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양보마저도 양보할 수 없는 승부 끝에 결국 오세훈 후보가 4.7 서울시장 재보선의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큰 이변이 없다면 투표용지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사퇴한 인물로 표기될 것이다.

단일화 여론조사의 결론은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들 한다. 응답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오세훈 후보가 예상 외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까지 종합하면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첫째, 야권단일화와 관련된 정보가 이미 서울시민들 사이에 충분히 전달돼 다들 답을 낼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둘째, 이는 반대로 말하면 야권 지지자들이 최대 결집해있다는 얘기도 된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적극적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에 가깝다는 거다.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야권단일후보가 여당의 박영선 후보에 승리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물론 아직 단정을 하긴 이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 여파로 정부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라는 걸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세훈 후보가 과거 서울시장을 맡았던 시기의 일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국면이 시작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바다.

정권 후반부에 여당 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는 입장인 박영선 후보로서는 전형적인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정권심판론이라는 바람은 잠재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검증 전략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네거티브’다. 이를 통해 야당 후보의 중도 확장을 저지하자는 것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 특혜’ 의혹을 집중 거론하는 배경이다.

반면 여당의 장점인 조직력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보병전’을 거론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해찬 전 대표는 과거 오세훈 한명숙 두 후보가 맞붙었던 서울시장 선거를 거론하며 현재까지의 여론조사가 민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여당 지지층이 관망으로 돌아섰을 뿐 선거 후반전이 되면 결국 박빙승부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조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것이냐의 숙제는 남아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소감을 밝힌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선거의 결과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이게 대선까지 여의도 정치의 구도를 확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오세훈 후보로의 단일화가 선거 승리로 이어진다면 차기 대선의 야권 진영은 지금의 국민의힘 중심으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외에서 몸풀기에 나선 상태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별의 순간’을 언급하고, 마지막까지 오세훈 후보로의 단일화를 자신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쓰임새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반면 오세훈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 속에 야권 재편은 더 큰 폭으로 진행될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역할론에도 의문부호가 찍힐 수밖에 없다. 이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안철수 대표다. 안철수 대표는 본인으로 단일화되지 않을 경우에도 ‘더 큰 2번’을 위한 통합에 나서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최근까지 여의도 주변에는 안철수 대표가 수차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인연을 부각한 일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적폐청산 수사 등으로 국민의힘과는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 등을 근거로 두 사람이 제3지대에서 새로운 정치적 모색을 할 거라는 설이 파다했다.

물론 이 시점의 이런 저런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예측과 전망의 영역일 뿐이다. 시나리오는 언제든 다시 쓰여질 수 있다. 다만 행간을 읽을 필요는 있다. 이 맥락의 행간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재보선 이후의 야권 재편에 대해 보수정치 내부에도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김무성 전 의원을 비롯한 인사들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단일화의 걸림돌로 지목하고 사퇴를 요구한 것 등이 그렇다. 안철수 대표의 ‘더 큰 2번’ 주장은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견제를 위해 오월동주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내 중진들이 끊임없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견제하는 이유는 뭘까? 결국 이는 ‘김종인 노선’에 대한 반대이다. 김종인 노선이란 영남을 중심으로 한 보수와는 다소 거리를 두더라도 중단없는 중도 공략에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반김종인을 내세운 중진들은 보수정치의 기득권을 지키면서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예를 들면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이다. 홍준표 의원은 여전히 야권의 대권주자로서는 아직 정치 참여를 공식화하지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보수정치 내에서는 이 카드를 무시하고 대선까지 갈 수는 없다는 정서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보수정치 내의 이런 견해차를 차기 대선의 4자구도 가능성의 근거로 삼는다. 물론 이것보다 더 큰 근거는 이른바 여당 내의 ‘제3후보론’이다. 이 전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여당 내 주류가 용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이는 시나리오지만 가능성이 제로라고 할 수도 없다. 이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박영선 후보를 열심히 도우려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만일 어떤 구도로든 양당구도가 유지된다면 홍준표 전 의원 등 보수색깔에 충실한 인물들이 여당의 분열이 없는 상태에서 독자행동을 감행하기는 어렵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제3지대에서 만나는 시나리오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 후보로 보수 후보가 단일화된 것은 여전히 양당구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의 근거가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기준으로 볼 때, 재보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지금의 틀을 유지하면서 정권교체를 꿈꿀 만큼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관건이다. 오세훈 후보가 이번 선거 과정에서 과연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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