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겨레 현장 취재 기자들이 자사의 법조 기사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다”며 "현장에서 더는 '법무부 기관지', '추미애 나팔수'라는 비아냥을 듣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은 데스크가 현장 취재 기자의 목소리를 배제한다며 국장단, 사회부장, 법조팀장에게 논란이 된 기사, 사설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26일 한겨레 현장 취재기자 41명은 사내 메일을 통해 국장단과 부서장에게 성명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9월 ‘조국 보도 참사’ 성명을 발표할 때와 견주어 달라진 게 없다”며 “지난 30년 동안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한겨레 '조국 보도'는 참사, 편집국장·국장단 사퇴해야")

이들은 추미애-윤석열 갈등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 폭행, 김학의 불법출국 금지 의혹 등을 다룬 자사 기사가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런 일들은 결국 현장에서 무기력을 넘어서 열패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국장단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현장 기자들의 뜻을 모아 성명을 쓴다”고 했다.

2020년 11월 25일자 3면 기사

이들은 “한겨레가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윤석열 새 혐의…‘양승태 문건’으로 조국 재판부 성향 뒷조사>(2020년 11월 25일자) 보도를 지목했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을 조사했다’고 보도했지만 이후 공개된 문건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없어 사실상 오보였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현장 분위기와 다른 논조의 기사가 지면에 실릴 뻔한 적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지면계획에 잡혔던 <“법원 초토화시킨 장본인인데…” 윤석열 살린 법원 결정에 착잡한 판사들> 기사는 현장 기자들이 취재한 반응 중 소수에 불과한 ‘착잡한 판사’ 반응을 앞세웠다. 오후 지면계획에서 빠졌지만 현장 기자들은 “기사가 당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이용구 차관 관련 검찰 수사 지침 “목적지 도달 뒤엔 운행 중 아니다”>(2020년 12월 21일자) 기사를 '무리한 편들기'가 만들어 낸 오보라고 지적했다. 기사가 나온 직후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서 발간한 교통사범 수사실무 책자는 2013년 4월 최종 개정판이 발간됐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경찰이 법무부 차관의 폭행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어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적용을 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였다”고 말했다. 현장 기자들은 기사가 나간 뒤 공보관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지적을 받고 법조팀장에게 전달했지만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15일자 한겨레 사설

이들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또한 공정한 잣대로 보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제기했다. 지난 15일 자 지면에 실린 사설 <김학의 출국금지, 절차 흠결과 실체적 정의 함께 봐야>을 두고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절차적 정의는 훼손될 수 없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라며 “조국 사태 때부터 지적된 편들기식 보도가 이런 사설과 보도를 낳은 본질”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해당 사설에서 "일부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 금지 자체의 정당성까지 흔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김 전 차관에게 두 차례나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한 검사만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11월 열린 편집위원회에서 사회부장이 “전통적인 검찰 기사가 아니다 보니 식견 있는 기자들이 볼 수 있다. 일선 취재기자들은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두고 “데스크가 현장의 목소리를 어떤 논리로 배제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현장 기자들은 국장단과 사회부장, 법조팀장이 해당 기사와 사설에 대한 경위를 밝힌 뒤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고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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