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원불교 교무] 1986년 지어진 낡은 목조건물 원불교 뉴욕교당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래 견뎌온 만큼 군데군데 손볼 곳이 많다. 공사 책임을 맡은 김 선생님의 하얀색 포드 화물차(cargo van)에 실린 손때 묻은 연장에는 그와 함께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해병대를 나와 중동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한 그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기회를 주고자 미국 이민을 다짐하게 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을 한국에 두고 홀로 남미로 가서 밀항선을 타게 되는데 뉴욕에 처음 도착한 후 컨테이너 안에서 일주일을 굶었다고 한다.

영어 한 마디 못했던 그이지만 어찌어찌 이민국 직원의 단속을 피해가며 지붕 고치는 일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영주권을 얻게 해주겠다는 한인 브로커에게 속아 피땀 어린 돈을 사기 당하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그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대신 서류미비자들(미국에서 불법체류자라는 말 대신 사용)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체가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알고서 한 칠면조 가공공장에 취업하여 수년간 일한 후 고용주 보증으로 마침내 영주권을 얻었다.

미주 한인들이 2019년 11월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 폐지 철회 및 임시보호지위 대상자, 서류 미비 미등록 불법체류자 지지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신분문제가 해결되자 합법적으로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할 수 있었다. 이후 하수배관 공사를 포함해 가지가지 집수리 일을 하며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아들 딸 공부도 잘 시켰다고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파란만장한 미국살이 이야기가 끝나고 그와 나는 부족한 재료를 구입하러 초대형 철물점 홈디포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작은 공원을 스치며 지나가다가 일자리를 못 구한 남미출신 남성들이 끼리끼리 모여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본 그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분노했다. 자기는 세금에 치여서 주말 주중 가리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하는데 저놈들은 정부지원금 받으며 놀고먹는다는 게 화내는 이유였다.

2014년 11월, 오바마 정부가 수백만 서류미비자들에 대한 추방을 유예한 지 일 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다. 이민개혁안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중남미 출신의 히스패닉계였고 그들 가운데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미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고 볼멘소리 하는 일상에 지친 미국시민들이 늘어갔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밀입국자 신세였던 김 선생님도 그중 한 분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2016년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반이민정책을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한 몫 했다.

빈곤층과 그보다 사정이 약간 나은 납세자 간의 갈등이 번져가는 모습에 서글펐다.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가난한 이주자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품어 안기에는 양극화시대를 살아내는 삶들이 너무 팍팍한가 보다.

한국인들의 마음에도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씨앗이 이미 싹을 틔웠다. 그러나 거기에 물과 거름을 주고 말고는 우리 각자의 몫이겠다. 맹자는 보통사람들은 재물이 넉넉하지 못하면 본래마음을 지키기 어려우나 오직 선비만이 벌이가 시원찮아도 참마음을 보전한다고 하였다.

더 어려운 시절이 오더라도 조금 더 여유 있는 우리가 조금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매정하지 않는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을 희망한다.

무자력할 때에 피은된 도를 보아서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줄 것이니라 - 원불교 정전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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