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MBC가 시청자의 성인지 감수성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연달아 보이고 있다. 신입기자 공채 시험 문제로 ‘2차 가해’를 지적받고 사과,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으며 여성 혐오 논란으로 한 달여간 하차했던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 녹화에 들어갔다.

MBC는 지난 13일 신입기자 채용시험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호칭을 논술 문제로 출제해 비판받았다. 응시자들은 MBC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비판했다. 이미 사회적으로 피해자로 호칭이 정리된 사안을 다시 한번 응시생들에게 묻는 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MBC 내외부에서 비판이 나왔다.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1,800명의 응시자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 살아있는 피해자를 놓고 뭐라고 부를지 결정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라며 “논제로 던지는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성평등위원회는 “이미 내부에서도 ‘피해자’로 보도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린 사안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문제를 출제한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MBC는 하루 만에 “문제 출제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에 대해 사려 깊게 살피지 못했다. 사건 피해자와 응시자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기안84 모습 (사진=MBC)

MBC가 사과한 14일,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여성 혐오 논란으로 한 달간 하차했던 기안84의 복귀 소식을 알렸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기안84가 오늘 있을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할 예정이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앞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안84는 지난달 4일과 11일 연재하던 네이버 웹툰 '복학왕'에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자 <나 혼자 산다>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안84는 '복학왕'에서 여자 주인공이 취직을 위해 스무 살 차이 나는 팀장과 잠자리를 가진 것처럼 표현했으며,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배에 올리고 벽돌로 내리치는 장면을 삽입해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다. 여성이 채용을 위해 상사와 성관계를 갖고 상사는 입사 선물로 명품 신발을 준비하는 식의 전개는 여성혐오적 사고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비판이 일자 기안84는 다음 날 웹툰 일부 내용을 수정한 뒤 “작품에서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이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과문 역시 여성혐오적이란 비판이 이어지며 시청자들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를 하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잦은 혐오 논란에 휩싸이는 출연자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MBC는 이와 관련된 아무런 언급 없이 8월 21일부터 기안84를 출연시키지 않았다.

기안84 복귀 소식이 알려진 14일 MBC<나 혼자 산다> 시청자 게시판 화면 갈무리

한 달여만의 복귀 소식에 시청자 반응은 싸늘하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전파는 당신들의 소유가 아니다. 만연한 웹툰계의 여성혐오를 수긍하는 제작진과 동료 출연자들을 못보겠다”, “한 출연자 때문에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이 도배됐는데 제작진은 시청자 의견 무시하기로 한 건가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시청자는 장애인·외국인 노동자 비하, 과도한 발언 등으로 기안84가 하차 요구에 직면할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기안84가)기죽은 척하면 옆에 박나래가 ‘아휴 기안84님이 또...’ 이러면 이시언이나 성훈이 등 두드려주면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이러고 기안은 ‘죄송합니다’ 하면서 동정여론 만들겠지. 몇 번째입니까”라고 했다. 이처럼 <나 혼자 산다>는 하차 요구에 직면할 때마다 기안84의 출연을 고수했고, 출연자들이 이를 수습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방송사 밖의 시청자·응시자들은 달라졌는데 방송사 내부에서는 여전히 젠더 문제를 지엽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 활동가는 “신입기자 공채 논란은 응시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밖에 알린 사건이다. MBC 내에 인사담당자들과 응시자들이 기자가 갖춰야 할 자질·요건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MBC에서는 젠더 문제를 지엽적으로 보지만 응시자들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나혼자 산다’도 같은 건이다. 기안84를 다시 기용하는 문제에 있어 제작진은 패널이 갖춰야 할 여러 요건 중 젠더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지만 시청자는 기안84를 보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활동가는 “방송사 내에서 PD, 인사담당자, 경영진이 시청자들의 젠더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드러난 사례”라며 “방송사에서 여전히 방송을 시청자의 것이 아닌 방송사의 것으로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반복된다. 시청자들이 TV를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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