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술접대 의혹을 받는 전·현직 검사 4명이 관련 의혹이 제기된 시점에서 휴대전화를 모두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개인적 사유로 휴대폰이 분실·파손됐다거나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검찰 수사팀에 진술했다. 그동안 "술자리 자체가 없었다"는 이들의 주장을 집중 보도해 온 조선일보는 관련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19일 경향신문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술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전·현직 검사 4명 모두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 전에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들이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등에 몸담았던 '특수통 검사'들이라는 점에서 범죄 혐의를 감추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A씨는 검찰에 부부싸움을 하다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진술했고, 검사 B씨는 이동 중 휴대전화가 떨어져 깨졌다고 했다. 검사 C씨는 1차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머리가 복잡해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했다. 검사 D씨는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했다.

이들이 휴대전화를 교체한 시기는 지난해 10월 17일~25일 사이로 김 전 회장이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들 중 일부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 메신저 대화내용과 자신의 업무일지 일부를 삭제·파쇄하거나, 업무용 PC를 교체하기도 했다.

A·B씨는 100만원을 초과하는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며 C·D씨의 경우, 접대금액이 96만 2천원으로 처리돼 불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은 사건 당일인 2019년 7월 18일 밤, 술접대 자리에 김 전 회장과 A변호사, 검사 3명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련자를 기소했다. 수사팀은 참석자들의 유흥업소 주변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기록을 확보하고, 접대 비용을 입증할 비용 사용처를 확인했다.

경향신문은 20일 사설 <김봉현 술접대 검사들의 군색한 휴대폰 폐기 변명>에서 "특수부 검사 출신인 이들이 일제히 휴대전화를 분실·교체한 이유를 모르는 시민은 없다. 휴대전화를 압수해 통화 목록과 문자메시지를 분석하면 언제 어디서 누구의 접대를 받았는지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의 처사"라고 지적했다. 검사 C씨는 1차 검찰조사 때 검찰이 휴대전화를 압수하거나 임의제출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사팀이 요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C씨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주장한 시점은 1차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사이인 지난해 10월 24일이다. 경향신문은 "담당 검사는 휴대전화를 조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C씨는 압수수색 전에 휴대전화를 '분실(처리)'할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서조차 이렇게까지 제 식구를 감쌌다니 어이가 없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의혹의 장본인들이 범죄 증거를 인멸하고,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벌인 정황이 드러난 이상 남부지검의 수사 결과는 신뢰하기 어렵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들 4명의 비위는 물론이고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까지 규명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휴대전화 교체 의혹을 보도한 김은성 기자는 <[기자메모] 검사님들, 결백하다면서요?>에서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의 한 검사가 조사 중 이들에게 한 발언을 전했다. 수사팀 검사는 "결백하다면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에 적극적으로 제출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들은 한 때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에서 한솥밥을 먹은 '특수통' 검사들이다. '칼잡이' '저승사자' 별칭이 따라다니는 이들이지만 과거 자신들이 칼날을 들이댔던 범죄자의 행태를 답습한 것"이라며 "이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선 동료 검사조차 이들의 변명에 훈계조의 신문을 했을까"라고 했다.

김 기자는 "자신의 범죄 혐의를 덮기 위해 자신의 증거를 인멸한 경우 그 자체로 형사처벌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각자가 독립적 수사기관이라는 검사가 사법적 심판을 앞두고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검찰청에 출석한 일반 시민이 똑같은 행위를 했으면 이 검사들은 '그럴 수 있죠'라며 넘어갔을까"라고 물었다.

경향신문 1월 20일 기자메모·사설 갈무리

다수 언론이 관련 보도를 내놨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보수언론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 없다. 김 전 회장 폭로가 있었던 당시 경향신문, 한겨레, 서울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 다수는 특별검사, 특임검사 등 독립적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펀드 사기꾼의 이상한 폭로'라며 김 전 회장 진술이 허위라고 각을 세우고, 룸살롱 합석을 부인하는 의혹 당사자 입장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펀드 사기꾼의 이상한 폭로, 정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또 시작>(2020년 10월 19일)에서 김 전 회장이 해당 편지를 쓴 시점이 9월 21일로 알려진 점, 김 전 회장이 주장한 검사향응 시점은 라임사건 수사 시작 전이라는 점, 피의자 앞에서 검사가 수사 상황을 보고할 리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허위임을 알 수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기사 <김봉현 옥중편지 3대 주장, 모두 앞뒤가 안 맞는다>(10월 26일)에서 "A변호사는 '검사들을 김씨에게 소개해준 적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지목된 검사들 역시 '술 접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기사 <秋 "내가 지휘감독관" 尹해임건의까지 꺼냈다>(10월 27일)에서는 "김씨가 접대 대상으로 지목한 검사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고 있으며, 김씨 측의 다른 술자리 참석자들도 '검사들과 술자리는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며 "법조인들은 '추 장관이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김씨 주장을 근거로 특정 검사를 거론했다. 사실과 다르다면 명백한 명예훼손이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김봉현이 주장한 작년 7월 술접대, 당사자 전원이 "검사 없었다">(10월 27일)에서는 "접대 의혹을 받는 현직 검사들은 날짜가 특정되면 검찰청 출입기록 등 객관적 자료로 반박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특히 나머지 사람들은 'A변호사가 당시 술자리에서 추후 라임 수사팀에 합류할 검사들이라며 검사들을 소개했다'는 김씨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검사 술접대 의혹 폭로를 '윤석열 찍어내기' '여권비리 물타기'로 규정하고, 룸살롱 합석을 부인하는 의혹 당사자 입장을 보도해왔다.

조선일보는 사설 <법무장관이 입 열면 '아니면 말고', 秋장관 이렇게 판사 했나>(10월 28일)에서 "검사 접대 때 있었던 일은 그토록 자세히 기억하면서 정작 접대 날짜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한다. 날짜를 대면 거짓말이 드러나니 둘러대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데 김씨는 수사 착수 두 달 전 검사들에게 로비를 했고 변호사에게 '라임 수사팀에 합류할 검사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아직 수사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누가 수사팀에 참여할지 어떻게 아나.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기사 <檢 '김봉현이 지목한 검사들' 김영란법 기소하려…술값·인원 끼워맞춰>(12월 1일)에서는 "서울남부지검이 김씨가 지목한 현직 검사들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으로 기소하기 위해 술값과 술자리 참석 인원을 끼워 맞추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