계 마련을 준비해왔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 사옥

토론자인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공영방송 중 KBS 설치법을 별도 분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공적영역과 민간영역을 구분하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 논의에서 사업자 간 형평성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은 이유는 기존 규제체계 내에서 새로운 사업자를 포함하냐 말거냐, 규제 풀거냐 말거냐는 논의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로운 걸 도입하는, 다시 규제를 짜자는 개념이 들어가야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10여년 전 국가기간방송법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정치적 이유로 반대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여야가 상호협력해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했다. '국가기간방송법'은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으로, KBS와 EBS를 별도로 분리해 관리하자는 내용이다. 국회가 모든 위원을 추천하는 '경영위원회'가 공영방송의 사장, 부사장 등을 임명하도록 해 정치적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이 안은 수신료 등 공영방송 재원에 관한 부분도 국회 승인을 얻어야만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 연구위원은 미디어융합환경과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공영방송이 미디어 공공성 '최후의 보루'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시장에서 콘텐츠와 플랫폼이 국경을 넘어 경쟁하는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겹쳐 공영방송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 설명에 따르면, 영국은 지난해 12월 글로벌·온라인 시대 PSB(Public Service Broadcasting, 공공서비스방송)의 필요성 및 미래를 위한 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은 온라인미디어 시대에서의 PSB 시스템을 콘텐츠 단위인 PSM(Public Service Media, 공공서비스미디어)시스템으로 개편하는 안을 내놨다. 이용자가 언제 어디서나 쉽게 공공서비스미디어를 찾을 수 있게, 또 PSB가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하고 시청자에게 고품질 콘텐츠로 어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디지털 시대 공영방송의 경쟁력과 공공성을 증진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준비 중이다. 국내방송, 해외방송, 국립영상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공영방송 구조 개편과 함께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시청각최고위원회(CSA)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방식에서 공영방송사 이사회가 사장을 지명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아울러 CSA와 인터넷상 저작권 보호 등을 위한 고등기관 Hadopi를 통합한 ARCOM을 출범시키고, 레거시미디어와 신유형서비스 규율체계를 통합하는 제도개편을 추진 중이다.

18일 전남 여수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2021 봄철정기학술대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미디어 융합에 부합하는 새로운 규제체계' 세션. (왼쪽부터)황준호 KISDI 연구위원, 주정민 전남대 교수,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사진=미디어스 )

황 연구위원은 KBS 설치법 제정 가능성과 별개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안에서 지상파·공영방송의 특수성을 반영해 별도로 분류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내에서 콘텐츠 서비스와 플랫폼 서비스를 각각 규율할 때 '지상파방송'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규정해 공정성·지역성·다양성·보편적 접근권 등 공적책무를 부여하는 안이다. 황 연구위원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도 별도의 카테고리로 묶자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공영방송의 공적책무 이행은 정부와 공영방송사 간 '협약' 체결을 통해 점검할 수 있다고 했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에 명시된 공적책무가 실제 방송행위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협약'을 통해 측정가능한 과제를 부여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공영방송사별로 별도의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날 학술대회 중 차기정부 방송정책을 논의하는 라운드테이블에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부속 법안으로 한국방송공사법(KBS법), 문화방송공사법(MBC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법) 제정 등을 통해 공영방송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현행법에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는 사실상 없다.

심 교수는 "방송법을 전면 개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추진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신설할 때 그 법 안에 공영방송을 지금처럼 다른 유료방송 플랫폼이나 PP, OTT까지 하나의 틀 안에 묶어 놓는다면 여전히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다른 사업자들이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는 장애로 역할을 할 것이다. 포괄적으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은 역할을 정의하고, 구체적으로 차별적화된 의미에서 공영방송법 제정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부속 법령으로 공영방송사별 법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방송화면 갈무리)

심 교수는 "예컨대, 공영방송 안에 KBS와 EBS가 있다면 MBC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MBC를 공영방송 영역에 있으면서도 상업활동을 하는 상업방송으로 둔다면, 공영방송으로서의 MBC는 지배구조에 대한 얘기만 정의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까지 정의할 것인지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공적주체가 운영하는 여타 방송들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를 분명히 해야 공적영역에서 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기존 방송법 체계에서 규정하는 방송의 책무에 더해 공영방송법에 필요한 사항으로 ▲공적책무 수행계획 수립과 공적 책무 평가(공적책무 협약과 평가) ▲공영방송 서비스 영역 규정(채널신설·OTT 진출 등) ▲수신료 산정·배분·집행에 대한 감독(수신료산정위원회 등)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자율심의 등을 꼽았다.

심 교수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의 경우 일종의 기본법으로, 전체사업자를 규정해 공영사업자에 대해서만 책무를 정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수신료를 받는 회사와 상업적 재원으로 운영하는 회사는 달리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기본법은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부속법령으로서 각 공영방송별로 법을 제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방송광고, OTT 활동 등 풀어줄 영역은 풀어주고, 묶어야 할 부분은 묶어야 하는데 모든 방송사를 하나로 묶어놓으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에 있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런 논의를 명확히 하자는 측면에서 공영방송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각 사별로 차별화된 책무를 부여하고 재원문제, 평가시스템 등을 다르게 가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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