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해 출범한 제5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한상혁)가 공영방송 공적책무 강화와 수신료 제도개선 등의 내용이 담긴 정책비전을 내놨다.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규정해 협약을 체결하고,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는 6일 제5기 비전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디어세상'을 제시하고, 3대 목표와 12대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방통위는 '신뢰받는 미디어환경 조성', '방송통신 성장 지원', '이용자 중심 디지털 포용사회 구축' 등을 정책목표로 내걸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우선 눈에 띄는 정책과제는 공영방송에 대한 공적책무 강화와 수신료 제도개선이다. 방통위는 방송업계 생존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미디어의 공적 기능과 산업경쟁력이 동반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강화하고 수신료 제도개선 등 방송 재원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책무를 제고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기본책임과 특별책무를 규정·평가하겠다고 했다. 공영방송 재허가 제도는 구체적인 '공적책무 협약제도'로 대체해 이행여부를 엄격히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적책무 협약'은 공영방송 서비스별로 공적책무 기본내용을 규정해 방통위와 공영방송 간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방송재원구조 개선과 관련해 수신료 제도개선이 우선순위에 올랐다. 방통위는 수신료 산정과 사용내역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수신료위원회' 설치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수신료와 다른 수익 간 회계구분·수신료 사용내역 공개 의무화를 추진하는 한편, 올해 6월 '수신료위원회'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방통위는 방송의 주요 제작재원인 방송광고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 수신료가 4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다만 KBS와 EBS가 수신료 회계분리와 수신료위원회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수신료 제도개선 등 관련 사업자 의견수렴 결과', 'EBS 수신료정상화추진단 현황자료' 등에 따르면, 수신료위원회 설치에 대해 KBS는 이사회와의 기능충돌을 우려하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현행 제도상 수신료 인상은 KBS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하면 방통위를 거쳐 국회가 최종 결정한다. 수신료 회계분리에 대해서는 두 방송사 모두 회계구분의 물리적인 어려움을 강조했다.

방통위는 방송광고 판매제도 개선과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재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상파방송의 광고매출 감소에 따른 결합 대상 중소방송사 지원금액 동반 감소, 결합판매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 등을 고려해 중소방송사 재원 지원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방통위는 올해 하반기까지 결합판매제도 개선 협의회 논의결과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제도개선안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 사옥

이밖에 방통위는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판매영역 확대, 정부광고 수수료 배분 합리화,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역할 재정립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렙 판매영역을 인터넷·모바일 영역으로 확대하는 미디어렙법 개정안을 올해 입법추진하고, 코바코의 역할과 조직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제20조는 지상파방송광고를 대행하는 광고판매대행자(미디어렙)가 지역지상파방송사, 중소지상파방송사의 방송광고를 다른 지상파방송사의 방송광고와 결합해 판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광고를 판매할 때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군소방송사 광고와 결합해 판매도록 하는 제도로 사실상 광고수익의 일정비율을 군소방송사에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현행 결합판매제도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헌법재판소 심판에 회부됐다. 광고주들은 결합판매제도가 방송광고 구매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입장이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비용적 부담, 경쟁사업자에 대한 지원, 규제형평성 차원에서의 결합판매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방발기금과 관련해 재원과 용도가 유사한 방발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재 두 기금을 통합운용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또 방통위는 방발기금 성격에 맞지 않는 지원을 축소하고 지역방송·재난방송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기관(국악방송·아리랑TV·언론중재위원회)에 대한 방발기금 지원 논란을 문체부·기재부 등과의 협의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는 낡고 불필요한 방송규제는 축소하고, 방송광고 규제는 '네거티브 규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규제체계를 합리화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편성규제는 최소한도로 축소된다. 시청점유율 제도는 2022년부터 산정범위가 온라인·모바일 영역(N스크린)으로까지 확대된다. 방송광고 규제는 방송광고 유형·시간 규제를 단순화하고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사후규제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재편된다. 특히 광고·협찬 규제와 관련해 방통위는 "방송매체별 규제 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이른바 '비대칭 규제' 해소 추진 입장을 밝혔다. 올해 방통위는 중간·가상·간접광고, 협찬고지 등에 있어 방송매체 간 규제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송법령 개정 추진에 나선다.

허위조작정보 대응책으로는 민간자율 팩트체크 활성화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이 정책과제로 제시됐다. 방통위는 지난해 출범한 팩트체크 오픈플랫폼을 사실관계 분석·자동판별 시스템 구축, 교육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모바일 앱 개발 등을 통해 고도화하겠다고 했다. 또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허위조작정보 유통방지 법안을 입법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허위사실 명예훼손과 관련한 처벌강화 논의는 표현의 자유 위축 문제와 맞물려 있다. 정보통신망 상에서 권리침해자 요청 시 관련 정보의 접근을 30일 간 차단하는 임시조치 제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제도 등 한국의 표현규제는 이미 강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방통위는 올해 정보게재자 이의제기권 신설, 임시조치 기간 단축,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 신설 등을 검토해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으로 촉발된 미디어규제체계 개편 필요성 요구에 방통위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법제를 마련하겠다고 답했다. 방통위는 방송과 OTT 등을 포함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개념을 신설, 법 제정을 올해 추진한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는 '실시간'과 '주문형'으로 분류된다. '실시간'에는 실시간방송과 실시간 OTT가, '주문형'에는 VOD서비스가 해당된다. 국회와 시민사회 등에서는 이 같은 미디어 규제체계 개편과 미디어 관련 정부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는 "근본적인 미디어 제도 개혁을 위해 범사회적 기구인 미디어 개혁기구 설립시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디지털 포용사회 구축'을 위한 정책과제로 방통위는 방송통신 민원 시스템을 '원스톱'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기존에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기관별로 이송·처리됐던 민원 시스템을 대표전화로 통일하기로 했다. 시청자 권익보호를 위한 전담기구도 2022년까지 설치돼 운영될 예정이다. 미디어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중장기 종합지원체계가 마련된다. 방통위는 시청각장애인의 방송시청 등을 지원하기 위한 가칭 '시청각장애인 미디어접근권 보장 지원법' 제정을 내년부터 추진한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5기 비전을 밝히면서 "소의 걸음으로 만리를 가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마음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준비해 끝까지 목표를 이루겠다"며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방송통신 미디어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위안과 행복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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