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기상캐스터’를 입력하면 '날씨 여신', ’미모의‘, ’비키니 몸매‘, ’글래머‘, ’반전 볼륨‘, ’마네킹 각선미‘, ’핫바디‘ 등의 검색 결과가 나타난다. 기상캐스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첫 기상캐스터는 남성으로 1965년 KBS에서 기상청 전신인 국립중앙관상대 직원 김동완 통보관이 날씨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 이익선 씨가 등장하며 여성 기상캐스터 시대를 열었다.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 영상광고학과 교수의 발제 자료 중 한 장면.

기상캐스터가 여성의 직업으로 자리잡으며 미모와 몸매가 중요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함께 확산됐다. 성 상품화 논란이 뒤따랐다.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왜 기상캐스터는 항상 마르고 예쁜 여자여야 하나. 왜 항상 딱 붙은 원피스를 입고 나와야 하나. 인터넷에 기상캐스터를 검색하면 상위 연관 검색어로 기상캐스터 몸매가 뜬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2016년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생계형 기상캐스터인 표나리(공효진 역)가 엉덩이 뽕을 착용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어 논란이 된 장면이 연출됐다. “너 내 신분증을 매달고 있는 줄이 왜 빨간색인지 알아? 아나운서는 파란줄이다? 기상캐스터는 언제 잘릴지 몰라 빨간불 들어온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은 안전하게 파란불, 정직원이란 뜻이지” 표나리의 대사다.

여성 기상캐스터가 비정규직으로서 몸매와 의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와관련해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 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방송사 시스템을 지적했다. 홍 교수는 25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6명의 기상캐스터를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 결과를 발표했다.

인터뷰에 응한 6명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여성이었고 프리랜서였다. 한 기상캐스터는 “입사 전형 및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 시간은 아나운서와 같지만 방송에 비치는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일을 덜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메인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보다 전문성이 낮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 입지가 여전히 낮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상캐스터는 메인뉴스 아나운서만큼 준비한다고 했다. 기상청의 예보문을 토대로 특보상황, 미세먼지, 지역별 날씨 등을 점검하고 원고를 직접 작성한 뒤 CG를 구성한다.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CG를 의뢰하고 메이크업을 받은 뒤 녹화에 들어간다. 기상캐스터들은 날씨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해 1~2분 분량의 원고를 암기한다.

채용방법도 유사하다. 기상캐스터는 방송사 타직군과 동일하게 공채를 거쳐 선발된다. 서류 전형-카메라 면접-최종면접 순으로 진행된다. 자기소개에서는 전신 프로필 사진을 첨부하고 소개 영상을 촬영해 제출한다. 관련 학과나 자격증 보유자에 대한 우대는 없으며 전문지식이나 이해력을 묻지 않는다. KCTV 제주방송이 유일하게 기상과 관련한 필기시험을 치른다. 홍 교수는 “방송사들은 기상캐스터가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이라면서도 정작 채용 과정에서 기상에 관한 전문성 검증 과정을 생략한 채 외적 이미지와 전달력만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SBS <질투의 화신> 한 장면. 기상캐스터인 표나리(공효진 역)는 엉덩이에 뽕을 착용한 채로 방송을 진행했다. (사진=SBS)

기상캐스터들은 외모에 대한 심한 압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외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부분이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느껴졌다”, “기상캐스터 몸매에 대한 평가와 성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댓글로 남기거나 메시지를 보낸다. 짧은 치마나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으면 캡쳐하거나 움짤로 만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 속상하다”, “나이와 경력이 늘어감에 따라 전문성과 깊이가 늘어나는 것에 관해 관심이 없고 새롭고 어리고 예쁜 친구들이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어 빨리 그만둬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 응답자는 “방송국에 협찬되는 의상들은 사이즈가 하나로 정해져 있기에 키가 크거나 몸무게의 차이에 따라 의상이 다소 짧거나 몸에 더욱 붙어 선정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의도와 다르게 아쉬운 반응을 들었을 때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홍 교수는 “기상캐스터의 직업 요건에는 방송능력, 외적 이미지, 기상에 대한 지식, 제작 능력 순발력 등이 요구되지만 방송사는 기상캐스터를 뽑을 때 외모를 중심 조건에 두고 전공 지식은 따지지 않는다”며 “프리랜서로 고용해 낮은 입지에 세우고 애매하고 불공정한 평가 기준으로 경력이 쌓이면 나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사회는 이들에게 외적 이미지와 젊음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기상캐스터의 채용 주체인 방송사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날씨 뉴스를 전달하는 기상캐스터의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를 강조해 기상캐스터 단어 자체가 미모와 몸매를 갖춘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하나의 기호가 됐다"며 “기상캐스터의 경력을 존중하고 공정한 평가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 등의 개선책은 상당 부분 방송사 시스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주최하고 방송문화진흥회가 후원한 <여성 방송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가 방송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가 25일 센터포인트 광화문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발제를 맡은 홍숙영 한세대 교수, 홍지아 경희대 교수 , 김영은 중앙대 교수, 정흠문 서강대 교수 (사진=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김영은 중앙대 교수는 “날씨 정보 전달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기상캐스터에 대한 인식은 그 역할에 못 미치고 있다”며 “스포츠아나운서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아나운서들은 의상이나 역할이 굉장히 비평등화돼 있고 이를 부각하는 모습이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9년 전에 돌아가신 송지선 아나운서가 평소에 인터뷰했던 걸 보면, 본인은 스포츠아나운서이지만 최종 꿈은 스포츠캐스터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방송사 PD든, 시청자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정흠문 서강대 교수는 “보도나 정보 전달의 중요성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상캐스터를 하나의 쇼비즈니스, 연예사업 종사자로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스타시스템 안에서 그들을 소비하고 있다면 그들의 생존 구조는 계속해서 열악할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산업과 종사자, 이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스스로의 이중성에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시청자들은 날씨 뉴스를 꼭 필요로 하면서도 기상캐스터들의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고 이를 소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방송사에서 기상캐스터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내고 연예매체에서 기사화하며 기상캐스트들을 몸매, 외모 등을 강조하는 스타시스템 내에 소비하고 있고 시청자들 역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이중성에 공감한다”며 “방송국 내 인식변화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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