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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관객과 거리두기로 얻어낸 성취

기사승인 2021.03.08  09: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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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브릭의 실눈뜨기]

* 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 나온 에피소드 한 가지. 히로카즈 감독이 TV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던 시절. 자료조사 없이 전부 상상만으로 각본을 쓰고 드라마를 만들던 동료PD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동료가 유일하게 취재하고 만든 작품이자, 본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를 방영한 뒤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는 것이었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에피소드는 한 가지를 증명한다. 실화는 리얼리티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 실화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의 원천이지만 과도하게 개인의 경험에 치우친 이야기는 보편성을 상실하고 홀로 표류한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도 이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다행히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을 비롯한 연이은 호평은 영화가 외롭게 떠드는 독백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하다. 개인의 경험이 보편성을 갖춘 독창성으로 승화하는지 복기하는 과정은 <미나리>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향이다.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으로 온 1세대 이민가족의 정착기다. 부부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칸소의 외진 땅을 사들여 50헥타르가 넘는 대농장으로 키우려는 야심가다. 어머니 모니카(한예리)는 남편 제이콥을 믿고 한국을 떠났지만 미국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 부부의 슬하에는 어른스러운 딸 앤과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 데이빗이 있다. 농장을 키우고 만만찮은 병원비를 보충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상황. 모니카는 한국에 사는 친엄마 순자(윤여정)에게 연락을 하고 순자는 고춧가루, 멸치 등을 보따리에 바리바리 싸들고 미국 땅으로 건너온다.

영화 <미나리>

관객과 멀어지며 얻어낸 <미나리>만의 이야기
 
정이삭 감독은 가족의 사연을 배제하며 자전적 이야기들이 빠지는 함정을 피해간다. 영화는 제이콥과 모니카가 아칸소의 트레일러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중간 중간 한인사회에 대한 불신을 내비치지만 그들이 왜 아칸소의 허허벌판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정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가끔 배경 이야기가 너무 구체적이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과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관객은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판단하고 정신분석을 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별안간 아칸소에 뚝 떨어진 관객은 이제 데이빗의 가족들과 같은 맨바닥에서 귀농생활을 시작한다.

<미나리>의 또 다른 독창적인 부분은 외부의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민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건인 기존 주민들의 텃세, 이민자를 향한 인종차별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마을교회의 새 신자로 온 데이빗의 가족들을 환영하고 응급상황에서는 베이비시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마음을 열지 않는 건 제이콥이다. 개간을 위해 물길을 찾아야할 때 ‘무식한 미국 놈들 말을 듣지 말고 한국인이라면 머리를 써야한다’고 데이빗에게 가르치는 부분이나 한국전 참전용사이자 이웃인 폴의 선의에서 시작된 퇴마의식을 보며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는다. 제이콥의 이 아집이 결국은 스스로 불러오는 재앙의 단초가 된다.

외부인과 갈등이 없는 만큼 시선은 가족 내부로 향한다. 동료들도 감탄할 만큼 뛰어난 병아리 감별능력을 지녔지만 하루 종일 병아리 똥구멍만 보고 있기에는 지쳐버린 제이콥. 아들 데이빗의 심장병 때문에라도 큰 병원이 있는 대도시에서 살고 싶은 모니카는 크고 작은 일로 부딪친다. 은행 빚을 지며 시작한 농사는 물이 없어서 작물이 마르기도하고, 어렵사리 키워놓은 농작물도 거래처를 찾지 못해 시들어 간다. ‘나성에 가면’을 함께 부르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죽고 못 살던 꿀 떨어지는 한국인 부부는 아칸소에 없다.

부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건 ‘물’을 통해서다. 부부에게 물은 너무 많아도 문제, 없어도 문제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바퀴달린 집을 날려버릴 정도의 강풍을 동반한 토네이도로 인해 물이 넘치거나, 우물이 말라서 농수를 대다가 식수조차 끊기거나. 이때마다 해결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순자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뒤 부부는 순자에게 SOS를 날려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긴다. 수도가 끊겼을 때 궁여지책으로 순자가 심은 미나리 밭의 물을 길어와 생활할 수 있었다.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는 미나리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미나리>

이때 구원자로 등장한 순자가 자애롭고 지혜로운 할머니이기만 했다면 뻔한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다른 길을 택했다. 순자는 모니카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보러 왔지만 순순히 들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이들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주며 ‘지랄, 염병’ 같은 추임새를 거침없이 뱉기도 하고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숲 한복판에 아이들을 데려가 미나리 밭을 개간한다. 집에서 따라하면 안 되는 프로레슬링에 심취하는데 산에서 온 이슬. 물보다 저렴한 탄산음료 마운틴듀가 순자가 즐기는 음료수다.

