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연말의 국회가 여당의 일방독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안과 쟁점 법안 등도 여당의 일방 처리가 가시화된 상황이지만 보수야당이 또다시 ‘동물국회’를 만드는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동물국회’가 원천 봉쇄된 이유도 있으나 재보선을 앞두고 여당과 갈등이 커지는 상황 자체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23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주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를 다시 한 번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일단 양쪽의 정면충돌에 일단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를 불러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쪽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니기 때문에 상황 자체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마주오는 기차는 충돌할 운명으로 보인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가 23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공수처법 해법' 논의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주먹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키는 국민의힘이 쥐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장 후보들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의심하며 끝없는 검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야당 추천위원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후보를 추천했다. 공수처 출범이 급한 여당은 여당이나 법무부가 추천한 후보가 아니더라도 대한변협이나 법원행정처 추천 후보라면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치 현실을 감안해 수용 가능한 선택지를 생각해보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가 대통령에 추천할 두 명의 후보는 중립적 후보 한 명, 야당 추천 후보 한 명으로 합의하는 게 최선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런 시나리오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선택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야당 추천 후보는 최종 지명되기 어렵고 대한변협과 법원행정처가 ‘여당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힘 주장대로 하려면 야당 추천 후보로만 2명을 채워야 하는데, 이러면 여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적절한 후보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의힘은 합의가 안 되는 안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고, 결국 그 배경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의석수 분포로 볼 때 공수처의 출범 자체는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더라도 막을 수 없다. 국민의힘의 목표가 출범이 불가피한 공수처의 중립성을 그나마 강화하는 게 목적이라면 조금이라도 중립성을 가진 인사로 차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국민의힘이 그런 선택을 하리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몽니’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최선을 다했다’는 알리바이를 남길 정도까지는 노력을 하지만, ‘여당이 공수처를 통해 검찰을 무력화하는 독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공수처 출범 이후에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당이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사실상 ‘독재’를 하고 있다는 정치적 서사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국회 운영에 있어서의 불리함을 감수하고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 의미다. 국민적 지탄을 받을만한 모든 문제를 ‘정부 여당의 일방독주 탓’으로 규정하고 따라서 ‘견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선거를 돌파하겠다는 거다.

공수처가 ‘독재’의 수단이라는 주장은 보수정치의 선거연대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3일 공수처를 현 정권이 ‘20년 장기 집권’을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공수처법 개악을 막고 법에 정해진 대로 공수처장 합의 추천을 할 수 있도록 야권의 공동 투쟁을 논의해보자”고 했다.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의 단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정치적 소재를 꺼내들며 선거연대를 유도하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 출마를 사실상 공식화한 금태섭 전 의원도 공수처법 처리에 기권을 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서사를 주장하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일방 처리의 부당함’에 반발하는 걸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야당처럼 여당도 어떤 합의를 모색하는 것보다는 ’일방 처리’로 거둘 효과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년 3월에 대표직을 내려놔야 하는 이낙연 대표 입장에선 예산안과 이른바 개혁 법안 등에서 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재보선 승리와 대권도전으로 행보를 이어나가야 한다. 야당과의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를 이루는 게 도움이 되겠으나 그럴 수 없다면 지금은 성과를 위해 속도를 내야 한다. 이러니 연말 국회는 강대강의 구도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양당이 굳이 그런 광경을 연출하겠다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우려가 되는 것은 다른 사안까지 이 구도에 휘말려 표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3차 재난지원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수도권이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돌입하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3차 재난지원금을 언급하면서 관련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은 대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여당은 당장은 쉽지 않다고 한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특이한 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오히려 3차 재난지원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엔 두 가지 노림수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 첫째는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행위의 연장선이다. 당시에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100조원’을 언급하며 코로나19 경제 대책의 필요성을 강변한 바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 등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관련 이슈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노림수는 국민의힘이 3차 재난지원금 관련 예산을 본예산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정부 여당이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적자국채 발행 등에 관련한 계획도 검토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향으로 나타날 수 있는 피해 산정 등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단 본예산을 처리하고 1차추경 등을 모색해보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쟁점이 본예산이냐 아니냐로 형성이 되고 결국 예산이 이대로 여당에 의해 일방처리되면 국민의힘으로선 ‘재난지원금 지급을 여당이 거부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등으로 이익재분배의 정치에서 다소 밀린 국민의힘이 이 수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주장하는 대로 3차 재난지원금은 필요하고 지급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거다. 여당도 야당의 주장을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 예산안과 관련한 협상의 문을 한 번 열게 되면 이런 저런 쟁점이 추가로 발생해 예산안 처리 자체가 결과적으로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난관을 돌파해가는 것 역시 정치적 능력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런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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