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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러겠어’가 가리는 SOS 신호

기사승인 2021.01.21  13: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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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저를 구해주세요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여름이었다. 더웠다.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적인 더위가 일주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피로감과 짜증이 아파트 층층이 쌓여 금방이라도 지글지글 타오를 것 같았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날이 연속되었다. 기억하기로는 에어컨도 마음대로 켤 수 없는 사정이었다. 에어컨을 켰다가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뉴스가 되었다. 강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밤을 새우든가, 창문을 열어놓은 채 후덥지근한 바람을 뱉어내는 선풍기에 의존해 낮과 밤을 견뎌야 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늘을 찾아 걷고 있었다. 아파트 초입에 들어섰을 때 아이의 겁먹은 목소리 뒤에 여자의 새된 목소리가 뒤따랐다. 덧셈, 뺄셈을 배우고 있었다. 잔뜩 겁을 먹은 아이는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렸고, 그럴 때마다 재촉하는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더듬거리며 대답한 답이 정답이 아니었고, 좀 전보다 더 독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튀어 올랐다. 틀렸어, 틀렸어. 막대기로 바닥을 두드리는 위협적인 소리가 목소리 사이 사이에 섞여 있었다. 아이는 울며 말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그것도 답은 아니었던 듯 엄마의 목소리는 더 격앙되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엄마가 어쩌다 숨도 쉬기 어려운 여름의 정오에 아이에게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에도 아이의 덧셈과 뺄셈 시간은 계속되고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아이는 잘못했어요,를 반복하고 엄마는 호되게 아이를 야단쳤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돌아오면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가 밥은 먹었는지 걱정되었다. 덧셈과 뺄셈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아이를 잡는지 모르겠네, 하고 생각하며 창문 아래 오래 서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족들이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이들도 옴짝달싹 못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24시간 아이와 부모가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온하고 화목하던 가정에서도 없던 불화가 생기는 때란다. 가족이 완전체로 붙어 지내는 시간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아동학대가 이루어지는 가정의 아이들에겐 지옥과 같은 시간이다. 집은 지옥이 되고, 피해 아동은 사각 시대에 놓이게 된다. 

아동학대에 대한 흔한 편견 중 하나는 부모가 설마, 설마 그러겠어, 라는 생각이다. 그 ‘설마’, ‘그러겠어’, 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고, 묵인된다. 피해 아동과 가해자 관계를 살펴보면 실제 가까운 친인척과 부모에게서 발생하는 아동학대가 가장 많다. 이 중에서도 부모에 의한 학대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부모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사랑으로 자식을 돌볼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아동에게 발생하는 문제(학대)를 정확한 시선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키우다 보면 한두 대 때릴 수 있고, 버릇없이 행동하면 야단칠 수 있고 도중에 체벌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훈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당연하게 여긴다.

18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의 묘지가 눈으로 덮여 있다. Ⓒ연합뉴스

학대하는 부모는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이며,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이가 학대받고 있다고 의심되어도, 훈육은 부모의 몫이며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한 가정의 사적이고 내밀한 문제라고 생각하여 관여하지 않는 것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인식이다.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보낸 SOS 구조 요청을 가볍게 넘겨 버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스에 사건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학대는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아무 제재도 없이 자행된다.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체벌은 경우를 막론하고 용납될 수 없다.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고, 이웃의 아이라고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 속담 중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잘 크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웃의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 

한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돌보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 더는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아동학대를 모른 척하지 말고 아이들이 보내는 구조 요청에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는 아이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김은희 postboat22@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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