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법정구속에 몇몇 언론들은 '삼성 위기론'을 넘어 '외신까지 우려하고 있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에 인용된 주요 외신은 삼성 오너의 공백 등 사실관계를 전했을 뿐 '우려'를 하지 않았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 '이재용 구속 외신 우려'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언론은 "외신, 이재용 구속에 리더십 공백 우려", "이재용 구속 외신도 우려… '삼성 휴대폰이 中 추월'", "이재용 구속에 재계도, 외신도 '큰 공백 불가피' 우려", "이재용 구속에 외신도 주목… 블룸버그 '투자 차질 우려'", "'반도체 수퍼사이클 왔는데…한국은 이재용을 감옥에 보냈다'" 등의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들 기사의 본문에서 인용된 해외 주요 외신의 보도내용은 "삼성전자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됐다"(AP통신), "수년간 이어지며 정경유착에 대한 격한 분노를 불러온 뇌물재판에서 극적인 결론이 나왔다"(블룸버그통신), "삼성전자가 경쟁자들을 추월하려고 분투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주된 의사결정에서 물러나있게 됐다"(로이터통신), "이 부회장이 삼성의 주요 인수사업을 추진·승인하는 만큼 경쟁사 대비 삼성의 투자가 늦어질 수 있다"(월스트리트저널), "이 판결은 삼성전자에서 이 부회장의 미래 역할에 영향을 미칠 것"(BBC) 등이다.

이 부회장 법정구속으로 나타난 삼성의 오너 공백과 사업 차질을 보도하고 있을 뿐 삼성을 걱정하거나 삼성의 미래를 우려하는 내용은 없다. 단지 외신인용 문구에 기자가 '우려했다', '염려했다' 등의 서술어를 덧붙이거나, 전경련 등 우리나라 재계의 "매우 안타깝다"는 반응을 함께 나열해 '외신도 우려'라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인용된 외신 기사를 보면 한국언론이 인용발췌한 내용과는 다른 내용들도 함께 담겨 있다. BBC는 18일 기사 <이재용:삼성 후계자는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받는다>(Lee Jae Yong: Samsung heir gets prison term for bribery scandal)에서 "국내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가 삼성이 정치권력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범죄에 연루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같은날 기사 <삼성 후계자 뇌물 사건으로 30개월 복역>(Samsung Heir Sent Back to Prison for 30 Months in Bribery Case)에서 "비영리 주주 운동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채이배 전 의원은 '삼성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지만 삼성은 이 법적 공방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관련 기사에서 "6.25 전쟁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재벌 총수들의 잘못에 대한 한국의 시각에 큰 변화를 보여준다"면서 "월요일의 판결은 과거 한국의 재계 인사들에게 보여준 전형적인 관용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그(이 부회장)의 징역형이 삼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당장 알 수 없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2017과 2018년 감옥에서 보낸 기간동안 별 문제가 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며 "징역형은 한국 기업 지도자들의 경영 결정사항을 감옥 뒤에서 전달하는 것을 결코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AP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 등 국내기업으로 부터 수백만달러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형을 확정받은 사실, 최 씨가 18년의 징역형을 살고 있다는 사실 등을 나열했다.

한국일보, 글로벌경제 등은 AP통신 기사내용을 잘못 인용해 AP통신 기사를 쓴 기자가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일보와 글로벌경제는 AP통신이 "세계 경제가 유례없이 불투명한 시기에 세계 최대 전자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됐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AP통신이 아닌 알자지라의 보도내용이었다. 알자지라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의 불활실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이번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이 세계 최대 메모리칩·스마트폰·가전제품 생산업체의 공백을 초래한다고 보도했다.

AP통신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일보의 AP통신 인용문구를 공유하며 "그렇게 안썼다"고 했다. AP통신 기자는 "상식적으로 왜 언론매체가 오너십의 문제를 두고 사기업을 '염려'해줄꺼다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타이핑하면서도 이상한 거 못느끼는지"라고 했다.

한편, 일부 언론은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출장을 준비 중이었다고 보도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 직후 언론에서는 이 부회장 보석신청 가능성, 가석방, 사면론 등이 보도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19일 기사 <[단독]"이재용, 코로나 백신 확보 위해 출국 앞두고 있었다">에서 "이 부회장이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하지만 지난 18일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고 썼다.

한국경제는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가 "정부쪽과도 얘기가 잘 진행되고 있던 것으로 안다. 정부 요청으로 이 부회장이 직접 물량을 구하는 협상가로 나서려 했었는데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경제는 "당초 정부는 오래전에 이 부회장에게 백신확보를 부탁했지만 일정이 늦어지면서 해외출장이 재판일정과 맞물리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20일 1면 기사 <이재용, 백신 확보 위해 UAE 갈 예정이었다>에서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18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된다면 즉시 UAE의 수도 아부다비를 찾아 국가 최고위 관계자를 만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며 "면담 안건에는 코로나19 협력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5면 기사 <백신 조기도입 '화이자 프로젝트' 뒤에… 삼성도 뛰고 있었다>에서 정부가 화이자에 신형 주사기를 대량 남품하는 조건으로 백신 물량 일부를 다음달 중 국내로 조기 도입해 줄 것을 제안했고, 삼성이 신형 백신주사기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을 긴급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적극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고 있다"는 중소업계 관계자 말을 전하며 "이 부회장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백신 확보에 나서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말 재판에서 '삼성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국민 신뢰를 간과했다'며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고 했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부회장의 3.1절 특별사면을 요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이사는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올해 하반기 사면 얘기가 나오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19일 기사 <일각서 제기된 이재용 사면·가석방 요구… 실제 가능할까?>에서 "이 부회장이 전체 형량의 40% 가량을 이미 채워 가석방의 형식적 요건은 갖춘 셈"이라며 "다만 실무적으로 형집행률이 70~80% 정도 되는 수형자들이 가석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만약 가성방되더라도, 올 연말 정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준영 부장판사의 판결은 집행유예 선고 시에 직면할 국민적 비판을 피하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올해 가석방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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