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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제작현장은 노동 인권 사각지대

기사승인 2021.01.21  07: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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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60시간 노동 15.1%, 주 6~7일 촬영 35%…법 개정·관계 부처 대응 절실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 1년 차 스타일리스트 “끔찍한 건 드라마 현장이다. 3~6개월은 못 쉬고 잠도 편하게 못 잔다. 핸드폰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고 아파도 나가야 한다. 잠을 못 자다 보니 진짜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

# 2년 차 조명 스태프 “(촬영 시간을) 하루에 8시간 잡으면 지금 일어나는 사건·사고의 90%가 줄어들 거라고 본다. 졸음운전으로 팀에서 한번 사고가 났고, 특수효과팀에선 실제로 사고가 크게 났다”

‘방송 노동 영역의 확장적 산업안전 정책 연구조사’에서 나온 방송 스태프들의 증언이다. 조사 결과 방송 스태프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노출됐다. 방송 제작 현장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고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일 “방송 노동자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있는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60시간 일하는 스태프는 15.1%에 달했다. 주 52시간~60시간 일하는 스태프는 17.9%다. 주당 평균 근무 일수는 4.9일이며 ‘일주일에 6일~7일 일한다’는 응답은 35%였다.

하루 평균 촬영 시간은 15.3시간이다. '8시간 이내로 촬영한다'는 응답은 7.4%에 불과했다. ‘12시간 넘게 촬영해봤다’는 65%, ‘18시간~24시간 동안 촬영해봤다’는 12%였다.

'촬영 종료 후 다음 촬영까지 11시간 휴식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74%에 달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은 업무 종료부터 다음 출근까지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7년 차 동시녹음기사는 심층인터뷰에서 "새벽에 너무 졸리다 싶어서 졸음쉼터에서 자고 나니까 다음날 오후였다"며 "밤샘하고 너무 피곤해 다리운전 부른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6년 차 PD는 "안전사고의 가장 큰 이유는 시간에 맞춰 강행되는 스케줄, 비용절감 식 의사결정"이라며 "정확한 책임자도 부재하다"고 했다.

박기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방송 촬영 현장은 건설 현장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며 “스태프들은 문제를 제기하면 다음 일감을 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고 이재학·이한빛 PD 사망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태프 10명 중 3명은 언어폭력, 위협, 모욕 등을 경험했다. 폭력을 경험한 스태프 대부분은 ‘상사’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연출, 작가 직군에서 폭력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박 활동가는 “방송 현장에서 차별과 폭력은 여성, 비정규직 등 약자에게 향한다”며 “이는 방송 업계의 위계적 조직문화 때문이다.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방송 제작 현장에 맞춰 산업안전보건법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를 50명 이상 고용한 사업체는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등을 현장에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제작사는 스태프를 도급·프리랜서 형태로 채용하고 있어 안전보건체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김동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방송 스태프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드라마 제작 팀 전체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분류해 안전보건체계를 준수하게 해야 한다. 또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방송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영 희망연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방송사는 사고의 책임을 아래로 떠넘긴다”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방통위가 문제를 일으킨 방송사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지부장은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스태프가 죽거나 다치면 방송사가 처벌받아야 한다”며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촬영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방통위가 방송사에 패널티를 줘야 한다”며 “‘촬영 중 비정규직 관련 법을 어겼습니다’ 같은 자막을 내보내게 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방송사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우석 방통위 지상파방송정책과 과장은 “정부가 방송사 운영에 개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방송사가 스스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방송사에 관련 자막 고지를 강제할 순 없지만, 제작비 지원 사업 과정에서 ‘안전관리’ 항목을 추가하는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했다. 김 과장은 “지난해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 제출’을 지상파 재허가 조건으로 걸었다”며 “매년 실태조사 결과를 점검하겠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이뤄지는지 차기 재허가 과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지은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 과장은 “정부 제작 지원 사업에서 표준계약서 활용을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방송 분야 노동환경은 현장 협조 없이 개선하기 어렵다.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업자 등과 함께 4자 협의체를 꾸려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최재훈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사무관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요구에 대해 “관계부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방송 노동자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있는가?” 토론회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유튜브 갈무리)

‘방송 노동 영역의 확장적 산업안전 정책 연구조사’는 방송 스태프 21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8일부터 10월 7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방송 노동자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있는가?” 토론회는 한빛센터 주최로 20일 유튜브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론회 참여자는 박기형 활동가, 김동현 변호사, 최재훈 고용노동부 사무관, 강지은 문체부 과장, 김우석 방통위 과장, 이상길 부위원장, 김기영 지부장 등이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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