귀여운(?) 부딪침은 데이빗과 순자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데이빗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 쿠키도 못 굽고 영어도 서툰 순자는 데이빗에게 전혀 ‘Grandma’ 같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냄새가 나는 할머니와 같은 방까지 써야하는 데이빗은 하루하루가 곤혹스럽다. 쓴 한약까지 가져온 할머니에게 데이빗은 마땅히 회초리 엔딩이 예약된 고약한 복수를 감행한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 거시적 이민사라면 데이빗과 순자의 갈등은 미시적 개인사다. 감독은 데이빗과 순자의 갈등을 거의 동등한 분량으로 배치해 이민 생활에서 찾아오는 고단함의 균형을 맞췄다.

<미나리>가 이민자 가족의 경제적, 문화적 고난을 전시하는 데 그쳤다면 지금의 호평을 받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캐릭터도 관객도 아메리칸 드림을 기대한다. 그러나 데이빗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을 방해하는 건 다름 아닌 본인들이다. 해결도 가족 구성원끼리 해야 한다. 이때의 키는 역시 순자가 쥐고 있다. 순자는 딱 한번 교훈적인 말을 남긴다. 미나리 밭에 나타난 뱀을 데이빗이 돌을 던져 쫓아내려 하자 ‘눈에 보이는 게 덜 위험하다’며 그냥 놔두라고 한다. 이 교훈은 재미없이 대사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부부싸움의 연출변화로 자연스레 그려진다.

첫 번째 큰 다툼이 있었을 때 초점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부부의 대화는 벽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고 아이들은 그 대화를 들으며 싸우지 말라는 글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이때의 갈등은 순자의 등장으로 잠시 가려지지만 해결되진 않는다. 두 번째 다툼에서는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부부가 전면에 나타난다.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아 감정이 격해지는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 한다. 관객 앞에서 갈등의 뿌리를 캐냈으니 이제 남는 해결법은 두 가지다. 갈라서거나, 다시 힘을 합치거나. 

영화 <미나리>

무의미한 <미나리>의 정체성 논란

<미나리>에서는 여러 영화가 스친다.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면에서는 수없이 제작된 할리우드의 서부극에 근간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바퀴 달린 집에 사는 모습에서는 <분노의 포도>, 외지고 불길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족에서는 <샤이닝>, 농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에서는 <마농의 샘>이 차곡차곡 겹쳐있다. 배경도, 시대도, 인물도, 장르도 다른 영화들이지만 새로운 땅에 정착해 결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과 적응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사실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나리>의 정체성 논쟁은 무의미해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다룬 영화이면서 미국 감독, 미국 제작자, 미국 배우가 주연인 미국영화가 미국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다니. 애초에 지금 시점에 제작진의 출신 자체를 따지는 게 비생산적인 일이다. 이미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를 통해 세계 각국의 수많은 콘텐츠를 국경 없이 소비하고 있지 않는가. 

“소설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 이해할 수 있는 허구인 반면 경험이란 그냥 사람을 뭉개고 지나가서 수십 년 후에야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SF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에세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에서 소설(픽션)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미나리>가 특정한 인종, 국적, 세대의 이야기인 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순간에도 데이빗의 가족들이 겪었고 극복해나가고 있는 이민생활의 고난이 과거의 일이 아니며 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상력을 가진 우리가 경험에만 치이며 살기에 삶은 너무 짧고 단편적이다.

미국영화로 인정할 수 없다면 그러도록 하라.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미국 골든글로브 또한 로컬 영화제일 뿐이다. 수없이 변주된 이야기가 <미나리>를 통해 다시 한 번 통하는 것도 영화의 국적보다 중요한 게 있고, 관객들은 그런 콘텐츠를 발견할 줄 알며 점점 더 강하게 원한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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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브릭 redcomet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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