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청와대 참모들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은 뭔가 큰일이 일어났고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런데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될까? 그건 모를 일이다.

청와대 참모들의 사의 표명은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는 게 대개의 분석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통한 민간임대시장 활성화 등 수요 중심 정책에서 일단 후퇴했다. 최근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재건축 재개발을 받아들이는 경우에 한해 용적률 상향 등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공급책이 나온 것은 말하자면 ‘플랜B’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플랜B’마저도 이른바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표적인 재건축조합들이 자신들이 기대한 이익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모델이라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대책을 통해 약속한 공급 물량의 상당수는 ‘허수’가 된다. 정책의 방향을 바꿨는데도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청와대 참모진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대통령이 이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노영민 비서실장을 포함해 사표를 제출한 대부분의 참모들은 교체될 것 같다. 그러나 인적쇄신이 효과가 있으려면 이전과 이후가 명확히 달라야 한다. 과연 지금이 그럴 수 있는 조건인지는 의문이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이미 바꿨고,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급선무는 ‘다주택자’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민단체 일각이 제기한 ‘다주택자들이 정책을 자기들 이익에 맞는 쪽으로 주물러 집값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믿음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강력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프레임에 정치적 힘이 실린 이유가 정권이 스스로 선택한 것에서 왔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정권이 시작된 직후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는 메시지가 청와대와 주무부처 장관을 통해 나온 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실제 대책은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는 구호에 맞는 보유세 강화 등이 아니라 민간임대시장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따라서 앞의 구호에는 “팔 것이 아니면 임대사업자 등록하라”는 메시지가 생략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후 여러 정치적 과정을 통해 ‘다주택자’는 곧 ‘투기세력’과 동의어가 됐다. 집을 소유해 자산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중산층적 욕망 자체에는 맞서지 못하면서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는 해야겠으니 편의적으로 ‘실수요자’를 구분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여기서 정책과 구호의 불일치가 드러난다. 어쨌든 전월세 등 임대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주택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전부를 ‘투기세력’으로 규정하는 구호가 일반화 되면 앞서 대책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청와대와 여당 모두가 이런 정치에 편승해 1주택자인지 아닌지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하면서 악순환에 빠졌다. 일부 청와대 참모들이 집을 팔려는 시늉만 하다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시선을 돌려야 한다. 당청관계의 변화를 통해 여당이 실효성 있는 정책을 힘있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다. 1차적으로는 전당대회 국면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 출마자들은 핵심 지지층을 향한 온갖 구호를 남발하고 있다. 최근 ‘독재’, ‘전체주의’ 언급을 빌미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불필요한 공격을 하고 있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국면에선 부동산 대책 등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 좀 바뀔까? 그렇게 보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여당이 해온 정치 자체가 핵심 지지층에 종속된 한계 속에서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권이든 핵심 지지층을 외면한 정치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의식하는 걸 넘어 문제를 보는 관점 자체를 정권과 지지층끼리만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오랜만에 내놓은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조국 전 장관은 검찰 수뇌부가 지난해 하반기 여당의 총선 패배를 예상하고 노선을 재정비했다고 주장했다. 울산 사건 공소장에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15회나 나오는 것은 여당의 총선 패배 후 탄핵의 밑자락을 깐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보수언론이 ‘피장파장’ 프레임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직간접적으로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보수야당 일부도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울산 사건을 비롯해 문제가 되는 이런 저런 모든 사건들이 모조리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실제 탄핵을 추진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수정치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을 유도한 것에 가깝다. 이런 상황을 ‘탄핵의 밑자락’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들끼리의 시각일 뿐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투기세력’은 실재한다. 하지만 ‘투기세력’을 외부의 적으로 상정해 ‘우리 편’인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식의 설명은 집을 소유할 여력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투기’에 나서기는 어려운, 이 정권 지지층의 시각에 맞춘 ‘맞춤형’ 설명일 뿐이다. 장담하긴 어렵지만 정책의 얼개와 효과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방식의 정치를 통해 추진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당의 전당대회는 흥행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일정은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 누군가가 ‘공통된 것’을 추구하는 정치로의 변화를 주장할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는 메시지만으로는 어렵다. 개혁의 명분이 그것을 주장하는 세력의 ‘사익추구’라는 것으로 귀결되고, 남는 건 오직 ‘이해관계’뿐이라는 믿음이 확산되는 요즘과 같은 국면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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