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매일매일 비슷한 뉴스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뜨거운 감자고, 이걸 다루는 정치권은 각자 자기 유리한 대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지만 별로 성과는 없다. 경찰이 중심이 된 수사는 시작부터 불신의 대상이 된 상태이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어울리는 정국이다.

이 상황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 국면이 이 정권에 치명적인 것은 이번 사태가 개혁의 정당성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3기 신도시는 어쨌든 공공 주도의 공급 대책으로 불리고 있다. 이 정권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민간 주도 공급으로 인한 집값 폭등 등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행각은 ‘대토보상’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부에서 대토보상을 확대한 것 역시 부동산 가격 영향을 최소화 하려 한 결과였다.

지난 총선 결과로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이 제안한 국회의원 전수조사는 양당이 서로를 핑계로 대는 폭탄돌리기로 표류하고 있다.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제안한 ‘특검’과 ‘3기 신도시 전수조사’도 여당 차원의 명운을 건 승부수라기보다는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여러 제안 중 하나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조건은 모두 정권이 ‘개혁’의 이름으로 추진한 정책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있거나 지난해 국민이 집권세력을 ‘밀어 준’ 결과로 형성된 것들이다.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여러 의구심에도 불구 이러한 ‘개혁’의 대의를 어느 정도는 믿어줬다. 그런데 오늘 이 시점에서 볼 때 과연 그 ‘개혁’이라는 것들은 현실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오히려 문제 해결에 방해만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유권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태가 현 정권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큰 정치적 타격일 수밖에 없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판국에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과 ‘촛불정신’을 다시 꺼내든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될지는 의문이다. 좋게 보면 중단없는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잡은 것이지만 이미 개혁에 대한 불신이 폭넓게 형성돼 있다면, 이런 정치적 지형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메시지는 아니다. 이렇다보니 결국 핵심 지지층까지 흔들릴 위기로 번지는 걸 차단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메시지라는 해석까지 나올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시점에 적절한 대응일까?

대통령이 사저 부지 논란에 대해 직접 반응한 것도 심상찮아 보인다. 국민의힘이 제기하는 의혹은 근거가 희박하다. ‘영농경력’이 무엇인지는 법적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이걸 조작한다고 농지 취득이 용이해지는 것도 아니며, 대통령 사저를 짓기 위한 토지 매매를 투기로 볼 것도 아니다. ‘대통령 사저 부지’라는 용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관청에서 개발행위허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의아한 것은 청와대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등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직접 메시지를 내는 방안에 대해 일부 참모가 만류했다는 보도도 있는데,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이 직접 대응의 필요성을 느낄 만큼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던 것이다. 임기 말 풍경의 하나인가?

이런 사정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실상 사퇴’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대통령은 정책의 연속성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했지만 선거를 앞둔 여당은 여론의 관리를 원했다. ‘사실상 사퇴’는 이 절충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의를 수용하지만 지금 대책을 마무리 하라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절충이다. 정책의 연속성과 여론의 관리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단일하고 종합적인 수습책이 아닌 이런 식의 절충과 미봉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 각 대권주자들과 당 소속 국회의원, 재보선 이후 당권을 노리는 유력인사들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치르는 선거 결과가 성공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서울시장 선거로 국한해서 본다면 여당이 유일하게 믿을 것은 외부 요인, 즉 보수단일화의 실패에 의한 3자구도 형성뿐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3자구도에서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앞서가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재보선의 특성과 여당의 조직력을 감안할 때 3자구도는 여전히 보수야당에 위험한 선택지다.

단일화는 결국 이뤄질 걸로 보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후보단일화 쟁점 중 하나는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의 큰 틀을 어떻게 짤 것이냐다. 국민의힘이 ‘기호 2번 출마’를 안철수 후보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유력한 변수로 끌어들이면서 파열음은 커졌다. 국민의힘은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전 총장을 업고 ‘자력갱생’할까 의심하고,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이 오세훈 후보로의 단일화 정당성 주장을 위해 자기 주장을 곡해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오늘의 윤석열 전 총장을 만든 건 정권과 여당이다. 하지만 오세훈 안철수 두 사람 간 논쟁은 야당도 주요 승부처마다 윤석열 전 총장을 주요 변수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럴 수밖에 없는 배경은 상당수 유권자들이 여의도 정치가 아니라 윤석열 전 총장으로 상징되는 수사 권력을 문제 해결의 유력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전 총장에게 밀리고 있지만 다소 급진적인 이미지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당 소속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실패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리더십의 출현이나 더 강력한 과거로의 복귀를 원하는 정서로 표출될 가능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혁과 과거 회귀의 진자운동으로 보이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진자의 축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느냐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드러난 ‘개혁 정치’의 좌초 위기는 재보선 결과를 통해 그 정치적 실체를 더 명확히 드러낼 것이다. ‘나쁜 놈 혼내주기’와 정치권의 손익계산을 넘는 시야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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