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언론 보도가 우리나라 백신 정책이나 방역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 “백신 보도는 과학 영역인데 재난 보도처럼 속보 경쟁으로, 또 정치화돼버린 게 안타깝다”(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4일 새언론포럼과 자유언론실천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코로나19 백신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는 언론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발제를 맡은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2월 말까지 75개 언론사에 93,254건의 백신 관련 보도가 나왔지만 팩트체크 기사는 70여 개에 불과했다”며 "백신 관련 기사가 늘어날수록 팩트체크 기사도 늘지만 절대량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국언론의 코로나19 보도 특징으로 ▲오락가락 잣대 ▲사건기사 취재방식 ▲속보 중심 ▲방역의 정치화 ▲기사 쪼개기 ▲당국 발표에 의존하는 보도 등을 꼽았다.

김 대표는 오락가락 잣대의 예로 ‘뉴데일리’의 지난해 12월 23일자 보도를 소개했다. 뉴데일리는 <9월까지 ‘멍~때린’ 해외 백신...文 정부, 백신 확보 나선지 한 달도 안 된다>며 백신 도입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안정성 강조하더니...文정부 ‘안전성 미검증’ 얀센과 백신 계약> 보도를 게재했다.

뉴데일리 2020년 12월 23일 보도와 24일 보도. (자료=김준일 뉴스톱 대표)

코로나19 초기에 언론은 확진자, 사망자 발생 기사를 사건기사 취재 방식으로 보도했다. 김 대표는 “스트레이트 기사 형태로 누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사건’만 나올 뿐 분석이 없다”고 지적했다.

때로 속보 중심의 보도행태는 오보를 양산했다. 연합뉴스가 속보로 보도한 기사 대부분은 내용 없이 제목만 있는 한 줄짜리 기사였다. 김 대표는 연합뉴스 3일자 <당국 “백신 접종후 사망 현재까지 영국 402명·독일 11명 등”> 속보를 예로 들었다. 연합뉴스는 곧바로 ‘독일 113’명으로 제목을 수정했지만 이미 수십 개 언론이 오보를 받아쓴 상태였다. 게다가 해당 보도는 “영국은 402명, 독일은 113명의 사망신고가 있었지만 백신과 무관하다” 취지의 내용을 ‘백신 사망자 수’로 오인될 소지를 남겼다. 김 대표는 “언론의 속보 경쟁으로 백신 보도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의 3월 3일자 오타가 담긴 속보까지 받아쓰는 언론사들 (자료=김준인 뉴스톱 대표 제공)

‘백신 보도의 정치화’에 대해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악용될 수 있는 정보를 얘기하면 언론은 이를 정치적 논쟁으로 기사화한다. 여기에 전문가들을 끌어들인다”며 “정치부 기자라도 정치인들의 발언을 팩트체크해야 한다. 백신은 과학인데 정치화돼버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불신한다고 얘기했을 때 기자는 가짜정보인지 살펴야 한다. 정치부 기자가 잘 모르면 과학이나 보건복지부 담당 기자에게 묻거나 관련 기사를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양구 기자는 “언론 보도가 우리나라 백신 정책이나 방역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쳤다”며 “지난해 12월 백신 계약을 맺기 전 언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늦었다고 지적했다. 1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결정하자 언론은 문제 있는 백신이라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강 기자는 “언론은 집요하고 악의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문제가 있다는 딱지를 붙여놓고 이상 반응이 나오면 효과에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다”며 “결과적으로 대중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문제가 있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론조사회사 ‘입소스’가 15개국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의사를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백신을 맞겠다’는 여론이 지난해 10월 83%에서 두 달 사이에 75%로 줄었다. ‘지금 바로 코로나 백신이 나온다면 맞겠다’는 답변이 한국은 15개국 중 가장 낮았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10~ 11월 독감백신 사망 보도가 쏟아지며 불안감이 커지자 백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도가 방역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는 또 있다. 강양구 기자는 “정부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백신 접종을 유보한 이유는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 백신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해 백신 전문가와 전문의들을 소위 ‘쫄게’ 만들었다"며 "언론이 ‘65세 이상자 백신 접종 유보’를 유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기자는 “영국의 경우 70세부터 백신을 맞아 고령자 입원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손에 쥔 백신을 언론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밝혔다.

SBS의 2월 18일자 <"부작용? 백신 맞느니 사표"…일부 의료진 거부> 보도 (사진=SBS)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보도로 강 기자는 SBS의 <“부작용? 백신 맞으니 사표”...일부 의료진 거부>(2월18일)를 꼽았다. SBS는 의료진 사이에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 기자는 “당시 실제로 백신 접종 대상이었던 요양병원, 종사자, 의료진 설문조사 결과 90% 이상이 백신을 맞겠다고 했는데 일부 불안한 목소리를 인터뷰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보도”라며 “최소한 전체 여론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시한 다음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지만 현장에서 한 명이 불안감을 느낀다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게 맞냐”고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방역 당국이 강력하게 백신 접종을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양구 기자는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며 “지난해 9, 10월 초 독감백신 접종 사망자 보도가 나왔을 때 정은경 질병관리총장이 이를 돌파했다.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끌고 가니 대부분 언론이 따라갔다”고 말했다.

조형국 경향신문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는 “방역 당국이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며 “실제 정치권에서 1호 접종 논란이 일었을 때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먼저 맞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이에 정은경 청장이 답변해 정치권의 불필요한 논쟁을 가라앉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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