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북한군에 의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이 살해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을 어떤 이유에서건 해상에서 살해한 북한의 처분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각자가 유리한 주장을 하는 것에 국한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국회는 대북규탄결의안와 긴급현안질의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선 당혹스럽다. 대북규탄결의안에서의 쟁점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대목을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의당이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북한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결의안은 ‘맹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이유는 청와대가 북한에 공동조사를 제안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은 사격을 했다는 것과 무언가를 불태웠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우리 군의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주장은 이 사건이 정상적인 경계근무 활동 중에 일어난 우발적 사고라는 것에 가깝다. 반면 우리 군의 주장대로 하면 북한은 이슬람국가 등 테러단체나 저지를만한 일을 한 게 된다. 국제사회의 지탄과 추가 제재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특히 미 대선을 앞둔 상황에선 이 불똥이 어디로 튈지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속한 사과와 사건의 축소는 이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북한이 인정하게 만들고 이와 관련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북한을 테이블로 이끌어 내 우리가 확보한 증거 등을 제시하면서 책임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조사를 요구하면서 군 통신선을 복구하도록 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북한의 만행을 강도 높게 규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남북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상대방을 향해 자기 입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게 만드는 것은 사태의 바람직한 해결방식이라고 볼 수 없다. 청와대의 공동조사 요구는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회의 규탄결의안에 북한이 부정하는 사실관계를 모두 적시하게 되면 공동조사 요구의 정당성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만행에 대한 비난을 최대치로 반영하는 게 속은 시원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또다른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여당이 이 점을 보수야당에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게 중요했는데, 설득을 해야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의지를 갖지 않는 상황인 듯 보여 아쉽다.

국민의힘 이용 의원이 29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북한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망사건 관련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정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는 국민의힘의 태도이다. 국민의힘은 이 사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을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번 사건과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 대응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은 행방이 묘연했는데, 이런 사실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국회에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일로 드러났다. 여기서 시작된 사건의 실체는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반면 이번 사건의 경우는 청와대와 군, 관계 부처가 어떤 대응을 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이 돼있는 상태다. 군은 어업지도원 모씨가 북한군에 의해 해상억류된 시점부터 사살된 직후의 상황까지 첩보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관계부처 장관들과 첩보의 신뢰성을 분석했고 이 작업은 새벽에야 끝났다. 이 결과는 그날 아침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사실확인을 하고 국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는 지시를 했으나 북한은 하루가 지나도록 답을 해오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날 국방부가 우리 군이 파악한 첩보에 근거한 사건 전모를 공개했다. 야당 입장에서 이 과정이 적절한 것인지를 따져 물을 수는 있겠으나 대통령이 어디서 뭘 했느냐고 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왜 구조나 송환 지시를 하지 않았는지, 새벽에 당장 보고를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해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군의 입장에선 북한이 어업지도원 모씨를 평상시처럼 육상으로 데려가 심문하는 과정을 거치리라 봤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첩보 분석이 끝난 이후 새벽에 대통령에게 상황을 긴급히 보고하더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돼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고 있다. 안이한 태도였다는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겠으나 이 역시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태도와 비교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 대응의 가장 큰 문제는 살해된 어업지도원의 유족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전후사정이야 어쨌든 비무장 상태인 국민이 희생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에게 어떤 설명이나 배려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 발언은 28일이 돼서야 그것도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나왔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여당 인사들은 남북관계, 북미대화, 여야 간 정치적 대립의 문제에 대해서만 말하기 바빴지 이런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 여당과 보수야당 모두가 비극적 사건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고만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공동조사를 수용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수용하더라도 성과를 내기는 여전히 어려워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신이나 유류품이 발견돼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 쉽지 않고 오히려 NLL 등 문제를 들어 북한군이 수색을 해태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이 오직 정치적인 소재로만 다뤄지는 상황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용당하기만 한다’는 정치 일반에 대한 혐오적 정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체의 신뢰에 대한 문제인데도 여야가 오직 눈앞의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것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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